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행사 3일전 통지문이 온다.

다음주 화요일 할로윈 파티가 진행됩니다. 할로윈에 맞는 복장을 입혀 보내주세요.”

이런, 안내문을 받은 건 금요일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빠듯한 배송타임-

넋놓고 있던 (사실 뻔히 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놓치고 있었음) 엄마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급히 마트 3군데를 뒤진다. 벌써 다 팔리고 상품이 거의 없다….--!!!!! 할 수 없이 [오늘배송!]이 달린 상품을 인터넷 마켓에서 분노의 검색질.

할로윈, 대충 어찌 입혀야 하는 지는 안다. 정답 : 코스튬..

5세 아들래미가 한창 빠져있는 영웅 파워레인저 소품을 검색해보니, 보기에도 그럴싸한 건 4만원이 넘는다. -“ 이건 너무 오바다. 아이가 옆에 와서 엄마 이거!!!” 할까봐 얼른 창을 닫고, 만만한 가격대를 찾아보았다. 이미 마트 세 군데를 들러서 아이의 취향을 엿본 엄마는(드라큘라, 호박가면 등은 싫다고 쳐다도 안봄) 할 수 없이 배트맨 옷 하나를 고른다. 그 중 그나마 착한 가격 15,600. 급히 결제를 하고 배송이 월요일까지(행사 전날) 되는 지 전화까지 해서 확답을 받으니 이제야 맘이 좀 놓인다.

이런 소동 아닌 소동을 벌이면서 자꾸 드는 생각우리 명절도 아닌데, 왜 이걸 해야 하지???

물론 아이들에게 이벤트는 하나의 즐거움이란 걸 안다. 그런데 양상이 좀 과열됐지 싶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유치원들 중엔 원에서 알아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고, 단히 아이가 수업시간에 직접 만든 소품을 이용해서 행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엄마들이 옷을 준비해서 입혀가는 행사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행사 당일인 오늘 아침. 등원버스를 타러 나오는 아이들. 하나 같이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신데렐라, 천사, 악마, 파워레인저, 배트맨, 스파이더만, 슈퍼맨 등, 여자아이들은 공주님, 남자아이들은 어벤져스. 물론,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행사의 의미도 모르겠으니, 아이들을 위해 멋진 옷을 준비한 (나를 포함한)엄마들의 정성이 왠지 씁쓸해 보였다. 일년에 이 한 번을 위해 비싼 소품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경제성도 경제성이지만, 남의 명절에 우리가 과열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딘가 불편했다.

작년에는 엄마의 소신을 지킨답시고, 마트에서 망토라고 불리우는 검정나일론 조각과 하루 지나자 너덜거려진 삼지창을 하나 들려보냈더니 아이가 시무룩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멋진 만화주인공으로 왔던게지

오늘 하원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다른 친구들도 다 멋지게 하고 왔어?”

ㅇㅇ는 오늘 성난 허수아비 하고 왔어. 해적으로 변신한 ##는 돼지코야. 안멋져

아이들 나름대로 자신의 복장과 친구들의 복장을 비교해보긴 했나보다. 그런데 성난 허수아비는 뭐지? 하도 궁금하여 유치원 선생님에게 물어 받은 사진을 보니, 성난 허수아비는 토이 스토리의 우디였고, ##가 쓰고 온 해적 가면은 과연 코가 이~따만했다. 하이고..ㅇㅇ엄마가 우디 복장을 사고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데, 성난 허수아비라니..ㅋㅋㅋ

너희들은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구나- ..그랬음 됐지 뭐-..

즐거웠던 듯 재잘대는 너를 보니, 내년에도 이 엄마는 변장 도구를 사러 분주하지 싶다. 이래서 엄마들은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쓰기가 힘들다. 바빠서 미처 신경 써주지 못한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있겠지..

어쨌거나, 올 해의 할로윈은 지나갔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아직 박쥐가 한 마리 있다.

오늘 행사 끝내고 분명히 사라져주기로 했는데, 아직 집에 안갔다.

제발 우리 아들을 뱉어놓고 사라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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