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 보렴.
오늘은 엄마가 너에게 고백할 것이 있단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엄마가 될 수 있지만, 모든 엄마가 자기 사랑만큼 자식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 그리고 엄마가 불만족을 주는 엄마 쪽에 속했다는 것 말이다.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는 네가 이제 많이 컸으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 덜 해도 이해해 줄 줄 알았고, 매일 팔 벌려 안아주지 않아도 엄마의 사랑을 믿어줄 줄 알았단다.
엄마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너는 기억을 못 하겠지?
엄마는, 처음 네가 순백의 더께로 뒤덮인 채 까만 눈동자에 빛을 낼 때도, 행여나 작은 새 같은 네가 숨이 멎었을까 봐 너의 가슴에 연신 귀를 갖다 댈 때도 그 기쁨과 감동이 시간을 이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 때의 따뜻한 떨림이 얼마나 엄마의 심장을 두방망이질하게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매일 안아 달라고 치대고, 조잘조잘 떠들며 귀찮게 굴던, 살가운 아들이 그리워지다니 참 엄마가 못난 엄마이구나.
하지만 엄마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유난히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너에게 너그러운 오빠 자리만을 요구했던 엄마를 용서해주렴.
회초리를 유일한 사랑의 도구로 활용했던 엄마를 더 큰 사랑으로 안아주었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입 못 다물겠니? 어디서 말대꾸야!”하며 노여워하던 모습을 기억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고, “ 책 좀 읽어라. 그래야 사람 된다.”라며 내몰았던 책상의 맞은편에 엄마가 앉을 수 있도록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구나.
엄마는 이제 모든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너를 만나려고 해.
표현하지 않는 진심은 완전한 사랑이 아님을 인정하려고 해.
그리고 너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친구가 되려고 해.
엄마가 아무리 너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를 해도, 좋은 사람이 되라고 이런 저런 훈계를 늘어놓아도, 너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네가 결코 엄마의 진심을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 않니?
인디언에게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라는 뜻이래.
엄마는 한편으로는 네가 이제 커서 엄마의 슬픔을 이해해주고, 짐을 함께 져 줄 수 있는 듬직한 소년이 되어서 기뻐.
얼마 전, 학교 공개 수업에서 선생님이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마지막 말을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다른 녀석들은 머리가 굵었다고 아무런 동요가 없었는데, 훌쩍거리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작은 등을 웅크리던 너의 모습과 그 안에 반짝이는 눈물을 엄마는 보았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가진 엄마가 되었어.
엄마를 생각하며 저절로 울었다는 너에게 엄마도 평범하지만 진실로 그 이상 말할 수 없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엄마한테 태어나 줘서, 엄마라고 불러줘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고 사랑한다. 아가.”
앞으로 엄마들이 두려워한다는 사춘기도 올 테고, 아니 시작된 것 같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주고 미워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우리 아들이 꼭 하나는 기억해 주었으면 해.
엄마가 여자로 태어나 엄마가 되었고, 엄마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언제나 ‘너’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혹시나 엄마가 오래 살게 되어서 네가 할아버지가 되는 날을, 살아서 보게 될지라도 엄마는 여전히 듣게 되길 바라. “엄마 사랑해요.” 라는 말.
해 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