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석 자.
세 음절에 불과하지만, 나를 충분히 집약한 느낌으로 기억되어 줄 나의 인격 모양체.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기 위해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는 것,
그 보다 내 이름 석자를 나란 사람과 일치시켜 기억해주는 것,
혹은 편지에 또박또박 써주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엄마”가 되고 부터는 더욱 그렇다.
어머님~, 어머니, ~엄마로 불리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이기도 하겠지만,
역시나 존엄을 떨치고 싶어하는 나의 자아 탓이겠거니 싶다. ㅋㅋ
존재감 제로가 되는 일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나의 자아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상황 따위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이자 마누라, 그리고 며느리, 출가외인 딸래미가 되어 있는 내가
원래 가졌던 고유명사로 불려지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보게 되는 오래된 친구들, 친정 부모님..
그리고 보험을 권유하는 ‘영혼없는’ 스팸전화 목소리 외에는…..ㅋ..
일주일 간 고열에 시달리며 유치원을 결석하고 못나간 우리 꼬마 녀석.
하원 한 후 녀석의 가방을 정리하려 보니, 예쁜 색깔의 하트가 그려진 A4 몇 장이 눈에 띈다.
[ oo야, 빨리 나아 사랑해. 정말 말 사랑해] 라는 예쁜 글씨와 하트들..
나는 겨우 그 두 줄 문장 사이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만다.
하지만, 꼬마가 지금의 꼬마이기까지 기여도가 상당한 엄마로서 이 뿌듯함을 느껴도 되지 않겠는가?
꼬마가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우고, 불러가며 정답게 지내는 모습들이 눈 앞에 그려진다. 흐뭇했다.
한 생명체가 태어나고, 이름 붙여 주기까지는 길어야 한 달
(법적으로 출생신고 마감 기한이 그러하니..)
짧은 기일 내에 지어졌지만 쉽게 지었을 리 없는, 그 이름이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지고, 불려지고, 아껴지는 일들은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스가 된다.
나는 홀로 일구어낸 성과나 업적도 중요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사람들 틈에서의 관계맺음이 행복한 인생의 밑거름으로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보니 지금까지는 실제로 그런 거 같다.
이름.은 그래서 중요한가보다.
그리고 내가 이름 불려지는 것에서 느끼는 희열도 그 이유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꼬마야. 애써 지은 이름, 고민고민하다 결국 작명소까지 갔다온 니 이름 많이많이 불려지길..
부디 친절하고 따뜻하게 많이 불려지는 이름이길 바란다..^^
꼬마 친구 편지 한 줄에서 참 많이도 갔다. 치명적인 감수성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