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현재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는 하루입니다.
평소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둘째 아이 친구 엄마와 몇 달만에 오전 시간을 같이 보냈어요.
그 동안 제 사정으로 얼굴도 자주 못 봤는데 그래도 서로 통하는게 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오랜만에 편안한 수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 한해 저를 잡아주었던 베이비트리 얘기도 했죠. '책 읽는 부모'를 통해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규칙적으로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제 자신을 다잡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맞장구를 쳐주더라구요.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지만 항상 뭔가 부족한 2% 그것이 사회생활이 아닌가 싶다구요. 뭔가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를 찾아 사람을 만나고 움직여야한다는데 공감을 한거죠.
다섯 살 또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생긴 일이라면서 해 준 이야기도 있어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때렸는데 때린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로 혼내지 않고 따로 조용히 부르더니 왜 그랬는지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묻고는 따로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사과하는 게 뭐 그리 급하냐면서. 일이 좀 커져서 옆에서 지켜보던 한 엄마(이 비슷한 경우를 여러번 보아왔던)가 "아이 그렇게 키우면 안된다"고 아이 엄마의 교육관을 탓하며 한마디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맘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참, 이런 일은 주변에 엄마들과 이야기하다보면 한 번은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혼낼 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혼을 내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따로 혼내야한다고 저도 어디선가 읽은 듯해서 때린 아이 엄마가 왜 그랬을까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고 했죠. 그래도 맞은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바로 사과하고 때린 아이 엄마가 그러면 안된다고 따끔하게 아이를 타이르는 모습을 기대하게 되죠. 그러나 때린 아이 엄마는 아이가 잠깐 그러는거지 나중엔 괜찮을거라고 했다네요. 문제는 그 때린 아이가 예전에 다른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한테 물리고 왔을때의 반응이였어요. 우리 아이가 그럴 수 있는 거라면 다른 아이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는거죠.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아이를 키울 때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확실하게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것도 엄마의 몫이요, 엄마가 아이에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우리아이는 괜찮지만 남의 아이는 안된다는 이중잣대를 가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현재 두 아이가 같은 원에 다니는데 내년에는 어디로 옮기게 될지, 학교에 입학하고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싫어도 참석해야하는 것인지, 이제 글자에 관심을 가지더라, 무엇을 좋아하는 듯해서 이런 쪽으로 시켜보려고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엄마들 하는 얘기가 비슷하죠?
그리고 수다의 최고점!
아이 친구 엄마가 TV '강연 100도씨'에 나오신 한 분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봤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본인은 공부하기 싫어 학교 중퇴를 했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아이가 태어난 후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아버지의 간절함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아이들에게 재밌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아이들 다섯을 잘 키워냈다는 이야기였는데 들으면서 아차, '아하!' 하는 게 있더라구요.
바로 '간절함'이요. 간절함!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간절함이 내게 있는가를 우리는 서로 자신에게 물으면서 그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답을 했답니다. 열심히 육아서를 읽고 읽은 후에 적용해보려고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죠. 잊을만하면 다시 뭔가를 읽고 채워보려고 하죠. 하지만 무슨 일이든 '간절함'이 있다면 통하지 않을까요. 이 간절함 속에는 마음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포함이 됩니다.
다시 제게 물어봅니다.
넌 얼마나 '간절함'을 갖고 그 일을 하려고 하니?
넌 얼마나 '간절함'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니?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와닿는 것이 다를 때가 있네요.
난 얼마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간절하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숙연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