01580956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미안해상 수상작]
어디갔다 이제왔니 달깡달깡 내 아기야


 서른 아옵 열하옵에 첫장가를 갔는데/ 장가간 십년만에 아기를 낳는데/ 딸애기도 반가울긴데 깨목같은/ 불깨밑에 꼬치자지가 달랑했네/ 접시전으로 갔던가 얍실얍실 생겠네/ 꼬막전으로 갔던가 오목조목 생겠네/ 둥천으로 갔던가 둥실둥실 생겠네/ 방천으로 갔던가 방실방실 생겠네/ 불면 날을랑가 거머쥐면 꺼질랑가/ 칠년대한 가무름에 빗발같은 내새끼야/ 어데갔다 이제왔네 달깡달깡 달깡달깡.

-민요 「달깡달깡」(출처: 디지털하동문화대전)

 

 엄마가 서른 두 살에 서른 하나 아빠를 만나 시집간 지 삼년만에 너를 낳았단다. 엄마 닮은 딸아이도 괜찮았지만 아빠처럼 잘 생긴 아들 하나 달라는 엄마 소원 들어주어 얍실하지 않고 단단히도 잘 생겼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네가 태어난 첫 달은 세상에 - 이런 핏덩이를 어떻게 안아주라는 거야? 왜 아무도 신생아를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거지? 낳으면 다 알아서 자라는 거 아니었어? - 매일 밤마다 눈물바람이었지. 사실 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거야. 세상의 모든 모든 엄마들이.

 

 우리 아기, 엄마가 너를 그렇게 애지중지 했던 건, 너의 탄생에는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야. 엄마는 네가 뱃속에서 태동을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심각한 조산의 위협에 시달렸단다. 네가 그렇게 일찍 나와버리면 현대의학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당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엄마는 임신 기간 내내 많이도 울었었다. 너를 잃게 될까봐. '오늘만 또 넘기면 가능성이 있어, 단 100g이라도 더 커서 태어나주렴.' 매 순간 간절한 기도를 올렸더란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고 또 입원, 8개월이 지나고 또 입원, 6개월을 누워서 지냈었지. 산모교실도 태교여행도 꿈도 못 꾸고 늘 누워만 있었던 엄마 때문에 뱃속의 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얼마나 심심했을까? 그래도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무겁고 더디지만 흘러 주었고 너는 건강한 신생아로 엄마 품에 와 주었단다. 그렇게 너는 하루하루가 감사한 아이였어.

 

 이제는 '나 형아니까 이거 하는 거야 아기는 이거 못하잖아, 머리도 안 감고 이도 안 닦을 거야, 아빠는 오지마, 엄마가 해 줘, 엄마 때문에 자동차가 망가졌잖아, (이웃집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얘는 뚱뚱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요구도, 불만도, 뜸금없는 대꾸도 하도 할샤, 입만 열면 엄마랑 실랑이를 벌이는 신짱구같은 네 살이 되었어.

 

 어느 날은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엄마 이건 어제 먹은 건데 오늘 또 먹으라구요?" 하는데 한 번 콩 쥐어박고 싶다가 언제 이렇게 컸나 웃음이 나오기도 했단다. 그리고는 "엄마 이거 비싼 거예요? 먹어요?" 그러는데 아이쿠야 이마를 쳤다. 엄마도 모르게 "고기는 비싼 거니까 꼭 먹야해, 이 과일도 비싼 거야." 그렇게 말했던 걸 네가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사람을 돈보다 업신여기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바다에 수장시켜버린 누군가들에게 분노했으면서도 엄마는 어느새 네가 먹는 음식들에 값을 매기고 있는 거야. 미안하다. 백지장처럼 순수한 너의 마음에 물질적 가치와 불만, 투정을 가르쳐준 건 다름 아닌 엄마였구나.

 

 사실은 엄마도 엄마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네가 세상을 배우는 일분 일초를 따라서 다시 세상을 공부하고 있단다. 이제야 철드는 이 느낌, 너도 언젠가 아빠가 되면 이해해 줄까? 그리도 더불어 엄마의 이 마음도 네가 너무 힘든 어느날에는 한번쯤 꺼내봐 주겠니? 뱃속에서 우진이가 엄마 탯줄하나에 의지해 그 긴시간을 견뎌내 준 것처럼 엄마도 아빠도 우진이를 영원히 놓지 않을 거라는 걸. 또 수많은 고비와 눈물 끝에 만난 너지만 너는 아빠와 엄마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란 걸. 어디갔다 이제왔니 달깡달깡 내 아기야.

 

(글을 쓰면서 세월호 침몰사고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촛불도 끝까지 함께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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