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즐거움

자유글 조회수 8343 추천수 0 2013.08.29 0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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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아이들과 잠을 자려고 불을 끈 후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과 내일의 계획을 가물가물 떠올리며 꿈속에 빠져들려는 찰나에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아! 저것 봐!” 한다.

천장을 치어다보니 쬐끄마한 불빛이 천장에 붙여 둔 야광별 사이로 왔다 갔다~ 한다.

저것이 뭔가? 하고 있는데 남편과 첫째 딸 금채가 거의 동시에 “반딧불이닷!” 하고 외친다.

아.. 반딧불이 저렇게 생겼구나. 참 신기하기도하지. 만화영화에서나 봤지 TV에서도 실제로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반딧불을 우리 집. 그것도 잠자는 방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게 될 줄이야.. 둘째 건호도 무척 신기했던지 불을 켜고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반딧불을 찾아본다. 흐뭇하고 행복하고 신기하고 설레고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남편과 나는 이런 게 시골 사는 즐거움이구나 하고 서로 만족스러움과 충만한 감정을 나누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 영월읍 팔괴리에 처음 자리를 잡은 것은 작년 2월 중순. 강릉에서 9년 만기를 꽉 채운 남편이 근무지 이동으로 공업고등학교가 있는 이곳 영월에 자리를 옮기면서 온 가족이 함께 이사를 왔다. 태백에 발령을 받자마자 육아휴직을 냈던 나로서는 그래도 영월에서 학교까지 1시간 거리가 어디냐.. 하고 강릉보다 가까워진 거리에 나름 만족하며 이사를 왔었다.

  10평대, 20평대 아파트도 있었고 최근 지어진 새 아파트도 보였지만 전세가 없었다. 집들도 너무 좁았고.. 찾고 찾다가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외곽지인 팔괴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뜻밖에 꽤 넓고 괜찮은 집과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전세로..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건호를 낳았다.

산후조리를 하며 근 세 달을 집에서만 지내다보니 시골집 살이의 느낌이랄까 즐거움 같은 것을 남편보다 먼저 찾게 된 것 같다.

 

아침 햇살이 참 고왔다.

산 아랫부분부터 연둣빛 물이 오르는 풍경도 신기했다.

밤새 내린 큰 비에 황톳빛이던 강물이 다음 날 옥빛으로 바뀌는것을 알아보는 것도 기뻤다.

창문 바로 앞에 참새 몇 마리가 앉아 꽁지를 흔들며 쉬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탁 트인 창문으로는 하늘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그 아래 강도 보이고 산과 강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들도 잘 보였다.

새벽에는 스님의 목탁소리도 꿈결에 들렸다.

인구가 적고 논밭이 많은 이곳은 이웃과의 경계에 ‘담’이랄 만한 게 없어서 바로 옆집의 작은 절과도 담 없이 그냥 통해 있다.

불경 외는 소리는 마음을 정갈하고 맑게 해 준다.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금채가 어린이집 가는 10시까지 아침 먹고 할 일이 없으면 절에 가서 부처님도 만나고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를 곁에 둔 산신령 할아버지도 뵙고 인사드린다.

금채는 법당 문을 쬐끔 열고 “부처님 안녕하세요?” 하고 다시 얼른 닫는다. 건호는 처마에 달린 풍경을 만져보고 싶어해서 내가 목마를 태워주거나 높이 안아준다. 풍경소리는 참 아름답다.

집에서 100m쯤 아래 물레방아와 연못이 있고 그 옆집에는 밭일하는 소가 (얼마 전에 팔아 없어졌다. 서운타ㅜ.ㅜ)  그 윗집에는 오리 두 마리와 순돌이라는 진돗개가 있고, 또 그 윗집에는 큰 밤나무가 있고 여러 마리의 토끼를 기른다. 또 그 위로 올라가면 사시사철 눈비 맞고 먼지와 얼룩에 더러워져 꼭 마대걸레를 엎어놓은 듯한 삽살개가 있다.

금채는 그 삽살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자꾸 만져보고 코가 축축하다는 둥, 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다는 둥 하며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 사실 나는 질색 팔색이다. 나는 싫지만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유 배달하는 청년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 차를 멈추고 우유를 하나 준다.

아이들은 작은 우유 한 팩을 ‘너 한 입~ 나 한 입~’ 하며 산책하는 내내 나누어 먹는다.

건호는 주인집 마당 수돗가에서 물이 담긴 대야에 돌을 던지며 논다. 아주머니는 그걸 보시고 건호 손에 자꾸 작은 돌들을 장전해 주신다.

 

햇살은 아름답고 마음은 넉넉하고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물론 크고 작은 불편도 있긴 하다.

큰 비 온 날, 쌀을 씻으려고 물을 받으면 누런 황톳물이 고인다든지 (우리 집은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산의 샘물을 받아쓴다)

가족들이 아파 급히 병원에 가야할 때(30분 거리의 제천이나 1시간거리의 원주로 가야한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차가 다닐 수 있도록 큰 길까지 삽으로 눈을 치워야 하는 일은 참 힘들고 어렵다.(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눈은 주로 허리가 약한 남편이 치운다. 그래서 눈이 오면 남편이 걱정 된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갈 때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면 시골 살이에 문득 짜증이 난다.

작은 생쥐한 마리가 양념통 사이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온 부엌을 휘젓고 다닐 때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아사를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정말 쥐가 무서워서 눈물까지 났다. 아이들은 그저 신기해 할뿐인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을 지내놓고 보니 전체적으로 시골 살이가 만족스럽다. 넉넉하고 여유롭다. 편안하고 잔잔하고 행복하다.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자연을 누리는 내가 좋고, 이런 환경에 자연스럽게 젖어가는 내 아이들이 편해 보인다. 마당을 달리던 금채가 풋고추를 따서 웃에 쓱쓱 닦아서는 한 입 베어 물고 “정말 맛있네!”하고 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도시의 각박한 삶에서 맛보기 힘든 달콤한 무언가가 시골 살이에는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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