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8030401_20140304.JPG »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위치한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에는 한옥 정취를 느끼며 책도 보고, 전통문화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학생들로 붐빈다. 

[함께하는 교육] 이색 도서관 탐방

삭막한 열람실, 획일적 콘크리트벽에 기침 소리도 조심스런 곳. ‘도서관’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다. 어린이, 청소년들한테 책 읽기만을 강요하는 구조다. 이런 틀에 박힌 도서관과 다른 형식의 도서관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초등 여학생 셋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슬슬 잠이 밀려오는지 여학생 둘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이들 눈에는 천장의 서까래가 보였다.

지난달 24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길에 위치한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의 오후 풍경이다. 이 도서관은 2월13일에 개관했다. 한식당으로 쓰이던 한옥을 서울 종로구가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종로구청 교육체육과 도서관담당주사 강호성씨는 “서울 동부 지역에는 도서관이 거의 없다. 교육적으로 낙후 지역인데 아이들에게 한옥체험 기회도 제공하고, 지역 간 도서관 불균형 문제도 해소하자는 뜻에서 건립했다”고 설명했다.

서까래 아래서 책 읽어봤니?

약 33평 규모. 아담한 마을 사랑방형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 이름에 붙은 ‘도담도담’은 ‘어린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을 뜻하는 순 우리말. 지역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붙인 이름이다.

도서관 개관 초기지만 하루 70여명이 들른다. 이용자는 손자·손녀를 데리고 온 노인, 초등학생, 학부모,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숭인동을 넘어 성북동 주민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한옥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보유도서 2889권 가운데 20%는 전통문화 관련 어린이책이다. 한옥이라는 특성에 맞게 한문교실(명심보감·사자성어), 전통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고, 지역 특성을 반영해 다문화 가족 어린이 대상 한글 수업 등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영자 관장은 “공간이 한옥인 만큼 꽃, 나무 등 자연이 함께하는 친환경 도서관, 예의범절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도서관으로 꾸리고 싶다. 이용자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도록 권유한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위치한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 별동(성학당)에서는 15명의 어린이가 모여 한식요리 소고기모듬버섯떡찜을 만들고 있었다. 한식요리 체험은 2011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윷놀이, 볏짚공예, 전통음식 만들기 등 한국식 체험놀이는 초등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리 예약해야 참여할 수 있다.

도서관은 자료실 및 도서 열람 공간 주동(향서관 1, 2층), 한옥에서 전통문화 등을 접할 수 있는 공간 별동(성학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가을에는 주동과 별동 사이 마당에서 야외 활동도 할 수 있다. 신태희 관장은 “한옥이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에는 송진이 떨어지는데 향이 좋다”고 소개했다. 신 관장은 초등 1학년생을 대상으로 ‘훈장님 천자문’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 주동에 꽂혀 있는 책은 모두 2만426권. 다른 도서관에 비해 전통문화, 역사 관련 책이 많다. 다섯살 딸과 함께 이날 도서관을 처음 방문한 아빠 박희연씨는 “보통 아이 데리고 ‘키즈카페’를 많이 가는데 도서관 건물 자체가 한옥식 창문, 온돌로 되어서인지 서구식 카페에서보다 책 읽어주는 맛이 다르다. 마음부터 편안해진다”고 했다.

 00498030101_20140304.JPG » 원룸 수준의 작은 규모이지만 순수만화 2000여권을 알차게 모아둔 녹번만화도서관에는 7살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다.

식당 쓰던 한옥을 도서관으로 
주민 대상 전통문화 프로 운영

지하철역 출구옆 만화도서관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옹기종기

청소년에게만 책 대출·무료쿠폰 
어른들은 대접 못받는 특별공간

“규모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딱딱하고 엄숙한 도서관은 안녕”


순수만화 2000권 모았습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사는 주부 권민서씨는 7살 아들을 학원에 보낸 뒤 세살 딸과 함께 커피숍을 찾았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지난 21일 오후 4시. 권씨는 둘째를 등에 업고 ‘녹번만화도서관’ 온돌바닥 카펫 위에 편안히 앉아 만화를 봤다. 도서관에서는 7살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만화를 읽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 벽에는 순정만화 주인공 그림을 붙여둔 게 보인다. 이 벽 안쪽에 있는 앙증맞은 건물이 녹번만화도서관이다. 면적 5.4평. 원룸 수준이지만 꽂혀 있는 만화책은 약 2000권이다. 보통 도서관에는 학습만화가 주를 이루지만 이 도서관에는 <원피스>, <드래곤 볼>, <궁> 등 어린이·청소년이 좋아하는 만화부터 <미생>, <식객> 등 어른들이 좋아하는 만화, 웹툰 등 다양한 순수만화가 꽂혀 있다. 만화광인 김우중(고려대 세종캠퍼스 사학과)씨는 “규모는 작지만 일본 시리즈 만화부터 우리나라 웹툰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다”고 했다.

이 만화들은 대출이 안 된다. 김채원 사서는 “만화는 대개 시리즈물이 많은데 누군가 대출을 하면 내용 연결이 안 되니까 이곳에 와서 보는 방식으로 했다. 책 파손 등을 염려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대출이 안 된다는 점을 오히려 반긴다. 자녀가 학원 가기 전, 잠깐 머리를 식히는 수준에서 만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이 작은 도서관은 만화를 좋아하는 아빠들로 북적인다.

이날 도서관 한쪽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애니메이션 <보노보노>가 상영 중이었다. 학부모 권달선씨가 만화를 보는 동안 7살, 9살 두 아들은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었다. 보통 큰 도서관에 가면 엄마는 책을, 아이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해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 공간에서는 양쪽 요구를 충족한다. 김 사서는 “앞으로 멀티미디어 자료 등은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인계받아 대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각 가정에 처리하기 어려운 만화책 등이 있다면 기증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00498030201_20140304.JPG » 원룸 수준의 작은 규모이지만 순수만화 2000여권을 알차게 모아둔 녹번만화도서관에는 7살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다.

‘청소년’은 무조건 환영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경의선 백마역 2층에서 1번 출구로 나오는 길목, 큰 유리문 안쪽으로 삼삼오오 모여 노는 청소년들이 보인다. 이 공간의 이름은 ‘청소년책문화공간 깔깔깔’이다. 고양시가 공간을 마련하고 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이 공간의 주인은 ‘청소년’이다. 어렸을 때 공공도서관을 잘 이용하던 애들이 청소년이 되면서 더 이상 도서관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청소년들이 자유분방하게 수다 떨고 놀며 책을 보기에는 너무 딱딱하다. 이 공간은 이런 청소년들에게 “친구와 만나서 놀고, 속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심심하면 책도 보라”는 뜻에서 꾸려졌다. 동네 어른들도 찾지만 오후 3시부터는 청소년을 배려하기 위해 어른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고유의 문화나 이야기들이 있다. 청소년들이 더욱 편하게 이용하고, 자기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다.” 최향숙 관장의 설명이다.
총 45평 규모. 이 공간에는 청소년책만 2500권이 꽂혀 있다. 청소년들한테는 책 대출이 되지만 어른들은 안 된다. 애들은 자장면, 피자 등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지만 어른은 안 된다. 청소년들이 차를 마실 경우, 찻값은 1000원이지만 어른들은 두배를 내야 한다.

이 공간에 있는 큰 기둥에는 청소년들 이름이 적힌 쿠폰이 붙어 있는데 이 쿠폰은 공간을 이용할 때마다 찍어준다. 방문 횟수만큼 음료 등을 무료로 준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프리 티켓’이라는 이름의 무료 음료 쿠폰도 발행한다. 그야말로 청소년에게 특별한 대접을 하는 공간이다. 다락처럼 만든 2층의 복층식 공간에서는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편하게 잠도 잘 수 있다.

139389534271_20140305 (1).JPG » 가볼 만한 이색도서관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덕이고 3년 이의철군은 고교 진학 뒤 백마에서 탄현까지 지하철로 통학을 하던 중 이 공간을 알게 됐다. 이군은 “쉴 틈이 생기면 일산 복합쇼핑몰 라페스타 등의 커피숍이나 피시방, 노래방 등을 이용했었는데 이젠 여기 와서 책도 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고 했다. 영상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군은 이 공간 1주년 기념 공연 때 오프닝 영상 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 공간의 특색 가운데 또 하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조언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풍산중 3년 노하림양, 서세연양은 “큰 도서관에 가면 수다도 못 떠는데 친구랑 모여 수다를 떨 수 있어 좋고, 김명희 선생님 등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지킴이 선생님이 계셔서 진로, 이성 문제 상담 등도 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했다.

최 관장은 “학부모나 도서관 쪽에서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뭘 하자고 너무 강요하거나 빨리 진행하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뭘 하려는지 살펴보고, 그 요구에 맞춰 적절한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9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도 대상층을 청소년으로 특화한 ‘초록리본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멘토링 사업을 하는 사회복지 엔지오(NGO) 러빙핸즈가 설립했다. 러빙핸즈 대표 박현홍씨와 개그우먼 김지선씨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마음이 쉴 곳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또래 그리고 책, 멘토가 될 만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낼 공간을 마련해주자는 뜻에서 만든 도서관이다. 열람실, 간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 스크린, 빔 프로젝트 등을 갖춘 세미나실 등이 있다.

약 30평 규모의 도서관에는 3000여권 책이 꽂혀 있다. 서가에는 사람 이름이 적혀 있다. 초기 도서관 구축 때 한구좌당 10만원 기부 운동을 했을 때 기부한 이들의 이름이다. 이 도서관 역시 회원이 되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음료를 1000원에 판다. 10회 이상 방문해 쿠폰을 찍으면 음료를 마시거나 책을 한권 가져갈 수 있다. 현재 도서관에서는 재능기부 프로그램, 관장과 함께하는 책 읽기 프로그램 등이 열리고 있다.

이주영 간사는 “아직까진 러빙핸즈 멘티들 중심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데 모든 청소년들에게 활짝 열린 공간이니까 누구나 와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한겨레 신문 2014년 3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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