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니? 몇 달 전 희천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을 말이야. 전화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112에 전화한다더니 "거기 경찰서지요? 엄마 잡아가세요. 엄마가 자꾸 혼내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엄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닥쳐왔구나! 내가 애를 그렇게 많이 혼내고 있었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냥 놀이라고 넘겼을 법도 한데 엄마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유는 실제로 희천이를 많이 혼내고 있었기 때문일꺼야.
엄마도 알고 있어. 동생이 생기고 나서 엄마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말이야. 평소처럼 뛰고 넘어졌을 뿐인데 엄마는 위험하다 하지마라 네게 큰소리를 쳤고, 평소처럼 엄마에게 안아 달라 놀아달라고 했을 뿐인데 엄마는 동생을 안고 있어서 힘들다고 너를 잘 안아주지도 않고 말없이 텔레비젼을 틀어주었잖아. 희천이에게 동생이 생겨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너에게 한결 같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먹은 것만큼 쉽지가 않았어. 어느 순간 엄마는 양희천 밥먹어! 밥 안먹으면 치워버린다! 양희천 동생한테 그러면 안돼! 양희천 장난감 치워! 안치우면 냉장고 위에 올려버린다! 양희천 혼나! 맴매한다! 이렇게 매일 너에게 협박을 하고 있더구나. 못하는 말 없고 생각이 깊어서 엄마는 네가 아직 많이 기다려주고 보듬어줘야하는 4살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나봐. 여린 네 마음 하나하나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고 아픈 곳 없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동생 예뻐해주는 착한 오빠여서 엄마는 고마워.
요즘 희천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음에 엄마는 네가 참 대견스러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도 꼭 엄마 팔배게를 하고 자장가를 들어야 잠들던 너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답답하다며 엄마가 꼭 안으면 안을수록 엄마 품안에서 빠져나가더구나. 처음엔 그런 너의 행동이 아주 당황스럽고 섭섭했지만 금새 '엄마 나 이만큼 컸어요'라고 네가 보내는 신호임을 알아챘어. 발이 닿지 않던 자전거 페달도 이젠 제법 잘 밟고, 아빠처럼 커다란 변기에 혼자 오줌도 누고, 집안 스위치를 이젠 발판 없이도 잘 켤 수 있게 되었잖아. 앞으로 혼자 해 내야하는 일들과 더 많이 마주하게 될꺼야. 그때마다 엄마가 옆에서 응원할께. 너의 처음에는 항상 엄마가 함께 했듯이 말이야.
이틀 전 잠에서 깨어난 희천이에게 엄마가 물어봤던 것들 기억나? 희천이는 엄마가 언제 제일 좋아? 아침에 일어나서 장난감 놀이 같이할 때, 잠자기 전에 책 읽어 줄 때. 엄마가 무서울 때는? 엄마가 혼낼 때. 맴매할 때. 그럼 엄마가 미울 때는? 엄마가 미울 때는 없어. 너의 대답에 엄마는 아침부터 마음이 짠해졌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에 흔들려 너를 혼냈던 엄마에게 미운 적이 없다고 하다니...너의 대답에 엄마는 많은 것을 깨닫고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알게 되었어.
<많이 안아주고 많이 이야기하기. 끼니는 제때 챙겨주기, 약속 잘 지키기. 핸드폰보다는 희천이와 지수>
엄마의 핸드폰 바탕화면에 적어놓은 메모처럼 항상 친절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께.
사랑한다 희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