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임길택
쓰다 남은 판자 조각에
비뚜름히 새겨놓은 글귀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아궁이 앞
불쏘시개 솔잎 한 줌만이
날마다 이 글귀를 읽고 있다
달마다 받아보는 글쓰기 회보 가운데 '함께 읽는 시'에 실려 있는 시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살고프다고 내내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는 요새 그러고 있지 못하다. 없어서 사고, 불편해서 산다. 사기 위해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특히나 요새 제일 많이 사는 것이 식재료이다. 부엌육아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하고서 이것 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있지만,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꾸 사댄다. 그러다보니 미처 다 요리하지 못한 재료들이 버려질 때가 많다. 이번 달 카드값을 보고 남편이 걱정할 만하다. 돈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사지 않는 날이 없는 게 더 문제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처음 임길택 선생님을 알게 된 때부터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 제일 좋은 음식은 내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임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머리로만 알고 몸이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거다. 따뜻한 밥 한 공기, 김 한 조각,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만 있어도 잘만 먹는 아이를 곁에 두고서, 좋은 고기를 욕심낸다. 내의 몇 벌 껴 입어 따뜻하기만 하면 만족하는 아이인데, 예쁘고 좋다는 옷을 보면 욕심이 난다. 옆집 언니가 물려준 까꿍책을 몇 번씩 웃으며 읽는 아이를 두고, 좋다는 어린이책에 손을 뻗는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무얼 해주기보다 안 해 주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시를 여러 번 읽으며 나에게 힘주어 이야기한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