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가족 오빠만 예뻐하는 엄마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은 사실일까요? 지난해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768명을 조사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군요. 아버지의 70%, 어머니의 65%는 유독 한 자녀만을 편애한다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끼는 자녀는 불안이나 낮은 자존감,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지요. 하지만 더 많이 사랑받는 자녀라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다른 형제들을 동정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니 말이에요.

“엄마는 너랑 오빠를 한번도 차별한 적이 없다.”

홀로 두 자식을 키우며 ‘방목’이 유일한 교육 철학이었던 엄마가 유일하게 당당하게 내세우는 자랑거리다. 아들인 오빠와 딸인 나를 한번도 ‘성 차별’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엄마가 오빠와 나를 성 차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성적 차별, 성격 차별 등등 성 차별을 제외한 모든 차별에서 엄마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내 성격은 엄마 탓’이라고 하는 것도 참 멋쩍지만, 내 비뚤어진 성격의 상당 부분은 어린 시절 ‘차별 대우’에서 기인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다른 많은 부분에서 ‘인내의 아이콘’이지만, 지금도 차별당하는 것, 억울한 것만큼은 심하게 못 참는다. 그래서 버럭, 버럭 사고도 많이 친다.

어린 시절, 정확히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오빠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였다. 시험을 보면 항상 ‘올백’이었고, 매년 반장이었으며, 고학년 때는 전교 회장, 부회장 같은 걸 맡아 했다. 서예, 경필은 물론 불조심부터 반공까지 각종 포스터 그리기, 웅변, 컴퓨터까지, 체육을 뺀 모든 대회 1등은 오빠 몫이었다. 집안 곳곳에 오빠 상장이 굴러다녔다. 성격도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순둥이였고, 남한테 험한 말도 전혀 할 줄 몰랐다.

오빠만 밀어주는 
엄마가 얄미워 얄미워 
두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진짜 없을까 
똑같이 잘해도, 못해도 
오빠만 늘 품안의 자식이었다

나는 오빠와는 참 달랐다. 체육만 잘했다. 시험을 보면 맞는 것보다 틀리는 게 많았다. 구구단도 남들보다 1~2년 늦게 외웠다. 그림도 못 그렸고, 글씨도 못 썼다. 어려서부터 따지기 좋아하고 성질도 더러웠다. 어렸을 때 별명이 ‘흥, 치, 피’였는데 어른들이 말할 때마다 꼭 토를 달고 눈을 부릅떠서 생긴 별명이었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도 모이기만 하면 “어휴, 이 집 아들은 참…근데 딸은 왜….” 대놓고 오빠와 나를 비교했다.

이런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채점이 끝난 시험지에 엄마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동그라미보다 좍좍 그은 빗금이 더 많은 시험지였다. 집에 갔더니 엄마와 외가 식구들이 오빠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내 시험지를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급한 김에 잔머리를 굴렸는데, 공책 가득 엄마가 사인을 해주면 그거 오려서 필요할 때마다 붙이는 거라고, 엄마한테 빈 공책을 들이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지만 그땐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엄마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내 거짓말에 선뜻 응해주셨다. ‘서명 조작’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그 거짓말은 여태 ‘오금 저리게 창피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한집에 살면서 너무 비교가 되니 어려서부터 그냥 감추고 싶은 게 많았다. 집에 가면 학교 얘기는 거의 안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처구니없는 일로 선생님한테 코피 나도록 따귀를 얻어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억울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서 엄마한테 말도 안 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오빠 동생이라는 걸 안 모든 선생님들은 말했다. “니가 정말 ○○ 동생이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더러 어쩌라고. 나라고 그 동생이고 싶었겠냐는 말이다. 학교에서 나는 어지간하면 오빠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내 얘기도 별로 하지 않았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온갖 학원을 다 다녔다. 안 다녀본 학원이 없다. 나는 오빠가 학원에 많이 다녀서 다방면에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우겼다. 나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닌 것 이외에는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엄마한테 항의도 많이 했다. 엄마는 말했다. “오빠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이거 잘하니까 학원 보내라, 저거 잘하니까 학원 보내라 전화가 와서 보낸 거다. 니네 선생님한테선 그런 전화 한번도 못 받아봤다.” 아주 공평한 대우인 듯 포장돼 있지만, 난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내 아이 돌봐주고 
꼬박꼬박 ‘월급’ 받는 엄마 
그 돈으로 오빠 지원해줘

나도 잘하는 게 있지 않았나. 나는 전교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했고, 선생님들이 농구부 시켜라 육상부 시켜라 엄마한테 전화도 한두번은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엄마는 “여자애가 무슨 운동을” 하고 단칼에 자르셨다. 지금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땐 (심지어 못생긴) 오빠와 달리 엄청 예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예쁘다고 뒤를 돌아볼 정도로. 미스코리아 시켜라 탤런트 시켜라 소리도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예쁘다는 칭찬 대신 ‘청보에 개똥’(비단보에 개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얼굴만 예쁘면 뭐하냐 성격이 나빠서 쓸데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때 공부 못하고 성질 더러운 걸 욕하기보다, 얼굴 예쁘고 운동에 소질이 있는 걸 칭찬해줬다면…. 혹시 아나, 김연아보다 먼저 ‘셀레브리티 운동선수’라도 됐을지.

극적 반전은 사춘기 시절 찾아왔다. 오빠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방황으로 헤매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뜻밖에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성적도 곧잘 나왔다. ‘1’자가 새겨진 성적표도 종종 집으로 들고 왔다. 그런데 이번엔 오빠는 성적이 떨어지니 과외를 시켜줬고, 나는 알아서 잘하니 학원도 안 보내줬다. 뭐, 형편이 아주 풍족했다면 당연히 나도 보내주셨을 거라는 정도의 믿음은 있다. 엄마가 날 그렇게 막 대하시진 않았다. 다만, 없는 살림에 쪼개서 보내려니 내 몫은 없었던 것이다.

대학 입학 뒤에도 이 ‘보이지 않는 차별’은 계속됐다. 나는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녔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으며, 결혼도 엄마 도움 한푼 안 받고 했다. 엄마 용돈도 내가 드렸다. 오빠는? 엄마 돈으로, 가끔은 나의 도움으로 대학을 2곳이나 졸업했고 대학원도 갔고 결혼도 하고 애도 기른다. 지금도 돈이 별로 안 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오빠에 대한 엄마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회사에 다니며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있다. 나한테 에누리 없이 제날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시는 엄마가 그 돈으로 오빠네를 도와주신다. 억울하지는 않지만 얄미울 때는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교회에 다닌다. 처음 성경을 접했을 때 나를 울린 구절이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자매 얘기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집에 오시자 언니 마르다는 접대 준비에 바빠서 말씀을 들을 시간도 없는데, 동생 마리아는 태연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었다. 복장이 터진 마르다가 예수님한테 마리아를 고자질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돼 울었던 게 아니라, 마르다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어 울었다. 예수님도 그 마음을 몰라주셨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차별에 반대하는 제이(J)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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