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노골적으로 촌지를 바라는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나는 아주아주 정의롭고 대쪽 같게도 "엄마, 학교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짜증팍팍 사춘기 소녀의 금지령은 이상하게도(?)잘 지켜졌고,

나는 줄곧 담임 선생님의 자애로운 울타리 바깥에서 그럭저럭 3년을 잘 마치고 졸업했던 것 같다.

은혜로운 보살핌 없이도, 졸업을 하고, 대학 진학도 했기에... 그 동안은 잊고 있었던 문제가

꼬마를 키우면서 슬슬 발생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부터 실천하며 치맛자락 따위는 펄럭이지 않겠노라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나의 생각은 올해 꼬마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흔들렸다.

 

그동안 우리 유치원 학부모들은 학기 초에 공손한 "선물사양" 안내를 대대적으로 공지 받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실천도 되어왔다.

현금성 선물은 물론이고, 먹거리 외의 물건으로서의 선물은 되돌아 왔다.

심지어 바디로션 하나도 돌려보내시는 선생님을 보았다.

최소한 남들 모르게 주고 받으셨던지...

 

자기 주장 강한 꼬마의 사회생활(?)이 염려되고, 잘 돌봐주시는 담임 선생님이 정말 고마워서

커피나 먹거리 전달은 어쩌다 가끔 생각날 때 하게 되었다.

그 정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기꺼이 할 수 있었다.

드리고 싶어도 더 큰 선물은 받는 쪽도 드리는 쪽도 부담스러우니 안하는 게 맞았다.

 

올해는 참 달랐다.

적어도 학부모와 담임교사간에 마음은 통하리란 생각으로 인사차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찾아갔던 나는 손이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밖에 세워두고, 우리 담임 교사는 다른 친구 엄마에게서 화장품을 받고 있었다.

 

- 이거 별거 아니라며, 그냥 있어서 드리는 거예요.

- 아유~ 어머니..

 거기서 한 번이라도 손사레 치며 거절의 뉘앙스를 보일 줄 알았던 담임.

- 너무 예뻐요. 잘 바르고 다닐께요!!

 .....라니....

 

그리곤 개인 SNS에 (왜 교사가 학부모 계정은 팔로우를 하는 것인지..) 버젓이 올렸다.

그 후로도 종종 받은 선물은 자주 올라왔다.

 

그날 나는 들고 갔던 커피는..도로 들고 돌아왔던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마음에서 우러나 들고 갔던 커피배달, 간식 배달은.. 아예 생각이 묻혔다.

가끔씩 SNS에 선물을 올릴 때마다 심장이 괜히 덜컥 거렸다.

 

압권은 지난 가을..

꼬마 담임선생님의 인생지대사 결혼이 있었다. 청첩장? 돌렸다.

SNS에는 어느 학부모로부터 받은 선물이 올라왔다.

깜짝 놀란 몇 명의 같은 반 엄마들과 선물을 마련하기로 했다.

모여서 들어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들이었다. "부담스럽고, 억지로 하는 느낌"

 

십시일반 하여 선물을 전달하여도, 받는 것이 당연했는지 정신이 없었는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고... 그냥..

엄마들은 하나 같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납"

 

뭐 촌지봉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받은 부담은 그에 못지 않다.

 

옆동네 언니가 스승의 날에 선생님 골프복을 몇 십만원 짜리를 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쯧쯧..혀를 찼었는데,

그럴 일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이 불편함은 무엇일까...

 

내가 학교를 다닌다면, 엄마를 출입금지 당연히 시키겠지만.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닌다면, 아이가 말려도 출입을 당당히 할 것만 같은 이 막연한 불안감...

 

나만의 부러 걱정인 것일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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