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아, 아빠 오늘 몽골에 가
오늘 저녁 몽골로 떠난다. 일곱 번째 몽골 여행이다. 이번에는 15박 16일 동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육로로 2,500킬로를 달려 알타이산맥으로 간다. 간 크게 이럴 수 있는 건 통 큰 아내 덕분이다. 여행을 가는 동안 아내가 단축근무를 하며 딸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야근 시킨다며 뭐라 했지만 이럴 때는 아내 직장이 그저 고맙다. 몽골 여행. 한 때는 나의 꿈이었고 이제는 딸의 꿈이다. 딸아이가 여섯 살이 되는 내년에 같이 몽골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곳에서 아빠말이 아니라 진짜 말을 타보기로 했다. 얼마 전이다.
서령 : 000이 여행 갔다 와서 색소 없는 과일로 된 초콜렛 줬어. 000은 보라로 여행 갔다 왔대.
엄마 : 보라? 보라카이?
서령 : 응. 엄마, 나 보라카로 여행가고 싶어.
엄마 : 그래, 보라카이에 가자. 또 어디 갈까?
서령 : 몽골.
엄마 : 몽골, 히말라야, 모나코.
서령 : 세 개나 가네. 보라카도 가야지. 네 개.
엄마 : 노르웨이도 가고 프라하도 가고.
서령 : 그럼 여섯 갠데. 너무 많이 가잖아. 친구들 못 만나잖아.
몽골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 덕에 서령이에게 몽골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며칠 전 여행에서 쓸 밥그릇을 샀다.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아이들용 면식기였다. 안은 스테인레스고 바깥은 플라스틱이어서 뜨거워도 제법 괜찮았고 닦기에도 좋았다. 반짝반짝 잘 닦아 놓은 그 그릇을 서령이가 발견하고 말았다.
서령 : 아빠, 누구 꺼야?
아빠 : (아빠꺼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하다)서령이 꺼. 이번에 몽골 여행갈 때 빌려줘. 약속.
야속이란 말을 들은 서령이는 손도장에 싸인 하고 복사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서령 : 아빠, 몽골 오늘 가?
아빠 : 아니. 세 밤 더 자고 가는데. 아빠 몽골 가는 게 아쉬워?
서령 : (대답은 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어제 그 식기를 꺼내 들고는) 여기에 카레 주세요.
아빠가 아니라 그 그릇 때문이었다.
어제 아침
아빠 : 서령아, 내일 아빠 몽골에 가. 엄마하고 재미있게 지내.
서령 : 아빠 가지 말라고 다리 붙잡을 거야. (면식기를 가져오더니)아빠 여기에 우유주세요.
오늘 아침
아빠 : 서령아, 아빠 오늘 몽골에 가. 엄마하고 재미있게 지내.
서령 : 아빠 한 밤만 자고 오세요.
아빠 : 한 밤만 자고는 못 오고 열다섯 밤 자야해.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유치원 갈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서령 : 아빠 나 머리 묶고 왕관 머리핀 하고 갈래.
아빠 : 그래.
서령 : 아빠, 뒷머리는 반만 묶어 주세요.
뒷머리를 반만 남기고 머리를 묶었다. 서령이가 손으로 왼쪽 오른쪽 머리카락을 번갈아 만져 보았다.
서령 : 아빠, 반이 아니잖아. 다시 묶어 줘.
까짓 것 오늘 여행가는 날인데 그 정도쯤이야.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손에서 머리카락이 삐져나오고 머리끈으로 묶다 머리카락이 끈에 찝히고. 몇 번을 다시 했다. 슬슬 열이 났다.
서령 : 아빠, 아빠는 종이 만들기는 잘하는데 머리카락은 왜 못 묶어?
아빠 : 아빠도 잘 못하는 거 있다고!
서령 : 다시 해봐. 잘 묶어 줘.
아빠 : (아이 정말. 오늘은 여행가는 날이니까 즐거운 기분으로) 잘 안 돼.
겨우 거울을 들여다본 서령이가 환히 웃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유치원에 보내고 돌아왔다. 여행 기간 내내 딸아이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내일이면 초원에 들어가겠지.
(몽골 초원에서 만난 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