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인기가 북한 것임을 믿는다.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골프공도 식별되는 위성사진이 사흘만에 배달되는 현실 따위는 알 바 없고 저 무인기는 우리 가카를 시해하려는 북의 음모임을 믿는다.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농번기의 몸은 늘 피곤에 절여진 무짠지. 9시 뉴스 전에 쓰러진다. 일찍 잤으니 새벽 4시 기상은 기본. 아무리 농투사니라도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알아야지. 티비를 켠다. 새벽 4시에도 나라 걱정하는 채널은 종편 뿐. 딱 봐도 나라 걱정하게 생긴 양반들이 앉아서 심각한 얼굴로 국가의 안보를 걱정한다. 무인기요? 북한 거죠. 척 보면 견적이 나오잖아요. 보기에는 RC 장난감 같지만 북한 정도의 기술력이면 저기에 핵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구요.
미안해라. 의심했었다. 인터넷 따위는 들여다볼 체력이 안되고 사래 긴 밭 갈 일만 태산 같은데 이렇게 친절하게 뉴스를 떠먹여주시니 이 아니 고마울데가. 아무렴. 저 무인기가 우리 가카를 시해할 수 있고 말고.
깨닫고 나니 일사천리로 풀리는 의문들. 왜 늘 이 동네는 새누리의 일당독재인가. 왜 늘 농산물 가격은 폭락 아니면 폭등인가. 죽자고 일해도 왜 농민들은 항상 가난한가 등등을 꿰뚫는 명쾌한 시나리오.
자, 우선 감자값을 폭락시켜 보자구. 그러면 농민들은 감자씨값이라도 건지려고 감자 캔 자리에 단호박 이모작을 하겠지. 감자 캐고 단호박 심느라 체력은 당연히 바닥이겠고 몸이 고되니 해지면 쓰러졌다가 새벽에 일어날 테지. 이때 종편 스텐바이. 천안함도 알고보니 무인기의 카미카제 공격에 당한 거라고 계속 방송에 내보내. 새벽에 뉴스 보는 이는 농사꾼 나부랭이 밖에 없단 말야. 그렇지. 농민들이 부지런한데 가난하고 북한이 나쁜 놈이기만 하면 선거는 이기게 되어 있어. 장사 하루이틀 하는 거 아니잖아.
무서워라. 국정원.
- 농부 통신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