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 기쁜 소식이 한꺼번에 둘씩이나 날아왔다.

하나는 7월말에 종강한 독서지도사 과정 합격자 발표에서의 합격소식과 바로 윤영희님의 책 '슬로육아'가 도착한 것이다. 책에서 향긋한 비누향이 났다. 책을 포장하신 분의 영향일까, 지금도 책 표지에서 비누향이 난다. 그 향에 책을 또 한번 코에 갖다대본다. 

 

책이 도착한 날, 애들을 재운 뒤 낮에는 읽히지 않던 책장을 일부로 넘겼다. 나도 모르게 책을 한참 후루루 읽다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미뤄놨던 설겆이부터 후다닥해치웠다. 컴퓨터 옆 내 공간에 쌓여있던 어지러운 물건들을 정리하고 걸레질도 했다. 책 읽다말고 이건뭐지? 나를 씨익 웃게 만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작가와 나를 이어준 고미숙 선생님의 책에서 청소와 약속지키기를 강조한 부분이 떠올라서였을까. 정리를 하지 않으면 책을 더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문득 글을 잘 쓴다는 건 정리를 잘 하는 일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나와 어떤 점에서 닮았을까를 은연중에 찾고 있었다. 푸른돌고래님의 '작가가 독서지도사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면 뭔가 더 인연처럼 느껴질 듯'이란 댓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도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밥먹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이렇게 말하려니 꽤 옛날 일 같이 들린다- 2년 전, 둘째가 네살 때까지는 어디 식당에 가서 밥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곳이라 하여도 아이와 함께 가면 밥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흔히들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다. 여유롭게 어린 아이와 식당에 들어가는 엄마들 모습이 신기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수다의 시간은 이웃에 사는 아기 엄마나 친구를 초대해서 집에서 밥먹는 일이었다. 간단한 다과도 좋았다. 돌아보니 신경 써서 만들어놓은 반찬이 있는 다음 날엔 누구라도 초대해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싶어했었다. 최근엔 거의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고 난 바로 다음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오전에 만나 같이 영화를 보고 점심을 어떻게 할까하다가 특별히 해놓은 반찬은 없지만 집으로 친구를 초대했다. 카레에 김치 뿐이지만 집에 손님이 오니 아이들과 식사시간이 더 즐거웠다. 작가를 만날 일이 생긴다면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밥을 먹고 싶다. 간단히 카레와 김치라도 괜찮다면.(작가는 괜찮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어려워하진 않을까, 정리정돈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바자회 이야기가 나올 때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학교 바자회며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하는 나눔데이에 집에서 안쓰는 물건을 정리해 몇 번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안 쓰는 물건이나 작아져 못입는 옷과 장난감이 보이면 바자회 때 내놓을거라며 따로 챙겨놓으라고 애들이 먼저 말한다. 올초 학교 바자회에서 첫째는 자기가 입고 싶은 바캉스용 빨간 꽃무늬 원피스와 구두를  직접 샀는데 이번 여름 휴가 때 잘 입었다.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게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머리를 깎아주는 이야기에서는 바리깡 사건이 떠올랐다. 둘째가 네살 때였다. 아이 친구 엄마가 아들을 둘 키우는데 머리를 깎이려고 바리깡을 사서 몇 번 써봤다고 했다. 용기를 내서 바리깡을 빌렸다. 설명 들은대로 신문을 펴고 여름을 맞아 짧게 머리를 깎아주려고 칼날을 맞추어서 머리를 깎아주는데, 아차 싶었다. 앞머리와 뒷머리를 자를 때 칼날 길이를 다르게 해야한다는 걸 직감했다. 같은 길이로 주욱 밀어 준 것이다. 앞머리칼은 누워있어서 그대로 밀면 더 짧게 깎여졌다. 처음에 스윽 지나간 자리를 보며 되돌릴 수는 없고 그저 여름이라 다행이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바리깡을 다시 빌린 일은 없다. 그래도 첫째 머리를 보면 앞머리 정도야, 머리 길이를 맞춰 잘라주는 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갸우뚱한다. 그래도 딸아이 머리에 선듯 손 대기가 무섭다. 내가 어렸을 때 머리는 아빠가 깎아주셨다. 아빠는 군대에서 머리를 깎아본 경험이 있으신지 능숙하게 잘 깎으시는데 문제는 스타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 때는 심각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내 머리 모양이 남자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희네 집', 아이와 언제 읽었던 책인데 일본에도 알려졌다니 괜히 으쓱해졌다. 수학 문제집에 '비빔밥'이 나왔다는 부분에서는 지난 달에 읽었던 아이 책이 떠올랐다. 트루디 루드위그의 '보이지 않는 아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 '불고기'가 나오는데 원서에도 한국 불고기라고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 음식이 다른 나라 책에도 등장할만큼 알려졌구나 싶어 흐믓했었다. 아이들 책으로 전집을 사주지 않는 점도 작가와 닮았다. 좋은 전집이 많다고 하지만 아이가 언제 읽을지도 모를 책을 큰 돈 들여 사는 게 나와는 맞지 않다. 필요할 때 아이와 서점에서 한 두권씩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빌려 읽는 편이다. 내 소득에 맞춰 생활하다보니 몸에 벤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들은 도서관과 서점에 가는 것을 나만큼 좋아하고 책읽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잘 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도서관 다닌 일이라고. 내가 읽고 싶은 책도 빌리고 아이 책도 빌려오다보니 도서관에 가는 일은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아이 유치원 등원시키는 장면도 내겐 그냥 와닿았다. 아이와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병설 유치원을 함께 오가는 등하원 길. 어쩌면 내가 아이와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에게 집중하며 이야기 나누는 규칙적인 시간이다. "오늘은 엄마가 일하는 데 약속이 잡혀서 서둘러야 돼."란 말을 많이 하지만 그 시간이 아이와 내게 소중한 것만은 틀림없다. 부지런히 걸어서 덤으로 운동까지 된다는 것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를 글이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삶에 큰 힘이 된다. 같은 방향을 보고 비슷한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의 안정감이 더 나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준다고 생각한다.

아하! 말을 하고 보니 앞에 한 말이 육아와 닮아 있다.

우리 아이들이 가족 안에서 안정감을 갖고 자란다면 사회에서도 남과 더 잘 어울려 살아가리라는 것. 육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이 안정감을 느끼는 곳이 있을 때 사회생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겠구나! 윤영희님이 있는 베이비트리가 내겐 그런 곳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시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다 쓰려고 하는 노력이 내겐 필요해보인다. 좌충우돌, 아직은 다듬어지지 못한 엄마라는 게 작가와 많이 달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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