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캐다.

자유글 조회수 4246 추천수 0 2014.07.23 06:17:13
감자를 캔다. 귀농하고보니 집성촌인데 젊기는 제일 젊고 항렬은 다락같이 높아 환갑 어른에게 '할배' 소리 듣는 '동네할배' 상호네 감자밭. 열두마지기 품앗이 날 흐려 일하기는 좋구나 선선할 때 일하자고 6시에 갔더니 벌써 감자포대가 즐비하네. 씨알 굵고 양도 많은 것이 농사 잘 지었구나. 같은 2년차 농사꾼이면 우경이 자네 감자도 이만하겠네. 에이, 아무려면 '할배'가 짓는 감자만 하겠니껴.

장마라는데 비는 없고 올랑말랑 내릴동말동 물풍선 같은 비구름만 하마 며칠째. 가물고 가물어 비님이야 고맙고 반갑지만 하필 오늘이면 고약하지. 작년 씨감자값도 못건진 벌충을 올해는 할까나. 경운기 지난 자리마다 투둑투둑 감자가 쏟아진다. 감자를 포대에 담기도 바쁜데 자꾸 막걸리를 건네는 어르신. 아이고 어른요, 아침참 전에 '삐리'하면 오늘 일 못하니더. 품을 앗으로 왔는가 갚으러 왔는가. 앗으러 왔는데요. 앗으러 와서 '삐리'하면 상호할배가 품 갚으러 안가도 되겠구만.
품은 앗으러 왔으되 막걸리는 자꾸 들어가서 트림만 끅끅 나는데 감자 한포대 21kg 오늘 나올 감자는 1500포대. 저 많은 감자를 누가 트럭에 실어올리나. 아무렴요. 젊은 제가 해야지요. 비 30분 오시더니 점심 먹고 해가 쨍. 땡볕 아래 감자포대를 5톤 트럭에 싣자니 땀이 대웅전 낙숫물처럼 쏟아지누나. 어이쿠 어지러워라, 상차하다 기절하겠네 그늘에 앉아 숨 좀 돌리자. 서울사람들은 좋을시더. 뭐가? 이 고생하면서 농사지은 걸 종이쪼가리 몇 장 주고 바꿔 먹잖니껴. 그 종이쪼가리 구하자고 새벽별 보는 건 서울사람이 더 심할 걸.

그렇지. 감자는 원래 새벽별 보는 사람들의 것. 어머니는 지금도 감자를 안드시지. 니 빼태기라고 아나. 놋숟가락이 초승달모양으로 닳았는데 이게 감자 껍데기 긁느라 그래 됐거든. 매일 저녁 한 양푼씩 긁어서 8남매가 밥 대신 삶아 먹는거야. 감자꽃도 보기 싫어. 하지만 감자는 태생이 구황작물. 빼태기가 필러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감자는 가난한 내 이웃의 한끼. 삶은 햇감자의 파근파근한 맛을 떠올리니 그나마 감자포대가 덜 무거운데 일하기는 괴롭고 농한기 생각만 굴뚝같은 이유는 여기가 지난 겨울 비료포대 썰매장인 때문.

- 농부 통신 32
 
농부통신 32-1.jpg
농부통신 32-2.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35 [자유글] 아이의 건강은 뱃속에서부터 kbh048 2010-06-24 6085
134 [자유글] 엄마도 힘들때가 있단다. akohanna 2010-06-24 6071
133 [자유글] 코카콜라 비타민음료, 식품첨가물 사용기준 위반 imagefile 양선아 2010-06-23 15074
132 [자유글] 임신출산교실"건강한 가족, 행복한 출산" imagefile hlucia 2010-06-23 13222
131 [자유글] 유니레버 바세린, 여행상품권 증정 이벤트 김미영 2010-06-23 6023
130 [자유글] [한겨레프리즘] 아이의 은밀한 사생활 생중계 imagefile 김미영 2010-06-23 18326
129 [자유글] 내 인생 최고의 지름신! imagefile akohanna 2010-06-22 6781
128 [자유글] ‘짠돌이 육아’ 백과사전 image akohanna 2010-06-22 19835
127 [자유글] 나만의 귀여운 악동! imagefile akohanna 2010-06-22 6096
126 [자유글] 말썽꾸러기 나일이를 위한 최고 선물은 ‘사랑’ bora8310 2010-06-20 6187
125 [자유글] 아이가 과일을 잘 안먹네요.. jidan74 2010-06-19 6626
124 [자유글] 무료선물 받아가세요! akohanna 2010-06-16 5769
123 [자유글] 살빼기 도전 30명, 몸짱 그날은 온다 김미영 2010-06-16 19831
122 [자유글] 어린이집 ‘IPTV 생중계’ 찬성하세요? imagefile 김미영 2010-06-15 18432
121 [자유글] “물만 마셔도 살찌세요? ‘습담’증상입니다” imagefile 양선아 2010-06-15 12874
120 [자유글] [알림] 해당 이벤트는 마감되었습니다. 김미영 2010-06-14 6069
119 [자유글] 오빠만 믿어! imagefile akohanna 2010-06-13 5767
118 [자유글] 29살 주부 9년차, 나도 여자다 imagefile yea9493 2010-06-11 27923
117 [자유글] [이벤트참여]잠깐만... ttnals11rl 2010-06-11 5447
116 [자유글] 아이의 낮잠 언제, 얼마나 imagefile akohanna 2010-06-11 8293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