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한참 생각에 빠졌습니다.
식탁위에 올려진 것 중 내가 직접 요리한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더군요.
시어머니의 김치, 엄마의 파김치와 깍두기와 나물.
시어머니 친구가 보내주신 사골과 견과가 잔뜩들어간 쥐포볶음과 장조림.
그 옆에는 성당 교우분이 주신 삶은 땅콩과 신선한 대추가 있고,
근처 동네에 사는 지인에게서 받아온 싱싱한 열무를
역시 지난번에 엄마가 만들어 두고간 쌈장에 맛있게 찍어 먹었습니다.
열심히 풀을 메고 다듬고 무치고 볶았을 그들을 생각하니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가슴이 찡한 순간이었습니다.
하긴, 이 세상에 제 스스로 해낸 것이 뭐가 있을까요.
모두 하늘이, 햇빛과 바람과 비와 땅과 당신들이 일궈주신 것들이지요.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다른 이에게 베풀고.
저 혼자 잘난 줄 착각하던 저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세상의 커다란 보살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젖꼭지가 너덜너덜 해지고
열이 오르는 아이를 보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을 쩍쩍 벌리며 이유식을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내가 내민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갖다대는 아이를 보며
이제야 알아갑니다.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감사한 삶의 원리를
절대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쌍용차나 밀양 송전탑 같은 사태에 대해
가슴으로 대화하는 법을 몰랐을 테니까요.
그래서, 하루하루 올바르게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다짐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은 아이의 첫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께 드릴 감사 편지를 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다들 명절 잘 보내셨나요?
밀려있던 글들을 한참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습니다.
이사에 명절에 어느덧 저희식구가 서울을 떠난 지도 한 달이 되었네요.
동물 식구들 이야기, 돌이 다 된 딸아이 이야기,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들판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바쁘고 속절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만 갑니다.
어쨌든 아이의 첫 생일을 앞두고
이래저래 특별한 한 주가 될 것 같아요^^
모두들 기분 좋게 한주 시작하고 계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