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놀이터로 콧바람 쐬러 나온 우리 앞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휙 날아갔다.
호오..요즘에 나는 비둘기라니..?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
어느새 부턴가 몸집이 비대해지고, 도시공해의 대표명사가 되어버린 닭둘기들.
날개를 한 번 퍼덕일 때마다 바이러스며 세균들이며 엄청나다는 뉴스도 이젠 새롭지 않다.
우리는 천진난만한 동심으로도 비둘기를 쫓으며 놀면 눈살 찌푸려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때 나는 이 도시의 비둘기들이 지난 밤 흥청망청 했던 젊은이들이
길바닥에 구워놓은 피자들(과한 음주와 과식의 결과물인 토사물의 예쁜 말.)이
닭둘기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란 이론에 매우 동감했던 적이 있다.
비대해진 비둘기들은 날지 않고 걷기 시작했고, 닭만큼 몸뚱이가 비대해지기 이르렀다.
급기야 횡단보도를 걸어서 걷는 닭둘기와 마주쳐서 이쪽으로 비킬까 저쪽으로 비킬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사람도 아니고 비둘기와 이런 경험이라니..ㅋ
내 이런 생각의 틈을 비집고 꼬마가 호기심이 찬 듯 질문을 한다.
“엄마!! 저 비둘기는 왜 날아요!!!?”
- 요새 비둘기들이 게을러져서 그래. 원래 비둘기도 날아다녀.
“쫓은 것도 아닌데 날아가네”
ㅋㅋㅋㅋㅋ…
7살 꼬마의 연륜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비둘기의 날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도시에 적응한 비둘기들의 생태.
세월호 사건 수습도 안되는 와중에 터진 서울 지하철 2호선 사고 소식.
안일함과 무책임함이 만드는 우리의 대형사고들을 보면서 닭이 되어가는 저 비둘기들과
뭐가 다른가 싶다.
우리는 자유가 보장된 개개인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책무가 있다.
악의를 가지고서 한 것이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제 일을 게을리 하면
숱한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아픔을 겪을 수 있게 되는 것임을 이렇게 무겁게 깨달아서야 쓸까….싶다..
며칠 전, 손석희 앵커 뉴스를 보는 나에게 꼬마가 던진 말.
“말을 들으면 안 되는데, 말을 잘 들어서 저렇게 된 거야”
어제는 세월호 놀이를 했단다.
친구는 구조자고, 자기는 해양경찰 역할을 했다는데 170명 밖에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차차…
19금 영화, 드라마는 절대 안보여주면서,
잔혹한 현실의 19금 뉴스는 여과없이 보고 듣게 해주었구나 싶다.
- 말을 잘 들어서 그런게 아니고, 배 안에 머물라고 말한 어른이 나쁜거야.
형아들은 가만 있게 하고 자기들은 배 밖으로 피했잖아. 거짓말이고 책임감 없는 거야.
- 170명 밖에 못살아서 온 국민이 슬퍼하는데, 너라도 많이 구해주지 그랬어..
그리고, 200명이 넘게 하늘나라에 가서 이렇게 슬픈데, 그런 놀이를 꼭 해야겠어? 놀이로 하기엔 너무 아픈 일이야.
페이스북을 통해 고등학생들의 시위 사진을 보았는데,
꼬마의 이야기와 오버랩이 되면서 걱정이 들었다.
핀트가 엇나가고, 어른들이 바로 보지 못하며 슬퍼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시선에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정신을 차리고, 슬픔은 기억하되 일상으로 돌아와서 잘 지켜봐야 할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그동안 사회 시스템을 믿었고, 개개인이 믿음을 정직하게 실현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공인된 상식을 가르쳐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회에 대한 어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있다.
이젠 우리 어른들의 책임 늘었다.
아이들에게 이젠 어른들을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한 가지 늘었다.
지금 이 잘못된 상황을 만든 원인을 파헤치는 일과, 시스템을 바로잡고,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일..
날 수 없는 새가 되어버리기 전에, 다시 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고,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에 이서 구조까지 Self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