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276427608_20130703.JPG
햇밀수제비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 밥상

마당에 백일홍이 피었다. 백일홍이 필 무렵, 밀과 보리를 거둔다. 우리도 밀을 조금 지었다. 정말 조금, 그것도 척박한 다랑이 밭에 땅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밀은 추운 겨울을 나며 뿌리를 깊이 내리니 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심어 놓고도 밀이 저 알아서 열매를 맺으니 밀 먹을 욕심이 난다. 하지에 낫으로 베어 마당에 부려 놓으니, 누렇게 익은 밀이 자글자글한 여름 햇살을 받고 황금빛으로 빛난다. 날이 좋으면 사나흘이면 다 마르지만, 중간중간 장맛비가 오시면 언제가 될지. 드디어 남편이 도리깨로 터는데, 나는 도망가고 말았다.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데 도리깨를 따라 밀 까락이 온몸에 달라붙으면 얼마나 고역인지 알기에. 조금 심었으니 나온 것도 조금. 그래도 올여름 우리 식구 햇밀 맛은 보겠다.

여름 점심으로는 밥보다는 밀가루 음식이 더욱 당긴다. 하지만 도시 사는 여러분들이 사먹는 밀가루 음식은 십중팔구 언제 적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입밀가루. 우리밀가루로 음식을 해 먹는다 해도 그게 햇밀일까? ㈜우리밀에 전화로 물어보니 6월 말에서 7월은 밀을 수매하는 시기고, 그걸 제분해 생협이나 마트에 나오는 건 빨라야 8월 중순에서 9월 초란다. 아니 여름이 다 지나야 햇밀을 만날 수 있잖아!

햇밀에서는 찐한 여름 햇살 향이 난다. 이제 그 햇밀을 곱게 빻아 고운 밀가루만을 모아야 한다. 밀농사가 사라지면서 밀 제분소도 따라 사라져 우리처럼 밀을 조금 농사하는 집은 제분해 올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우리 햇밀가루 품질은 그다지 좋을 리 없다. 해 먹을 수 있는 건 수제비.

밀가루를 미리 애벌반죽한 뒤 비닐을 씌워 밀가루가 물과 어우러질 시간을 준다. 두어 시간 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끓이면서, 반죽을 다시 한번 치댄다. 텃밭에 가서 부추를 한 움큼 베고 청양고추를 몇 개 따다가 양념장을 만든다. 만드는 김에 부추 겉절이도 하고.

수제비를 끓일 시간. 반죽을 손에 잡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잡고 국물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선다. 펄펄 끓는 국물에 반죽 끝을 살짝 담갔다가 꺼내면, 국물에 들어갔던 부분이 매끄럽게 익반죽이 된다. 거기를 손가락으로 비벼 떼어 넣는다. 또 담갔다가 떼어 넣고, 이렇게 하면 수제비가 귓불처럼 얇으면서도 쫄깃하다.

여기에 햇감자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금상첨화. 수제비를 한 대접 떠서 먹으니 ‘농사짓는 맛이구나!’ 요렇게 약을 올리려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벌써 2013년 햇밀가루를 파는 곳이 있더라. 농민 직거래는 cafe.daum.net/yuginong-story, 장터는 http://miral1000.com, 햇밀 수제비로 더운 여름을 날 힘을 얻으시길!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한겨레신문 2013년 7월 3일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474 [자유글] [70점 엄마의 쌍둥이 육아] 조부모 육아시대 imagefile [4] 까칠한 워킹맘 2013-07-12 6204
1473 [자유글] [70점 엄마의 쌍둥이 육아] 아침을 여는 유치원 버스 imagefile [2] 까칠한 워킹맘 2013-07-12 9966
1472 [살림]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이건 뭐지? image wonibros 2013-07-11 4719
1471 [자유글] lotus님, 보세요^^ imagefile [3] 윤영희 2013-07-10 4788
1470 [자유글] 이름 석 자 imagefile [4] 분홍구름 2013-07-07 4615
1469 [가족] (아빠와 딸의 마주이야기 10)서령아, 아빠 오늘 몽골에 가 imagefile [2] artika 2013-07-05 7277
1468 2013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해볼까요? image 베이비트리 2013-07-05 6221
1467 [요리] 오미자 음료 초간단 요리법 image [2] 베이비트리 2013-07-04 13570
1466 [책읽는부모] <나무에게 배운다> 나무의 마음 아이들 마음 [2] 루가맘 2013-07-04 5047
1465 [가족] (아빠와 딸의 마주이야기9)뱃속에서 쫑알쫑알 거려요 imagefile [3] artika 2013-07-03 5319
» [요리] 약오르지롱! 햇밀수제비 image [1] 베이비트리 2013-07-03 5930
1463 [자유글] 아이 학교에 건의하기 [12] 난엄마다 2013-07-03 4491
1462 [가족] 아인 엄마, 수고했어! image [1] 베이비트리 2013-07-01 4701
1461 [책읽는부모] <나무에게 배운다> 아이의 싹을 키운다는 건 [3] ogamdo13 2013-06-30 5031
1460 [책읽는부모] 동화책 소개 <따라와, 멋진 걸 보여줄게> [1] fjrql 2013-06-30 5007
1459 [자유글] 나에겐 슬픈 동화, 녀석에겐..? [10] 분홍구름 2013-06-28 4755
1458 [나들이] 여름휴가 어디로…계곡, 해수욕장 제끼다 image 베이비트리 2013-06-27 4969
1457 [가족] 아빠와 딸의 마주이야기8)몸으로 내는 소리야 imagefile [2] artika 2013-06-27 5476
1456 [책읽는부모]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 imagefile [5] 꿈꾸는식물 2013-06-26 7640
1455 [살림] 알뜰족, 이젠 제습제·주방세제도 직접 만든다 image 베이비트리 2013-06-26 7329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