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칭찬이랍시고 아이에게 한마디 던졌는데
그게 말이지요. 뭔가가 통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암튼 한마디 해놓고 몇 초간 거시기 했는데
그게 바로 공허한 칭찬이었네요. 엉엉
지난해 이 맘때쯤 몰입했던 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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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칭찬의 효과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칭찬이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칭찬의 역효과’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육하자는 세계적인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 박사이다. 교육과 양육, 그리고 인간행동에 관한 테마를 연구해온 알피콘은 ‘칭찬과 벌은 아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의 근거는 교육 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에게 종아리를 때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맞지 않기 위해 숙제를 할 수도 있지만, 그 효과는 단기적이다.
숙제를 하더라도 억지로 하거나, 차라리 체벌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책을 잘 읽는다는 칭찬을 들은 아이가 부모가 보는 곳에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하루아침에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읽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건성으로 읽거나 억지로 읽을 수도 있다. 숙제를 잘하기 위해서, 또는 책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상과 벌 등의 외재적 동기가 아닌, ‘스스로 그것을 즐기고 싶은’ 내재적 동기가 필요하다.
칭찬이나 벌이 갖는 더 원론적인 문제는 아이가 부모를 기쁘게 하거나 감동을 주었을 때에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부모가 받아준다는 믿음과 조건 없는 사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것은 칭찬의 옷을 입은 통제나 평가가 아니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알피콘은 말한다.
문제는 무엇을 칭찬하는가, 혹은 얼마나 칭찬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평가하려는 생각 그 자체에 있습니다. 칭찬한다는 것은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칭찬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차갑게 대하는 것이고, 쌀쌀맞게 대하는 것이고, 다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사실, 칭찬을 하는 것은 통제를 하는 것이지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알피콘의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다. 흔히 자식에 대한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이해하고 용서하며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시험 잘 쳤으니까 엄마가 상 줘야지!”, “나쁜 행동하면 엄마도 널 미워할 수밖에 없어!”라는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시험을 잘 치거나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와 이런 주고받기식 사랑의 거래에 익숙해지면, 칭찬과 벌은 점점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알피콘은 “잘했어!”라고 말하는 칭찬을 개 비스킷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이가 뭔가를 잘했을 때 부모들이 생각 없이 휙 던져주는 말이라는 뜻이다. “잘했어!”, “좋은 생각이야!”알고 아무 일에나 시도 때도 없이 던져주는 공허한 칭찬은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칭찬을 통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가 변화되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칭찬, 또는 칭찬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학교란 무엇인가> ‘칭찬 속의 진실 게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