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남편과의 불화로 머리가 아팠다.

그 때문에 여행기도 못 쓰고 베이비트리도 오랜만.

 

그러나

남편과의 불화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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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호박을 잡았다.

처음 해 본 호박 손질, 반을 갈라 속을 파내고 껍질을 깎아

호박죽을 끓이려고 압력 솥에 찌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얼렸다.

 

"사람 마음도 이렇게 열어 볼 수 있으면
속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페북에 올렸더니

 

선배왈

사람 속 이렇게 다 열어보이면 지옥문이 열리는 수도 있단다.

그러고보니 정말 다 알지 못하는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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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씨는 물기 빼서 말리고

나중에 호박씨 까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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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날씨도 추워진다해서 애들 데리고 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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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뽑고 배추 묶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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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무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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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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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청은 씻어 그늘에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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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품삯으로 붕어빵도 만들었다.

(영희님 레시피대로!! 이만하면 성공인가요? 흐흐)

 

그리고 냉장고에는

생협 매장에 들렀다가 할인 판매한다기에 충동적으로 들고 온 꼬리뼈가 곰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

 

어릴 때는 (아직 젊으므로 20~30 대를 어릴 때라고 하자.) 힘들고 괴로우면 술 마시고 쏘다니고 그랬는데 요즘엔 집안일을 막 벌인다.

식기 세척기 대신 손 설거지하고

괜히 행주도 한 번 삶아 주시고

그러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하는 게

이제 정말 아줌마가 된건가.

 

부모의 갈등을 아이들에게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까?

되도록이면 아이들 앞에서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기도 한데

세상이 갈등없이 완전무결한 건 아니니까, 라고 변명해 본다.

 

꼭꼭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가면을 쓰거나

너희들은 어리니까 몰라도 돼,라고 따돌리기 보다는

아이들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어떤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리는 게 나은 것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엄마, 아빠의 다툼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관전평을 들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둘이 이야기해봤자 서로를 물어 뜯을 뿐 결론이 나지 않는게 답답하기도 했다.  

 

나:얘들아, 아빠랑 내가 다투는 거 봤지? 그런데 생각이 너무 다른 것 같아. 며칠동안 계속 이야기해 봤는데 답이 안 보이네.

아루:뭐야, 내가 옷 안 갈아 입는 걸로 다투더니만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

 

남편과 내가 다툰 것이 자기와 관련된 게 아닐까, 생각한 모양이다. 이야기 꺼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니야, 그건 별일 아니었잖아. 다른 이유 때문인데 음...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는 어려워.(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할 말을 못 찾겠다...)

어른들이란게 좀 그래. 단순한 것도 되게 복잡하게 만드는 나쁜 재주가 있지.

해람:(미로찾기 책을 보고 있다가) 이 공룡 미로처럼?
나:그래 맞아. 꼭 그 미로그림 같다.
아루: 그럼 해람이한테 풀어 달라고 해! 해람이 요즘 복잡한 미로도 되게 잘 풀어. 그리고 엄마, 미로는 아무리 어려워도 벽만 짚고 가면 언젠가는 탈출할 수 있어. 엄마도 그렇게 해봐.

 

아이들이 내게 종이와 연필를 가져다 주며 내 머릿속 복잡한 미로를 한 번 그려보란다.

해람이가 풀어 준다고...

벽만 짚고 가면 언젠가는 탈출할 수 있어... 아루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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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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