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라 다들 바쁘시죠?

작년 이맘땐 그래도 속닥속닥 게시판에 글이 자주 올라왔던 것 같은데..

한번씩 사는 이야기, 일 이야기, 아이들 자라는 사진 보며 소식 간간이 알 수 있었는데

자주 오시던 분들이 요즘 뜸해서, 조금은 궁금하고 조금은 걱정되고.. 그렇습니다.

저도 요즘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분들 글에 댓글을  못 달아 여기서 한꺼번에 몰아 쓰려구요.


올 한 해도 베이비트리 엄마들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요??

온라인이다보니, 이곳에 올라온 글만으로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짐작해 버리기 쉬운데

결혼생활과 육아에는, 글로도 말로도 쉽게 전달하기 힘든 무언가가 너무 많잖아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들께는

나도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어 고맙기도 하고, 얼마나 답답하고 절실했으면

이렇게 쓰셨을까, 그 마음에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워 쉽게 댓글도 잘 못 쓰겠더라구요.

아직 젊고 어린 아기 키우는 엄마들에겐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금 더 살다보면, 이제껏 겪은 것보다 더 끔찍하고(?) 힘든 일들을 많이 겪게 되거든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시기가 앞서거나 뒤서거나, 건너 뛰는 경우도 있겠지만

부부가 둘 다 마흔을 넘어서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저런 갈등, 의견충돌, 싸움, 오해, 상처 ..의

범위와 규모가 훨씬 커지더라구요. 저는 여자만 갱년기를 겪는 줄 알았는데, 나보다 먼저 찾아온

남편의 갱년기 땜에 너무 당황했답니다. 보통 남자들처럼 감정에 좀 둔한 편이던 남편이,

생리 전의 여자처럼 감정기복이 심하고, 쉽게 우울해하고, 만사에 의욕이 없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걸 잘 이해못하고 엄청 싸웠지요.


저는 저대로, 첫째가 3.5춘기에 접어들 때라 고민이 많았고 둘째도 유난히 힘들게 하던 때라서

지금까지 든든하고 성실했던 남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모든 것 놓고,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더라구요.

어떤 책에서, 눈이 불편한 분들을 돕는 개들이 보통 개보다 수명이 짧다고 하던데

생명을 돌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 싶었어요. 가족과 아이들을 돌보면서 나도 많은 걸 얻기는 하지만,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보니, 뭐랄까 - 몸과 정신이 너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남편의 뒤를 이어 저도 40을 넘으면서, 그동안 내가 삶을 그럭저럭 잘 운영해 온 것이

나의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많은 부분이 젊음과 체력에서 나온 것이었단 걸 깨달았답니다.


그런 걸 깨닫는 순간, 남들이 다 겪는 40대의 일들이 우수수 닥쳐오기 시작했어요.

양쪽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아프시거나 입원을 하시거나 수술을 하시거나 -

놀라 뛰어가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할 일을 분담하느라 일상이 더 바빠지고 ..

그러다, 평소에 너무 건강해서 감기도 잘 안 걸리던 남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 - 일을 오래 쉬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일은 일대로 하며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느라 고생했고

저는 그나마 남편과 조금 나눠서 해왔던 일들이 전부 내 차지가 되어 헉헉거리게 되었죠.

그 사이에 잘 안 아프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번 심하게 아파 마음고생을 좀 많이 했는데,

시간이 제법 걸려 남편이 건강을 다시 찾았을 때, 그동안의 시간들이 너무 징글징글해서

우리 새로 시작해보자, 인생 좀 리셋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주택으로 이사하는 거였죠.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했는데, 사실 그 과정이 쉽지가 않았어요.

그냥 그만두고 살던 대로 편하게 살자, 싶을 때도 많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험악하게 싸우고 의견충돌이 많아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죠.

암튼 그런 거 저런 거 다 겪어내고, 결국엔 이사도 해내고, 어제 남편이

"우리 진짜 올해 큰일 하나 했다." 그러던데, 정말 소심한 저희 두 사람에겐 혁명과도 같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바라던 이사도 다 잘됐고, 남편 건강도 큰 문제가 없던 올해,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건강 하나만은 자신있었는데,

너무 쉽게 피로하고 지치고, 집안일이 버겁고,

기력이 떨어지니 떼쓰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그냥 주저앉고 싶고.

처음엔 이사 전후로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보다.. 이런게 40대 갱년기인가? 이렇게 빨리 오나?

하면서,  짐푸는 것도 몇 달씩 미루면서 많이 쉬고 했는데도 증상이 더 심해짐.

봄을 지나 여름이 최악이었고 가을도 여전히 .. 남편의 성화로

결국 아주 오랫만에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얼마전에 나온 결과가 좀 안 좋은 부분이 있었어요.

재검사를 받고 기다리면서 다시 병원가서 의사와 상담하고 있는 중인데,

처음엔 저나 남편이나 많이 놀랐다가 지금은 그냥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그저 평범한 빈혈일 가능성이 높은데, 다만 음식도 조심해서 잘 먹는 편이고 빈혈이란 병명과는 전혀 안 어울리게 너무 듬직한 체격이라 그 원인을 추적하는 중 ..


가족들의 건강, 생명 -

이런 문제를 연이어 겪다보니, 사랑, 싸움, 성격차이, 아이의 부족한 부분,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더라구요.

당장 건강을 회복시키는 게 문제고, 내일 아침 무사히 일어나서 아이들 따뜻한 아침 먹여

학교 잘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싶었어요.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원인을 알고 치료해나가면 될테고

손이 많이 가는 둘째가 해가 바뀌면 만5살이 되는데,

이만큼 키우고 난 다음이라 그것도 다행이다 싶고요 .. 

요즘, 제가 손발이 차서 집안에서 슬리퍼를 꼭 신는데

그게 자주 벗겨져서 헛발걸음질을 할 때면, 둘째 녀석이 얼른 뛰어와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슬리퍼 한짝을 들고와 제 발에 신겨주려고 낑낑대요. 고 작은 손으로요.


일하고 돌아온 남편과 그런 얘기 나누며, 서로에게 그동안 애썼다, 고생했다.. 그렇게 위로했는데.

자식키운다는 거, 가족이라는 거, 부부가 함께 산다는 거.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가끔 경험하는 감동이나 고마움이 지나가면, 또 다시 징글징글한 전쟁같은 일상과 다툼과 차이를

겪겠지만, 그렇게 싸우고 미워할 수 있다는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건강할 때 많이 싸우고, 싸우면서 서로를 알아두자 ..

뭐가 늘 그리 긍정적이냐 - 는 말을 또 들을 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저는 살 수가 없네요.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혼자 울적해있을 때, 누군가 우리집 벨을 눌리더군요.

띵.똥.  친하게 지내는 동네엄마가 친정이 북해도인데, 거기 다녀왔다가 먹을 걸 잔뜩 사들고

왔는지 초콜릿이 담긴 작은 선물을 가져왔더라구요.

"유리엄마, 달달한 거 좋아하지?

 육아스트레스엔 초콜릿이 젤이잖아! 피곤할 때 커피랑 먹어요~" 


힘든 올 한해였지만,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한 마디를 살면서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워요. 베이비트리 엄마들과도 함께 나눠 먹고 싶어 올려봅니다.

올 한해도 엄마들, 너무 수고했어요~

1년동안 부쩍 큰 아이들보며 힘든 것 이겨냈음 좋겠어요.

서로 다른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마음 속으로 늘 응원하고 있답니다.

다, 잘 될 거예요..


DSCN239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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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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