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에 대한 탐탁치 않은 고백

조회수 8792 추천수 0 2010.09.14 0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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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을 읽고 씁니다.



앞서 제가 썼던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의 독후감에 대한 답변에 어떤 의사분께서 추천해주신 책입니다.



그 때 제가 추천해 주신 책을 꼭 읽고 다시 리뷰를 올리겠습니다.하고 저 혼자 약속을 했더랬죠.



그리고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큰 감동은 받지 못했지만 이 책의 앞서 읽었던 현대의학의 반성에 관한 책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제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감사한 말씀 전하며 리뷰를 올립니다.



꼭 숙제를 마친 기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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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이 만든 문제는



한 단계 심오한 과학과 더 나은 기술만이

해결책이라는 믿음을 유행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관리를 해결하는 법은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긴다.

이는 마치 더 비싸고 강력한 청정 합성세제로



오염된 강을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더 많은 지식과 정보, 더 많은 과학과 기술로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가속페달만 밟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반 일리치 (1926-2002,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신학자)〈공생을 위한 도구〉에서







이 책은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이 없다.



감동이 없다.



나는 차라리 철저한 신념아래 자신이 속한 영역의 주류지식이 옳다고 말하는 책이었다면 이 책이 이렇게 치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계산적이다.



이미 전적인 신뢰를 환자들에게서 잃어버린 현대의학의 세계는 무너진 신뢰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를 그 한계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리고 어느 정도까지를 다시 신화로 채워나가야 할지를 생각해야했는데



이 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현대의학이 그들의 소비자가 되는 현대의 똑똑한 환자들과의 협상인 셈이다.



가혹한 평가일까?



내가 이렇게 현대의학과 시스템을 냉소적으로 보는 이유는 지금까지 현대의학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데



솔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목숨을 다루는 영역에 마케팅이 있을 수 있다니.



읽는 내내 책 제목도 거슬렸다.



[<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이라...



정말 고백이라도 하려고 했다면 과학과 기술의 한계가 특히 그가 고백하려는 현대의학이라는 것의 한계가



체르노빌의 임시방편으로 봉쇄해놓은 원전에서 자꾸만 새어나오는 방사능처럼 스멀스멀 드러나는 지금,



그 제목이 로버트 S. 멘델존의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쯤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책들덕분에 우왕좌왕하는 의학계 안의 의료진들과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지켜보고자



그 마음을 위로해보고자 쓰여진 훌륭한 자기변명을 한 책쯤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의사다.



그의 부모가 의사였다.



그리고 책의 맨 뒤 감사의 말을 보자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병원 외과 과장님이신 마이클 지너 선생님 역시 이 책을 낼 수 있도록 든든한 후견인과 보호막이 되어 주셨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실수를 했을 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글을 써서 <뉴요커>에 발표하기 전에 선생님을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실을 수 없는 내용의 글이라고 판단하고 먼저 원고를 보내 드리고 며칠 뒤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선생님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실을 말하자면, 흔쾌해하신 건 아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세계 어느 병원의 홍보실에서 그런 글을 흔쾌히 공개하겠는가. 하지만 마이클 선생님은 용단을 내려 주셨다. 나를 지지해 주신 것이다! 그런 글이 일반 사람들이나 다른 의사들의 비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미리 경고하시면서 만일 그럴 경우 당신이 힘이 되어 주겠노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글을 싣도록 허락하셨다.



이 부분을 보고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완전한 진실을 향해 쓴 순수한 글은 아니라는 느낌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그는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고자 하는 영혼도 아니었으며



박지원이 양반전에서 양반을 비판하고는 있지만 그 스스로가 양반이기에 양반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진실만으로 어떠한 자기 변명없이 온전한 반성을 책으로 엮어낸



로버트 S. 멘델존과 같은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 책을 나는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인 ‘닥터스’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런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만이 새로웠을 뿐



그가 고백한 사람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두려움이랄지



통계적인 학문으로 정리가 된 학문으로서의 의학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개인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 등에 대한 내용은 나에겐 전혀 새로운 고백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앞서 인용한 이반일리치의 말대로 그는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아니 그 문제에 접근조차도 하지 못했고



그 역시 지금의 의료 처치에 관한 잘못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자연치유의 모방일 뿐이다.



그것도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의학에서 분류해 놓은 부분부분에 해당하는 치료방법은 그것이 몸의 유기적인 기능과 함께 움직일 때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내가 최근에 현대의학에 관한 비판적 책들을 연달아 읽고 지쳐있을 때 찾았던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띈 책의 제목은 왠지 이런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사 청진기를 놓다>라는 책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원했던 위로를 받았고



때문에 이 책을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의 젊은 의사에게



또 다른 많은 고군분투하고 있을 의사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한 사회의 법이 그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 법치국가는 이미 무너진 것이라는 말과 같이



한 사회의 의료시스템도 그 사회의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할머니의사는 그런 철학과 신념이 있으셨던 분으로 한평생을 자신이 가진 재능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살아내신 분이다.



의사들이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그들의 꿈을 사회에서 책임져야 가능할 것이다.



기회비용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의료직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꿈을 키우는 의사들이 많은 사회라면



자본과 유착되어 있는 현대의학의 기형적인 구조는 그 안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성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지금의 시스템에서도 구원은 있을 수 있는데 그 방법이 될 수 있는 구절을 옮겨볼까 한다.



입양보낸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자 이 할머니 의사는 생모를 수소문 끝에 찾아서 골수 이식을 시키려는데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생모의 골수와 백혈병에 걸린 아들의 골수가 맞지 않는 상황에서 미스매칭 골수라도



이식해보자고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그 생모의 혈액을 뽑던 날 주사로 혈액을 뽑기 직전 의사는 기도를 제안한다.



간호사가 도숙 씨의 팔뚝에 주사기를 갖다대는데, 나도 모르게 “잠깐”하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고생하면서 혈액을 보냈는데, 동수가 허망하게 세상을 뜨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기도합시다. 우리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합시다.”



우리 세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렸다. 내 오른손을 잡고 있던 도숙 씨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우리가 보낸 혈액 샘플은 그냥 피가 아니었다. 생모의 간절하고 애절한 염원이 담긴, 그야말로 생명의 일부였다.



골수가 맞지 않는데도 이식이 성공할 수 있었더 기적은 어디에 온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공로는 골수이식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당시 동수를 수술한 의료진은 미스매칭 골수로 이식 수술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두 팀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이 기적을 만든 사람이 도숙 씨라고 생각한다. 도숙 씨의 간절함과 애끓는 모정이 맞지 않는 골수로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낸 건 아니었을까. 그날 여인숙에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나온 데는 이런 기적을 만들라는 의미가 담겨 있던 건 아니었을까.



성공한 사례에서도 이 의사는 자연에 겸손하고 신의 뜻에 겸손하다.



이러한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환자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사라면 통계로 정리 된 학교에서 배운 지식 이상의 재주를 신은 줄 것이다.



그 자신을 신의 통로로 삼고 있고 자연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그가 더 위대해 보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병이 주는 메세지를 이해하고 죽음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단히 책읽고 공부하자고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그리하여 현대의료에서 기대할 수 없는 무리한 것들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갖자고 생각해 본다.



이번 달 새로받은 녹색평론 114호에 {대학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나이젤 비거는 말한다.



대학은 이상화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도덕화해서도 안된다. 중세에 시작될 때부터 대학은 단순히 ‘학문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라 개인적 목적과 실천적이고 공적인 목적을 위해 봉사했다.



현대의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나는 연속되는 현대의학과 관련된 책들을 통해서 현대의학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자 했을 뿐이다.



그동안 나는 현대의학을 너무 순진하게 믿어왔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으니 그 속성을 나는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겠다.



영리할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책읽고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보다 큰 뜻이 있음을 알고 더 겸손해져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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