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어 책을 폈다가 덮는다. 가능하면 뉴스를 피하며 지낸 며칠이었지만 여전히 활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날 아침. 하우스를 고치다 넘어져 방에서 쉬던 형님이 켜둔 TV. 기울기는 했어도 멀쩡히 떠 있던 배 한 척. 전원 구조되었다길래 믹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밭으로 나갔었는데.
거름을 내다가, 고추지주대를 옮기다가, 비닐하우스를 고치다가 문득 생각한다. 그 때, 내가 믹스 커피를 마시며 무심히 '다행이네' 하던 그 시간, 그 때 거기 배 안에서 너희들이 겪고 있었을 그 참혹한 시간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하는 거라고 무참히 볍씨를 넣고 밭머리 도구를 친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는 거라고, 풀썩풀썩 새는 눈물까지야 아직 어쩌지 못하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서 밥을 먹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후우. 그래서 가는 곳이 이 나라 밖이었으면 좋겠다. '미개'한 국민들이 사는 나라 말고, 학교와 학원에 하루 열댓시간씩 시달리는 그런 나라 말고, 시험성적 하나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우는 그런 나라 말고. 너희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봄의 제주같은 나라. 그 환한 꽃천지 같은 나라. 그런 나라, 그런 나라로 갔으면.
미안하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