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라이프
정서적 안정 위해 식물 키우기 권하는 ‘식물 처방’ 관심…이달 말까지 하는 관련 전시회 북적

“식물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질문을 듣고 가슴이 뜨끔해졌다. 얼마 전 집에서 키우던 화초가 줄줄이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한달에 물 한번만 줘도 된다는 산세비에리아마저 죽었다.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은 곧 ‘안 키우는 게 낫다’는 체념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식물 한번 키워볼까 생각하던 이들이 포기하는 수순이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식물 처방’이란 독특한 콘셉트의 실내 가드닝(Gardening)을 도입한 ‘슬로우파마씨’의 이구름 대표다. 슬로우파마씨는 ‘느린 약국’ 정도로 번역된다. 화초를 취급하는 업체가 약국이라니? 이 대표 스스로 식물을 통해 치유된 경험이 있어 그렇게 지었단다. 그것도 ‘천천히’ 말이다.

슬로우파마씨가 내세운 ‘식물 처방’이 몸에 병이 있는 사람에게 ‘약초’를 처방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며 정서적 안정을 되찾도록 도움을 주는 ‘힐링’의 의미다. 광고 디자인 일을 5년 동안 하던 이 대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완전히 소진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에 시달리던 그가 찾은 것이 바로 식물이었다. 식물을 키우자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각종 전시회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커먼그라운드에서 열린 ‘처방전’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 광진구 커먼그라운드에서 열린 ‘처방전’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 대표처럼 정서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관련 전시회까지 열릴 정도다. 지난 16일부터 서울 광진구 복합문화공간 커먼그라운드에선 토이리퍼블릭 주최로 ‘처방전’이라는 독특한 전시회(무료, 29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위장병이나 감기 같은 진짜 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식물을 통한 정서적 힐링에 초점을 맞추었다.

열악한 환경에선 다육식물이 제격
스투키, 6개월에 물 한번만 줘도 돼
벽에 걸면 아래로 자라는 ‘행잉 플랜트’
가습기 구실 하는 ‘이끼볼’도 인기

장미의 가시에 ‘보호’ 콘셉트를 적용한 작품.  토이리퍼블릭 제공
장미의 가시에 ‘보호’ 콘셉트를 적용한 작품. 토이리퍼블릭 제공

18일 오후 직접 찾은 전시장은 평일인데도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고 캡슐을 뽑으면 그에 해당하는 식물로 안내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장미라고 적힌 캡슐을 뽑은 관람객은 장미가 전시된 코너로 가면 된다. 그곳에는 “내가 너의 보호막이 되어줄게”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가시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장미를 통해 치유받으라는 의미다. 선인장 코너에는 “너무 급하지 않아도 돼. 잠깐 쉬어도 괜찮아”라고 적혀 있다. 선인장은 천천히 자라기 때문이다. 식물의 특성을 힐링과 연결시킨 것이다.

선인장 같은 다육식물은 관리가 편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슬로우파마씨 제공
선인장 같은 다육식물은 관리가 편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슬로우파마씨 제공

많은 관람객들이 자신이 뽑은 캡슐에 적힌 식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한 20대 여성은 “요즘 방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인데, 처방이란 콘셉트가 신선하고 재미있다. 나에게 맞는 식물이 뭘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응도 뜨겁다. 전시회를 기획한 토이리퍼블릭의 박제정 큐레이터는 “평일 1000여명, 주말 3000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며 “바쁘고 각박한 세상에서 식물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식물은 뭘까? 정답은 없지만, 우선 자신의 집안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이 대표의 말처럼 식물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손이 덜 가는 식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난초를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는 난을 키우다가 수행을 방해할 정도로 집착이 커져 다른 이에게 난을 보내는 내용의 글이 나온다. 식물 키우기에 그만큼 손과 정성이 많이 간다는 얘기다.

자신의 방을 우선 둘러보자. 해가 잘 드는지, 통풍이 잘 되는지, 화분을 놓을 공간이 충분한지 말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춘 집은 흔치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 자취방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다육식물이 제격이다.

다육식물이란 말이 어렵다면 선인장을 떠올리면 된다. 다육식물 가운데 가시가 있는 것을 보통 선인장이라 부른다. 잎이나 줄기에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는 다육식물 특성상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 스투키, 테이블야자 등이 해당된다. 이 대표는 “초보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것이 스투키다. 물을 6개월에 한번만 줘도 된다”고 말했다. 물을 줘야 하는 때를 놓쳐도 물을 다시 주면 금세 살아나는 고사리과 식물도 추천할 만하다.

화분을 선택할 땐 디자인을 우선시하기보다 유약 등으로 코딩이 안 된 토분을 고르는 게 좋다. 화분이 코팅돼 있으면 공기 순환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코팅 처리가 안 되어 표면이 거친 값싼 토분이 제일 좋다”고 이 대표는 조언했다.

다육식물은 물로만 키우는 수경재배도 가능하다.
다육식물은 물로만 키우는 수경재배도 가능하다.

비이커 등을 이용한 수경재배도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대부분의 다육식물은 수경재배가 가능하다. 물이 줄어든 만큼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단, 물때 등이 꼈다고 해서 식물을 들어내고 물통을 닦아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자기 집’이라고 인식한 식물이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벽 등에 걸어놓고 키우는 ‘행잉 플랜트’의 한 종류인 석송.
벽 등에 걸어놓고 키우는 ‘행잉 플랜트’의 한 종류인 석송.

조금 특별한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최근 유행하는 ‘행잉 플랜트’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걸어놓는다는 의미의 ‘행잉’(Hanging)에서 짐작하듯 벽 등에 거는 식물이다. 하늘에서 땅 쪽으로 줄기를 늘어뜨리면서 자라는 특성이 있는데, 정서적으로 차분해지는 느낌을 준다. 석송이 대표적인 식물이다. 벽에 못을 박는 게 여의치 않다면, 쓰다 남은 행거 등을 활용해도 된다.

‘이끼볼’이라 불리는 고케다마 재배법으로 키우는 고사리.  이정국 기자
‘이끼볼’이라 불리는 고케다마 재배법으로 키우는 고사리. 이정국 기자

흙과 화분이 있어야만 가드닝이 가능하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최근 ‘고케다마’라는 일본식 재배법이 유행인데, 이는 식물의 뿌리를 이끼로 감싸고 낚싯줄 등으로 묶은 형태다. 흔히 ‘이끼볼’이라고도 한다. 이끼 부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서 관리하는데, 가습기 구실까지 해서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뿌리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몬스테라는 커다란 이파리와 긴 줄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으로 제격인 식물이다. 화병에 줄기를 꽂아놓기만 해도 3주 정도는 간다. 이 대표는 “기분이 우울할 때 이파리가 넓은 식물을 키우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식물을 찾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기르는 이의 정성이야말로 식물에게 가장 큰 양분이다. 이 대표는 “에스엔에스(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무턱대고 식물을 키우다가 죽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식물이나 사람이나 둘 다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슬로우파마씨의 경우 서울 논현동에 전시장을 운영중인데, 미리 예약하고 방문하면 자신에게 맞는 식물을 ‘처방’해준다. 찾아오는 이에게 선물로 식물을 줄 때도 있다고 하니 참조하자. www.slowpharmacy.com/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위 내용은 2016일자 2월24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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