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회사
후배가 휴가를 신청하며 고민을 털어놨다.
큰아이
네 살 무렵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를 쫓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이 신기하고 귀여워서 그냥 두었고 또래에 비해 일찌감치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최근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할머니가 저녁 먹을 것을 수 차례 권하자 급기야 아이가 할머니를 밀쳤는데 할머니는 육체적 충격도 컸지만 정신적 충격이 더
크셨다고. 그날로 집에서 TV와 컴퓨터를 없애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은 아이 외 부모 각각 많은 시간을 들여서 받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가급적 컴퓨터는 멀리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참고로 우리는 IT 종사자다.
그 당부가
아니더라도 나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으로 오래 전 삐삐(무선호출기)도 없이 살다가 누군가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그걸 중고로
받아 사용하기 시작했고 핸드폰도 마찬가지였다.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도 이제 4년차다. 최근에야 갈아탄 것 같은데 벌써 4년차다!!!
IT 종사자이지만 집에 내 돈으로 구입한 PC나 노트북을 들이지도
않았다. 회사 일을 집에서 하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지만, 주로
하는 업무가 대형 서버에 접속해서 하는 것이라 PC로 집에서 할 수 일은 별로 없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TV를 켜지 말자고 남편과 합의했고 제법 잘 지켰다. 만 3세까지는 TV는 보여주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3개월을 못 채운 33개월에 TV를 허락했다. (33개월 개똥이에게 '꼬마버스 타요'를 허하노라.)
길을
가는데 앞에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가는 젊은 엄마가 있었고 노래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나? 난 걸을 때 부끄러워서 그렇게 못했는데… 그런데
그 옆을 지나면서 보니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가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노래였고, 엄마는 아이 눈
앞에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회전초밥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조용히 식사를 했고 3~4세로 보이는 아이 앞에는 스마트폰이 놓여져 있었다. 아이는 동영상에
완전 몰입해 있었고 가끔 큰소리로 깔깔깔 웃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의 호응은 없었다. 식당에 아이의 웃음이 퍼질 때 마다 씁쓸했다.
가족
모임이나 아이 부모 모임이 있을 때 개똥이는 단것에 굶주린 아이가 땅에 떨어진 사탕까지 넘보듯 여기저기 게임을 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어떻게 하면
한번 만져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껄떡대는데 그걸 보면 이래 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카들은
우리 집에 오면 게임을 아주 짧은 시간만 할 수 있다는 것, TV도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러 와 주는 것이 기특할 지경이다. 걸음마
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고모 와이파이 비번 알려주세요” 한다. 처음에는 나도 까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젠 안 통한다. ㅎㅎ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 그런데 이렇게 멀리하고 사는 게 답일까? 언제까지 이게 통할까? 싶을 때 베이비트리
> 뉴스 > 부모가 알아야 할 뉴스 에서 아이의 사이버세계를 인정하자는 글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
글을 공유하면 좋겠지만 다시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시작하겠습니다. 디지털 육아>를
읽으면서 남동생들 부부가 떠올랐다. 막동이는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데 아빠가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이(초3)랑 게임을 같이 하고 가끔 아이 대신 레벨을 올려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게임을 소재로 이런 저런 대화도 한다. 큰
동생 부부는 올케가 게임을 즐기는 편으로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게임을 공유했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지켜봤는데, 차량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 게임을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멍 때리는 시간도 있었고
몸 놀이도 많이 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 시민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수년간에 걸쳐 책을 읽어 주고
글자를 가르치고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 가르치듯이 미디어 또한 그렇게 부모가 가르쳐나가야 할 일이라는 부분이 가장 와 닿은 부분이었다. 숙제가 또 하나 늘었지만 게임을 한다고 해서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등 다양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지은
이 책은 내게 보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에게 디지털 세계를 접할 기회를 주리라 결심하게 했다.
어제
개똥이(초1)가 15분짜리 VOD 3개(하루 40분)를 시청하고도 할머니 스마트폰을 넘보길래 눈을 흘겼는데 알고 보니 소풍에서 받아온 장수풍뎅이 알을 검색 해 보고
있었다. 아!!!
뭐, 이제 시작이니 천천히 시도 해 봐야겠다.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