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사진 자료 ::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영아!
놀이터에서 뛰어 노느라 하루가 짧은 꼬마 아가씨. 오늘도 자전거 타느라 공차고 노느라 낮도깨비처럼 놀이터를 들쑤시고 다니느라 많이 피곤했지? 저녁 먹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어버린 너를 보면서 양치질 못시킨 거, 씻기지 못한 것만 걱정하는 게 엄마란다.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쌕쌕거리며 달게 자는 너의 옆에서 엄마는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만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처음 다영이가 엄마 뱃속에 잉태 되었을 때 그 때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었지. 건강하라고, 부디 건강하게만 태어나 달라고, 그러면 정말 건강하게 키우겠노라고 말이야. 늦은 나이에 가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수많은 검사와 확인에 시달려야 했던 너에게 엄마는 그 하나만을 바라고 기도했단다. 그리고 귀여운 동생을 낳아 평생 함께하는 벗을 만들어 주는 걸로 엄마는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다영이는 그저 엄마와 함께 책을 읽고 아빠와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 겨우 여섯 살, 노는 게 제일 좋은 너에게 엄마는 좋은 언니가 되라하고, 영어도 하라하고, 한자도, 한글도, 수학도 뒤처지면 안 된다고 수 만 가지 바람을 가지고 너를 지치게 하는 구나. 어쩌다 엄마가 이렇게 못난이 엄마가 되고 말았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면 너를 잉태하고부터 실체 없는 두려움은 시작되었던 것 같아. 태교와 육아, 양육에 관한 책을 많이도 찾아보고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실천하며 잘 키워보겠노라고 자신만만했어. 감정코칭이네 자존감 교육법이네 그런 것들로 너를 멋지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 엄마는 바보 같이 너한테 말 몇 마디 해주는 것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물놀이를 할 때, 눈썰매를 탈 때 하다못해 집 앞 놀이터에서 땅강아지처럼 새까매지도록 놀면서 ‘엄마 배꼽이 간질간질해’ 했을 때 반짝 반짝 빛나던 너의 눈동자를 보고 답을 찾았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다영아, 엄마가 많이 미안해. 엄마의 욕심에 하루에도 수십 번 큰 소리로 네 마음에 생채기를 냈지. 엄마의 기분에 따라 너를 대할 때 마다 너도 많이 힘들었지? 그럼에도 엄마가 ‘미안해’ 라고 말할 때 마다 ‘괜찮아, 엄마’ 하며 엄마를 안아주는 다영이가 있어 엄마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엄마가 이래저래 헷갈려 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동안에도 어느 새 다영이는 곱게 자라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동생한테도 항상 먼저 손을 잡아 주고 놀아주는 든든한 언니가 되어 있지. 사실 책으로만 배우는 서툰 엄마는 다영이한테 배워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서 놀 듯이 온 방을 뒹굴며 자는 너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주며 다시 한 번 다짐해. 앞으로 너를 보고, 너의 눈동자를 보고 답을 찾겠다고. 엄마의 기준이 아닌 다영이의 기준을 찾아내며 함께 행복하겠다고 말이야. 사랑해 다영아. 엄마의 사랑이 너의 행복이 되기를 바라. 좀 더 지혜롭고 멋진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2014년 6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