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빛나는 여름님 글을 읽고 마음이 먹먹할 때 생각난 시다. 완벽하게 타인을 위한 기도라니... 참말 가슴 따뜻하고, 애 낳고 사는 이제서야 아! 하고 공감이 되는 말이다. 숱한 방황이 거듭되던 때 주로 기도라는 건 나만의 것이 많았다. 빌 게 많았다. 그만큼 필요한 게, 아니 원하는게 많았다. 기도라기보다 하느님, 부처님, 절대자에게 '요청'이 많았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엄마가 된 지금은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더 넓어져서 그런가, 자주 두 손을 감싸게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니 나와 다를게 없다. 그리 생각하면 밉고 나쁜 사람도 그저 가엾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겐 더 애가 쓰인다.

 뭘 달라고 조르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주고 내 에너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내는 기도! 이게 참말 기도겠지. 이런 기도가 그 사람한테 그리고 내게도 필요한 때다.

+ 빛나는 여름님 덕분에 간만에 두 손 감싸고 '기도'를 해 봅니다. 따뜻한 겨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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