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어려운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었고 아마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었다하면 그날로 또는 마지막 몇장을 미처 다 읽지도 않고 리뷰를 쓰는 내가
이 책은 지금 거의 일주일이 지나도록 리뷰를 못 쓰고 미루고 있었다.
예방접종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대표적인 책은 이 책과 더불어 두 권이 더 있다.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와 [예방접종 - 부모의 딜레마]라는 책이 그것이다.
나는 사실 예방접종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이 두려워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나머지 두 권도 모두 읽고
함께 리뷰를 쓰려했다.
그런데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나는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였고 그 탓인지 몸도 지쳐있었다.
나의 생기를 복원하려면 다른 책들은 잠시 쉬어야한다고 내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 놓았었다.
글도 써지지 않았다.
아이로 인해 그 생기를 채워갈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잠든 후 늘 감사한 마음이던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 좀 허탈해져 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그저 잠든 아이 곁에서 작은 손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뺨을 쓰다듬으며 간신히 내 마음을 추스리는 것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 예방접종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이 돌 무렵 나 자신에 대한 엄마노릇에 대해 좌절하고 있던 당시 나를 구원했던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번째 선생님입니다]에서 뒷부분에 예방접종에 대해
'이 주제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의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스스로 연구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한 첫 단락을 읽고 본능적으로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고
그 생각자체가 두려워 고백컨데 부끄럽지만 그만 책장을 덮어버렸다.
진실의 실마리를 잡았으면 끝까지 풀어야했을 것 아니냐고 지금의 내 양심이 내게 꾸짖지만
정말 두려웠다.
문화로 아니 절대적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정신에 자리잡은 예방접종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다시 [당신은~] 책을 들춰보니 예방접종에 대한 경고를 알리는 내용을 담은 책 중에
가장 온건하게 쓰여진 것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겠다.
그 사이에 내 아이는 두 돌 이전에 행해지는 모든 예방접종을 끝낸 상태였다.
필수는 물론 선택까지.
다행히도 아이는 그 모든 접종을 잘 견뎌주었고 현재에도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의사들이나 예방접종을 여전히 신앙으로 믿고자하는 사람들이
보아라 네 아이가 건강한 것이 예방접종 덕도 있지 않겠느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근거로 삼고있는 객관적인 의학적 자료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현재 건강한 것을 예방접종에 대한 감사로 돌리지 않게 된다.
거창하게 의학적 자료까지 갈 것도 없다.
병원에서 아이의 부모에게서 빼돌리고 있는 백신 제품 설명서에 적인 성분 이름만 보아도
가슴을 여러번 쓸어내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차례 아이를 소중하게 감싸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었고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현재 내 아이의 몸에 있을, 또는 있을 수도 있는 잠복해 있는 백신의 위험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함을 알았다.
물론 없을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아니 신이 아이의 몸 속의 독극물들을 다 해결해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다.
어쨌든 내가 알게 된 건 아이의 면역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엄마로서의 일이 더 주어졌다는 것이다.
더 주의해서 아이를 돌봐야 함을 알았다.
'소아 질환의 가장 큰 위험은 집단 예방 접종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려는 위협적이고 비효율적인 노력이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이것이 당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예방 접종이 아주 교묘하고 적극적으로 팔려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예방 접종을 한때 두려움에 떨게 했던 질병들을 제거해버린 '기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예방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모하게 여겨진다. 소아과 의사들에게 소아과의 수입 유지책이 된 예방 접종을 공격하는 것은 사제에게 교황의 무류성(교황이 교회의 대표자로 행동할 때 잘못할 수 없다는, 즉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논리)을 부정하는 행위와 맞먹는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열린 마음을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 당신이 예방 접종에 대해서 믿게 된 정황이나 설명의 상당수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에 '예방접종'과 관련된 장에 쓰여진 글이다.
이 글의 저자 역시 예방접종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열린 마음을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읽어보면 안다.
내가 [당신은 당신~] 책에서 예방접종에 대한 미심쩍은 내용을 보고 덮어버렸듯이 안보면 모르지만
이미 열어 보았다면 이 쪽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의 저자가
오랜 의료 경험을 통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할머니 의사선생님이고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의 저자 역시
미국 의학계의 중진으로 수많은 상을 수상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통점을 나는 발견했다.
어쩐지 이 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것이 내게는
이 글들이 이와 반대되는 내용을 다룬 다른 책들보다 더 정의에 가깝다고 믿는 근거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아이 건강에 대해 참고로 삼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엄마들이 보고 있던 책이 바로 '삐뽀삐뽀 119'였다.
'삐뽀~' 책을 나는 자주 들여다 보았다.
예방접종을 맞추러 가기 전에도 보았던 책이다.
많은 엄마들이 나와 같이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예방접종에 대한 현대의학의 주류에 대한 의견으로 '삐뽀~'책의 내용을 언급해 볼까 한다.
'예방접종은 현대의 의학이 만들어낸 최고의 업적입니다. 불과 100년 전에 평균 30~40세도 못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평균 80세를 바라보는 것은 바로 예방 접종 덕분입니다. 최근에 예방접종이 몸에 나쁘다고 접종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곤란합니다. 심지어는 접종을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책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홍역 예방접종을 잠시 등한시 했다가 2년간에 걸친 홍역의 대유행을 겪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이런 뼈아픈 경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방접종을 맞지 말라는 이런 황당한 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게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사실 믿고 싶었다. 내 아이에게 모든 예방접종을 이미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예방접종이 아이의 건강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정보를 얻고 싶은 강력한 동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너무도 허술했다.
그저 아리송한 말로 '최고의 업적'이다, '이것은 정말 곤란하다', '황당한 일이다.'라고 했다.
이건 의사로의 권위를 앞세워 의사라는 전문가가 최고의 업적이고 곤란하고 황당한 일이라면
그렇게 알아도 될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유일한 사실을 들어 근거로 내세운 뒤에 홍역 예방접종을 멈췄다가 다시 홍역 대유행을 겪은 때에 대한 것도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의 MMR백신 부분이 오히려 내겐 설득력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30,088명, 2001년에는 8월까지만 24,508명이 홍역에 걸렸다. 이 시기는 처음 홍역백신 접종을 한 엄마 세대가 아이를 출산한 시점이었다. 이 아이들은 홍역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회복됐던 엄마들이 태아에게 전해줄 수 있는 모성항체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모성항체들은 출상 후 12~15개월 동안 아이들을 보호한다. 1989~1991년에 홍역의 출현으로 사망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12개월이 안 된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홍역백신을 접종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의 내용에 실망한 결정적인 부분은 다른 데 있다.
'DPT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예전부터 사용하던 DPT는 2가 백신이고, 최근에 3가 백신인 인판릭스라는 약이 수입되어 접종되고 있습니다. 수은방부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고, 접종 가격은 3만원 정도로 비싼 것이 흠이지만 비용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접종할 수 있습니다.'
난 이 부분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은방부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니.....
'Td는 2004년 5월 드디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현재 접종 중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저자이다.
그렇다면 '수은방부제가 없는 DPT백신이 드디어 도입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백신에 수은을 비롯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이런 상반되는 서술태도에 나는 사실 분노했다.
게다가 예방접종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반드시 맞아야한다는 모든 근거로 삼는 나라가 '미국'뿐인데다가
(유럽이나 일본의 예는 하나도 다루지 않고 있다)
그의 예방접종에 대한 설명에 대한 근거로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미국 예방접종이 미국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이 책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와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두 책으로
모두 미국 의학계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라면 그의 논리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조용히 이 책을 저 편으로 접어 두었다.
사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예방접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최근의 여러 독서를 통해 녹색평론의 글들을 통해서 학교와 사회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여러가지 구조적 힘의 원리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사실 근현대를 포함해 100년 조금 넘는다.
산업화와 함께 자본이 등장하면서 그 자본의 거대 흐름이 형성되는데
그 흐름 속에 형성된 모든 사회구조가 사실 문제를 갖고 있다.
학교, 은행, 정부, 농업, 우유산업, 축산업, 언론 그리고 병원시스템까지.
전체 틀이 문제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회에 속한 개개인이 정의를 말하고 정의를 따르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위에 언급한 한 의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조차도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한국 사회의 젊은 엄마들에게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에게 정의로움까지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로 어떤 이로하여금 세상의 정의를 보는 눈을 갖게하고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게하는 것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주어지고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일정 역할을 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이 글의 편저자의 서문에 '이 책이 우리 아이가 나와 세상에게 준 선물이다. 많은 난치병을 훌륭하게 극복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극복하고 있는 아이에게 축복이 가득하길 빌며...' 부분을 보고 나는 가슴이 아팠고
시련을 통해 사회에서의 정당한 역할을 주는 신의 가혹함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또 한 가지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
그리고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까지 현대 의학에 대한 책을 내리 몇 권 읽고 내가 안 것은
사실 근현대가 진행되어 오면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학계에서 무언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임상 경험이 많아졌다는 것이 의학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적잖이 충격도 받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측하지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 근현대가 진행되어온 100여년 동안 사회의 위생이 현격히 좋아졌고
그로 인해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퍼졌던 전염병도 거의 사라졌다.
그 전염병들이 사라질 무렵에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고 백신도 그 시도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다른 모든 시도들과 조합을 이뤄 백신도 병이 사라지게 하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사라져야 했을 많은 백신들이 왜 여전히 남아 있는가하면
자본의 탐욕스러운 속성과 함께 신화의 옷을 입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현대 예방접종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내 생각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본의 속성이 아주 비인간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바라는 몇 가지는 병원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을 것이나
실천하려는 마음을 내기까지가 어려울 것으로 아다.
1. 제품설명서는 부모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선택하게 해야한다.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더 신중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이것을 제약회사와 병원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한 우리 나라의 내노라하는 대형병원에 몇 차례 전화해서 문의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답답해져서 '왜 저는 우리 아이 예방접종 할 때 제품 설명서를 받아보지 못했을까요'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하는 이야기가 '저희 투약부에는 백신만 와서 제품 설명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그 때 나는 또 한 번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의 세계로 한 발 들어섰다.
그리고 물었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는 약도 제품설명서가 다 들어 있고 부작용에 대해서 읽어볼 수 있는데
왜 주사로 놓여지는 예방접종에 대한 제품설명서를 아이들의 부모가 받아보지 못하는 걸까요.'하고
더이상 그 간호사에게는 들을 말이 없을 것 같아 전화를 끊었다.
2. 또 백신이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치더라도 부작용이 세대를 거쳐가며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복리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국가적 예방접종 방식이라면
그야말로 현대의학이라는 것이 100년 전이나 몇 백년 전의 의학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3. 적어도 아이들이 해독이 가능한 담즙을 형성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출 생후 6개월 이후로
예방접종을 미뤄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4. 그리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병원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면역이란 건강한 몸의 상태이고 행복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하루 한 번 한 번의 바람직한 사고와 엄마가 만들어주는 아이의 환경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역력이 어떻게 백신 주사로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의지하게 만든 병원도 병원이지만 아무 의심없이 모든 예방주사를 맞추고
각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키워졌겠지 막연하게 기대했던 나도 문제였다.
결국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무통분만처럼.
가까운 일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고 한다.
아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서 철저히 부모에게 교육한다.
이상이 있다 판단되는 경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맞추고 있고 내 아이도 맞춘 일본뇌염사백신도
아이들 예방접종에서 제외시킨 일본이다.
다국적 기업인 제약회사에게 우리나라는 호구일 것이다.
돈이라면 다 해결되고 그로 인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갈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나는 여건이 되는 한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유기농 식재료로 준비한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식구들의 먹거리로 삼으려고 한다.
시판 과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사양하고 있다.
그런데 내 아이의 피에 중금속을 넣어주다니 나는 지금 온 몸이 떨릴지경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보니 차라리 과자나 중금속으로 칠해진 아이의 장난감은 아주 양호한 것이었다.
그나마 소화기관과 해독기관에서 처리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다.
내가 육아와 살림을 사회에서의 직업대신 선택한 이유가 아이의 먹거리와 보살핌때문인데
이런 곳에서 어처구니없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생각하니 허무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속가능한 세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사명을 갖고 생각해 본다면
자연치유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겸손해져야 한다.
모든 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점점 알 수 없고 치유할 수 없는 병이 나오고 과학은 그를 따라갈 수 없는
꼬리잡기식 의학의 행보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낄 엄마들에게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번째 선생님입니다] 책의 구절을
인용해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게 할지 만약 접종을 한다면 어떤 병에 할지 혹은 어떤 시기에 할 지에 대해 부모는 예방 접종에 관한 찬반양론을 다해 잘 살펴보고 아이를 위하는 쪽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 주제에 관한 모든 방면의 정보들을 모아야 합니다. 접종을 '찬성'하는쪽의 정보는 쉽사리 소아과의사들이나 보건소 등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건강을 위한다는 세력 중에는 사실 여러분의 아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었고 아마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었다하면 그날로 또는 마지막 몇장을 미처 다 읽지도 않고 리뷰를 쓰는 내가
이 책은 지금 거의 일주일이 지나도록 리뷰를 못 쓰고 미루고 있었다.
예방접종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대표적인 책은 이 책과 더불어 두 권이 더 있다.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와 [예방접종 - 부모의 딜레마]라는 책이 그것이다.
나는 사실 예방접종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이 두려워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나머지 두 권도 모두 읽고
함께 리뷰를 쓰려했다.
그런데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나는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였고 그 탓인지 몸도 지쳐있었다.
나의 생기를 복원하려면 다른 책들은 잠시 쉬어야한다고 내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 놓았었다.
글도 써지지 않았다.
아이로 인해 그 생기를 채워갈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잠든 후 늘 감사한 마음이던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 좀 허탈해져 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그저 잠든 아이 곁에서 작은 손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뺨을 쓰다듬으며 간신히 내 마음을 추스리는 것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 예방접종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이 돌 무렵 나 자신에 대한 엄마노릇에 대해 좌절하고 있던 당시 나를 구원했던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번째 선생님입니다]에서 뒷부분에 예방접종에 대해
'이 주제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의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스스로 연구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한 첫 단락을 읽고 본능적으로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고
그 생각자체가 두려워 고백컨데 부끄럽지만 그만 책장을 덮어버렸다.
진실의 실마리를 잡았으면 끝까지 풀어야했을 것 아니냐고 지금의 내 양심이 내게 꾸짖지만
정말 두려웠다.
문화로 아니 절대적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정신에 자리잡은 예방접종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다시 [당신은~] 책을 들춰보니 예방접종에 대한 경고를 알리는 내용을 담은 책 중에
가장 온건하게 쓰여진 것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겠다.
그 사이에 내 아이는 두 돌 이전에 행해지는 모든 예방접종을 끝낸 상태였다.
필수는 물론 선택까지.
다행히도 아이는 그 모든 접종을 잘 견뎌주었고 현재에도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의사들이나 예방접종을 여전히 신앙으로 믿고자하는 사람들이
보아라 네 아이가 건강한 것이 예방접종 덕도 있지 않겠느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근거로 삼고있는 객관적인 의학적 자료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현재 건강한 것을 예방접종에 대한 감사로 돌리지 않게 된다.
거창하게 의학적 자료까지 갈 것도 없다.
병원에서 아이의 부모에게서 빼돌리고 있는 백신 제품 설명서에 적인 성분 이름만 보아도
가슴을 여러번 쓸어내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차례 아이를 소중하게 감싸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었고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현재 내 아이의 몸에 있을, 또는 있을 수도 있는 잠복해 있는 백신의 위험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함을 알았다.
물론 없을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아니 신이 아이의 몸 속의 독극물들을 다 해결해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다.
어쨌든 내가 알게 된 건 아이의 면역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엄마로서의 일이 더 주어졌다는 것이다.
더 주의해서 아이를 돌봐야 함을 알았다.
'소아 질환의 가장 큰 위험은 집단 예방 접종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려는 위협적이고 비효율적인 노력이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이것이 당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예방 접종이 아주 교묘하고 적극적으로 팔려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예방 접종을 한때 두려움에 떨게 했던 질병들을 제거해버린 '기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예방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모하게 여겨진다. 소아과 의사들에게 소아과의 수입 유지책이 된 예방 접종을 공격하는 것은 사제에게 교황의 무류성(교황이 교회의 대표자로 행동할 때 잘못할 수 없다는, 즉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논리)을 부정하는 행위와 맞먹는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열린 마음을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 당신이 예방 접종에 대해서 믿게 된 정황이나 설명의 상당수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에 '예방접종'과 관련된 장에 쓰여진 글이다.
이 글의 저자 역시 예방접종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열린 마음을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읽어보면 안다.
내가 [당신은 당신~] 책에서 예방접종에 대한 미심쩍은 내용을 보고 덮어버렸듯이 안보면 모르지만
이미 열어 보았다면 이 쪽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의 저자가
오랜 의료 경험을 통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할머니 의사선생님이고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의 저자 역시
미국 의학계의 중진으로 수많은 상을 수상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통점을 나는 발견했다.
어쩐지 이 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것이 내게는
이 글들이 이와 반대되는 내용을 다룬 다른 책들보다 더 정의에 가깝다고 믿는 근거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아이 건강에 대해 참고로 삼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엄마들이 보고 있던 책이 바로 '삐뽀삐뽀 119'였다.
'삐뽀~' 책을 나는 자주 들여다 보았다.
예방접종을 맞추러 가기 전에도 보았던 책이다.
많은 엄마들이 나와 같이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예방접종에 대한 현대의학의 주류에 대한 의견으로 '삐뽀~'책의 내용을 언급해 볼까 한다.
'예방접종은 현대의 의학이 만들어낸 최고의 업적입니다. 불과 100년 전에 평균 30~40세도 못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평균 80세를 바라보는 것은 바로 예방 접종 덕분입니다. 최근에 예방접종이 몸에 나쁘다고 접종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곤란합니다. 심지어는 접종을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책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홍역 예방접종을 잠시 등한시 했다가 2년간에 걸친 홍역의 대유행을 겪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이런 뼈아픈 경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방접종을 맞지 말라는 이런 황당한 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게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사실 믿고 싶었다. 내 아이에게 모든 예방접종을 이미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예방접종이 아이의 건강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정보를 얻고 싶은 강력한 동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너무도 허술했다.
그저 아리송한 말로 '최고의 업적'이다, '이것은 정말 곤란하다', '황당한 일이다.'라고 했다.
이건 의사로의 권위를 앞세워 의사라는 전문가가 최고의 업적이고 곤란하고 황당한 일이라면
그렇게 알아도 될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유일한 사실을 들어 근거로 내세운 뒤에 홍역 예방접종을 멈췄다가 다시 홍역 대유행을 겪은 때에 대한 것도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의 MMR백신 부분이 오히려 내겐 설득력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30,088명, 2001년에는 8월까지만 24,508명이 홍역에 걸렸다. 이 시기는 처음 홍역백신 접종을 한 엄마 세대가 아이를 출산한 시점이었다. 이 아이들은 홍역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회복됐던 엄마들이 태아에게 전해줄 수 있는 모성항체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모성항체들은 출상 후 12~15개월 동안 아이들을 보호한다. 1989~1991년에 홍역의 출현으로 사망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12개월이 안 된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홍역백신을 접종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의 내용에 실망한 결정적인 부분은 다른 데 있다.
'DPT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예전부터 사용하던 DPT는 2가 백신이고, 최근에 3가 백신인 인판릭스라는 약이 수입되어 접종되고 있습니다. 수은방부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고, 접종 가격은 3만원 정도로 비싼 것이 흠이지만 비용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접종할 수 있습니다.'
난 이 부분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은방부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니.....
'Td는 2004년 5월 드디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현재 접종 중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저자이다.
그렇다면 '수은방부제가 없는 DPT백신이 드디어 도입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백신에 수은을 비롯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이런 상반되는 서술태도에 나는 사실 분노했다.
게다가 예방접종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반드시 맞아야한다는 모든 근거로 삼는 나라가 '미국'뿐인데다가
(유럽이나 일본의 예는 하나도 다루지 않고 있다)
그의 예방접종에 대한 설명에 대한 근거로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미국 예방접종이 미국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이 책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와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두 책으로
모두 미국 의학계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라면 그의 논리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조용히 이 책을 저 편으로 접어 두었다.
사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예방접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최근의 여러 독서를 통해 녹색평론의 글들을 통해서 학교와 사회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여러가지 구조적 힘의 원리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사실 근현대를 포함해 100년 조금 넘는다.
산업화와 함께 자본이 등장하면서 그 자본의 거대 흐름이 형성되는데
그 흐름 속에 형성된 모든 사회구조가 사실 문제를 갖고 있다.
학교, 은행, 정부, 농업, 우유산업, 축산업, 언론 그리고 병원시스템까지.
전체 틀이 문제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회에 속한 개개인이 정의를 말하고 정의를 따르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위에 언급한 한 의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조차도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한국 사회의 젊은 엄마들에게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에게 정의로움까지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로 어떤 이로하여금 세상의 정의를 보는 눈을 갖게하고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게하는 것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주어지고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일정 역할을 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이 글의 편저자의 서문에 '이 책이 우리 아이가 나와 세상에게 준 선물이다. 많은 난치병을 훌륭하게 극복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극복하고 있는 아이에게 축복이 가득하길 빌며...' 부분을 보고 나는 가슴이 아팠고
시련을 통해 사회에서의 정당한 역할을 주는 신의 가혹함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또 한 가지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
그리고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까지 현대 의학에 대한 책을 내리 몇 권 읽고 내가 안 것은
사실 근현대가 진행되어 오면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학계에서 무언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임상 경험이 많아졌다는 것이 의학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적잖이 충격도 받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측하지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 근현대가 진행되어온 100여년 동안 사회의 위생이 현격히 좋아졌고
그로 인해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퍼졌던 전염병도 거의 사라졌다.
그 전염병들이 사라질 무렵에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고 백신도 그 시도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다른 모든 시도들과 조합을 이뤄 백신도 병이 사라지게 하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사라져야 했을 많은 백신들이 왜 여전히 남아 있는가하면
자본의 탐욕스러운 속성과 함께 신화의 옷을 입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현대 예방접종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내 생각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본의 속성이 아주 비인간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바라는 몇 가지는 병원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을 것이나
실천하려는 마음을 내기까지가 어려울 것으로 아다.
1. 제품설명서는 부모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선택하게 해야한다.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더 신중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이것을 제약회사와 병원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한 우리 나라의 내노라하는 대형병원에 몇 차례 전화해서 문의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답답해져서 '왜 저는 우리 아이 예방접종 할 때 제품 설명서를 받아보지 못했을까요'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하는 이야기가 '저희 투약부에는 백신만 와서 제품 설명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그 때 나는 또 한 번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의 세계로 한 발 들어섰다.
그리고 물었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는 약도 제품설명서가 다 들어 있고 부작용에 대해서 읽어볼 수 있는데
왜 주사로 놓여지는 예방접종에 대한 제품설명서를 아이들의 부모가 받아보지 못하는 걸까요.'하고
더이상 그 간호사에게는 들을 말이 없을 것 같아 전화를 끊었다.
2. 또 백신이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치더라도 부작용이 세대를 거쳐가며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복리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국가적 예방접종 방식이라면
그야말로 현대의학이라는 것이 100년 전이나 몇 백년 전의 의학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3. 적어도 아이들이 해독이 가능한 담즙을 형성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출 생후 6개월 이후로
예방접종을 미뤄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4. 그리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병원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면역이란 건강한 몸의 상태이고 행복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하루 한 번 한 번의 바람직한 사고와 엄마가 만들어주는 아이의 환경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역력이 어떻게 백신 주사로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의지하게 만든 병원도 병원이지만 아무 의심없이 모든 예방주사를 맞추고
각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키워졌겠지 막연하게 기대했던 나도 문제였다.
결국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무통분만처럼.
가까운 일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고 한다.
아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서 철저히 부모에게 교육한다.
이상이 있다 판단되는 경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맞추고 있고 내 아이도 맞춘 일본뇌염사백신도
아이들 예방접종에서 제외시킨 일본이다.
다국적 기업인 제약회사에게 우리나라는 호구일 것이다.
돈이라면 다 해결되고 그로 인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갈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나는 여건이 되는 한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유기농 식재료로 준비한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식구들의 먹거리로 삼으려고 한다.
시판 과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사양하고 있다.
그런데 내 아이의 피에 중금속을 넣어주다니 나는 지금 온 몸이 떨릴지경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보니 차라리 과자나 중금속으로 칠해진 아이의 장난감은 아주 양호한 것이었다.
그나마 소화기관과 해독기관에서 처리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다.
내가 육아와 살림을 사회에서의 직업대신 선택한 이유가 아이의 먹거리와 보살핌때문인데
이런 곳에서 어처구니없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생각하니 허무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속가능한 세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사명을 갖고 생각해 본다면
자연치유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겸손해져야 한다.
모든 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점점 알 수 없고 치유할 수 없는 병이 나오고 과학은 그를 따라갈 수 없는
꼬리잡기식 의학의 행보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낄 엄마들에게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번째 선생님입니다] 책의 구절을
인용해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게 할지 만약 접종을 한다면 어떤 병에 할지 혹은 어떤 시기에 할 지에 대해 부모는 예방 접종에 관한 찬반양론을 다해 잘 살펴보고 아이를 위하는 쪽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 주제에 관한 모든 방면의 정보들을 모아야 합니다. 접종을 '찬성'하는쪽의 정보는 쉽사리 소아과의사들이나 보건소 등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건강을 위한다는 세력 중에는 사실 여러분의 아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