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조연들의 명품 연기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의 멋진 활약에 못지않게 주인공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심지어 주인공보다 톡톡 튀는 연기를 선보이는 조연들은 ‘약방의 감초, 맛깔 나는 감초 조연’ 등으로 불리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약방의 감초’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은 “한약에 감초를 넣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어떤 일에나 빠짐없이 끼어드는 사람 또는 무슨 일을 하든지 꼭 있어야 할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의미한다. 실제로 감초는 상당수의 한약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다. 또한 한약재 하면 인삼, 녹용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약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감초는 왜 약방의 감초가 되었을까? <동의보감> 탕액편을 보면, “감초는 성질은 평(平)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모든 약의 독을 없애주고, 모든 약을 조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국로(國老)라고 칭한다. 감초는 오장육부에 한열(寒熱)과 사기(邪氣)가 있는 데 쓰며, 모든 혈맥을 잘 돌게 한다. 또한 힘줄과 뼈를 든든하게 하고 살찌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규명된 감초의 약리적 효능은 해독 효과, 간세포 손상 억제, 인후점막의 자극 완화, 항염 및 항알레르기 작용, 항바이러스 작용 등으로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물론 이렇게 다양한 효능을 가진 감초도 각 처방의 특성에 따라 용량을 줄이거나 늘이거나 빼는 등 조절하기도 한다. 또 특정 효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말린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불에 구워 사용하기도 한다.
감초는 종종 스테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감초의 주성분은 글리시리진산으로 스테로이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글리시리진산이 우리 몸속에서 스테로이드의 분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때문에 감초를 먹었을 때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분해가 저하되면서 혈중 스테로이드 농도가 높아지고, 식욕이 좋아지며 얼굴이 붓는 증세가 유발될 수 있는데, 이를 ‘감초 유발성 위알도스테론증’이라고 한다.
즉, 감초를 과량 복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위알도스테론증을 스테로이드로 인한 면역억제 효과로 오해함으로써, 감초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감초로 위알도스테론증을 일으키려면 하루에 50g 이상을 6주 이상 먹어야 한다. 따라서 흔히 한약에 들어가는 소량의 감초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약방의 감초”라는 말은 현재 우리 사회에도 커다란 귀감이 될 법하다. 감초가 한약의 좋은 효능은 발현시키고 부작용은 없애 우리 인체를 조화롭게 하듯이, 특정 계층의 의견만이 반영되는 몰상식적인 사회가 아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의견이 조화롭게 반영되는 행복한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자신의 이익과 주장만을 고집하는 모난 이들에게 조화를 중시하는 감초를 권하고 싶다.
여정구/한의사·청년한의사회 학술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