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조회수 3118 추천수 0 2014.06.30 13:50:15

소연아.

혹시 기억하니?

오늘 아침에 네가 엄마에게 했던 말과 그 표정 말이야.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갑자기 검지를 흔들면서 당차게 외쳤잖아.

“오~노! 이제 나 혼자 가볼 거야!”

그 말에 엄마는 깜짝 놀라서 진짜냐고, 정말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

넌 잠시 고민하더니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이렇게 말했어.

“음…… 정 그렇게 걱정 된다면, 멀리서 따라오는 건 괜찮아!”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그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엄마는 조금 섭섭한 기분이었어.

너랑 함께 걷는 시간들이 이렇게 조금씩 줄어들겠구나 싶었거든.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엄마는 소연이랑 같이 유치원 가는 길이 하루 중 제일 달콤하고 행복해. 소연이랑 민석이를 양쪽에 끼고 걸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만큼 마음이 커지거든. 또 계란프라이처럼 생긴 개망초와 그 줄기에 붙은 무당벌레를 보며 동생과 소곤거리는 널 보면 입 안 가득 꿀을 머금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 이렇게 사랑스런 장면을 엄마 혼자 감상한다는 게 아빠에게 미안한 정도로.

엄마는 이 즐거움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어서, 유치원 졸업할 때까진 같이 걸어 다니자고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물을 쏟은 데다, 넌 예쁜 치마가 없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하니 대뜸 화부터 났지 뭐야. 그 바람에 ‘같이 걸어가자’는 말 대신, “아직 어려서 안 돼! 길도 위험하단 말이야”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단다.

넌 길도 다 안다고, 이제 다 컸다고 울면서 말했지만, 엄마는 아직 어리다는 말만 되풀이 했지. 악마처럼 눈썹을 잔뜩 치켜 올린 채 말이야. 그러다 힘없이 가방을 메는 네 모습을 보고서야 그만 아차 싶었어. 요즘 우리 소연이가 좋아하는 칭찬이 “다 컸네, 어른스러워” 였다는 게 떠올랐거든.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어리다는 말만 강조했으니…….

너한테 미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안된다고 말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그런데 그렇게 굳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킥보드를 끌고 나오는 널 보자 또 다시 화가 불쑥 튀어나왔지 뭐니.

“혼자 간다면서 킥보드까지 타려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분명 걱정이 돼서 한 말이지만, 편지에 옮겨놓고 나니 참 부끄럽구나.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어쩜 이렇게 킥보드를 잘 탄다니…… 우리 소연이는 킥보드 선수다 선수!” 하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 올렸는데. 무턱대고 화부터 낸 게 무지 후회스러웠지만, 한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기란 쉽지 않더구나. 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갔고 엄마는 또 다시 사과할 기회를 잃어버렸으니까. 아니,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빠르게 달려가는 네 킥보드를 쫓느라 민석이를 안고 뛰어야 했어. 하지만 우린 점점 멀어졌고, 네가 말했던 대로 멀리서 널 따라가는 꼴이 되었지.

가는 동안, 엄마는 사실 짜증이 났었어.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려야만 했을까 이해가 안됐거든. 너도 알다시피, 유치원 가는 길은 내리막길인데다, 찻길도 건너야 하고 모퉁이도 돌아야 하니까. 그런데 점점 짜증스런 마음은 사라지고 걱정이 되었어.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행여 널 놓칠세라, 온 신경을 네 뒷모습에 집중하고 뛰었지.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든 줄 아니?

‘혼자서도 참 잘 가는 구나…… 인도도 없는 좁은 길인데 차선도 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잘하고……’

유치원 앞에 도착하자, 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손을 크게 흔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어. 잘 다녀 오겠다고.

그렇게 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난 풀조차 바로 보지 못할 만큼 얼굴이 화끈거렸리더구나. 작은 개망초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얼굴을 활짝 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 하는데, 엄마는 널 바라보기보단, 늘 화부터 내고 가르치려고만 한 거 같아서.

못된 왕처럼 굴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것 같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정답을 알 수 없어 생기는 그런 두려움.

하지만 오늘 네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내일을 겁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서더구나.

소연이는 엄마의 딸이기 전에, 모든 '처음'을 함께 헤쳐나갈 든든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사랑하는 소연아.

엄마가 늘 한 박자 늦고, 깜빡깜빡하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고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워. 또 엄마 가슴을 종종 뜨겁게 달궈줘서 고맙고.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넌 모를 거야.

아침부터 네 기분 상하게 했던 거 미안하고, 화부터 내지 않도록 노력할게.

많이 많이 사랑해~

2014년 6월 16일

솔직해지고 싶은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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