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글쓰기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바꾸고 싶은 점은 과감히 바꾸고
좋아하는 점은 더 가꿔 나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는 그만보고
오롯이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로 살아서 행복 하고 싶다.
충분히 그런 노력을 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라고 언젠가 세상과 작별하는 내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알고 지내는 분들과 올해 마을학교를 시작하였다. 아이를 키우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우리 자신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일상에서 생각한 것을 글로 쓰고 이를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하여 함께 나누는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앞서 나에게 글쓰기란 무얼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정리를 했더니 이렇게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밤에 정리한 시였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 감정에 복받쳐 있었다. 긴 문장보다 시의 형식을 빌려 짧게 쓰는 게 때로는 더 쉬울 수 있다. 쓰기 어려운 글이 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것도 시가 아닐까.
어제 아이들과 다 같이 늦게 잠들었다.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났더니 9시가 좀 안된 시간. 거실로 나오니 바깥 텃밭이 먼저 보고 싶었다. 밤새 방울토마토가 얼마다 더 빨개졌을까, 오이는 얼마다 더 컸을까 싶어 마당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두세 개 익는 정도였는데 점점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늘었다. 진딧물로 인해 열 포기 정도였던 상추는 이제 한 두포기가 남았고 그나마도 조치를 해주지 않아 비실거렸다. 저녁에 잎에 어찌어찌 무엇을 발라주면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완전히 내 것으로 챙겨듣지 못했고 발라주려고 시도조차 안한 결과였다. 아삭이 고추를 심었는데 처음 몇 개를 땄을 때는 크기도 크고 거의 맵지 않았는데 한동안의 가뭄 탓인지 이번에 딴 건 작고 맵기까지 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토마토 순자르기는 이제 완전히 익혔지만 웃자라는 걸 어찌해야할지 몰라 계속 뻗어나가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다. 작은 마당에 작은 텃밭이지만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해 텃밭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우리집 마당엔 서로 떨어져있는 텃밭이 두 군데 있다. 현관에서 가까운 쪽에 손이 더 가서인지 좀 떨어진 곳과는 흙빛부터 차이가 난다. 과일껍질을 잘게 썰어 말린 걸 퇴비로 자주 준 곳은 흙빛이 짙은 갈색, 고동색 빛을 띠면서 흙이 건강하게 보일 정도로 변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버려진 담배꽁초와 함께 황량했던, 무늬만 화단이었던 곳이라고는 더 이상 그려지지 않을만큼 변했다. 집으로 들어가 애들이 일어날 때까지 책을 읽으려다가 작게 매달린 오이열매가 바짝 말라 꼬투리가 까맣게 변해 버린 게 보였다. 현관에서 좀 떨어진 텃밭에다 오이를 심었는데 말라가는 작은 오이열매와 딱딱하게 굳어진 흙이 눈에 거슬렸다. 손잡이가 없는 호미-이사 왔을 때부터 텃밭 한 구석에 던저져 있던 호미, 손잡이가 없는대로 가끔 쓰고 있다-로 텃밭을 일구어주었다. 텃밭농사에 통풍도 중요하댔지. 다된 밥을 주걱으로 일었을 때처럼 흙이 부드럽게 변했다. 물을 몇 바가지 떠 날랐다. 물기를 머금은 흙은 생기가 돌았고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소나기가 내려 우산을 갖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막 쏟아지는 비와 함께 짙은 아스팔트 냄새가 올라왔다. 여느 때와 달리 냄새가 강했고 싫었다. 이 냄새가 흙냄새였으면 했다. 찌푸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이는 온통 아스팔트로 뒤덮인 거리에 건물들이 서있었다. 자연스레 먼 산으로 눈이 갔다. 내리는 비에 올라오는 흙냄새, 바람에 날리는 숲 향기가 맡고 싶었다. 우리 집 텃밭은 비올 때 흙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집을 보러 다닐 때 마당이 있고 텃밭 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당과 텃밭의 유무가 내가 살 집의 중요한 선택사항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와 텃밭의 공통점이 무얼까?
이 둘은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나의 생각을 일구어주고 일상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여유시간을 만들어 준다. 텃밭에서 자라고 커가는 식물들을 보는 재미, 다 익은 열매를 따다 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텃밭을 가꾸며 사색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는 걸 만끽한 아침이었다. 텃밭을 돌보고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느긋한 토요일 오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