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 가족
출산과 부부의 꿈
▶ 연봉 3000만원대 초반의 남자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연봉 2500만원대 아내는 출산휴가를 가는 것이 눈치 보여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아내의 퇴사를 만류하는 자신이 초라해 보입니다. 조리원비며 양육비며 가족들을 짊어진 남자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한때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열정적이었던 남자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꿈에 가족들을 담보로 걸 수 없기 때문이지요. 대한민국 보통 사람, 보통 남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나는 꽤나 모범생이었다. 모범생이라면 으레 우등생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꼭 구분하고 싶다. 우등생은 아니고 모범생이었다. 나의 꿈은 ‘보통사람’이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직장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의 꿈은 ‘보통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보통사람이 된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비교적 잘해왔다.

남들처럼 학원 다니고 공부해서 수도권에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대학을 입학했다. 학점관리다 어학연수다 부모님 등골 빼먹으며 열심히 노력했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연봉 3000만원 초반 받는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연애 끝에 요즘 그 어렵다는 결혼에도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내 연봉 2500만원을 더해 저축도 하고 전세 대출도 갚으면서 보통사람임을 자부하며 살았다.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아내 자기야, 여기 좀 와봐.

 무슨 일이야?

와이프의 목소리엔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내 나, 임신인 것 같아.

와이프가 임신테스트기를 내밀었다. 선명한 두 줄이 눈에 들어왔다.

 (3초간 정적) 우와~ 축하해. 고마워, 자기야~. 자기 덕분에 내가 아빠가 되네~. 앞으로 내가 자기한테 잘할게~.

아내 근데 자기야. 나 어쩌지? 임신해서 더이상 회사는 못 다닐 것 같아. 주변에 눈치 보여 출산휴가는 꿈도 못 꾸고.

 ….

아내 자기, 왜 아무 말이 없어? 나 회사 그만둬도 돼?

 그렇지만 자기야, 우리 아직 전세 대출도 한참 남았고 자동차 할부에 애 낳으려면 각종 병원비에다 산후조리원까지. 애 낳고 난 다음엔 맡아줄 사람도 없는데 육아비를 어떻게…. 휴. 내 월급으론 빠듯한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스스로가 비참했다. 아내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는 못난 남편이라니. 내가 원하는 삶은 분명 이런 게 아니었다.

아내 자기 결혼 전에는 혼자서 다 책임질 것처럼 말했잖아. 민혁이보다 더 나한테 잘할 자신 있다며!

민혁은 결혼 전 아내를 열심히 따라다니던 내 친구놈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연봉 순위 1, 2위를 다툰다는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민혁이 얘기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다.

 지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럼 자기는 이제 애 낳고 집에서 놀고 먹겠다는 거야?

아내 애 낳고 키우는 게 놀고 먹는 거야? 자기가 이렇게 찌질한 남자인 줄 몰랐어. (쾅!)

아내는 문을 있는 힘껏 닫아버리고 혼자 안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도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 안의 열등감과 자괴감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어버렸다. 나는 괴롭게 어깨를 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정신이 다시 들 때쯤 용기를 내어 안방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아내 옆에 앉았다.

 미안해. 나도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 아까는 민혁이 얘기에 그만 화가 났어. 내가 이것밖에 안 돼서 너무 미안해. 자기 회사 그만둬. 자기랑 우리 아기는 내가 책임질게.

아내 나도 미안해. 그만 화가 나서 말이 헛나왔나 봐. 그나저나 우리 앞으로 어떡하지? 당신 말대로 당신 월급으로 전세 대출에 자동차 할부 보험료에 우리 생활비까지 둘만으로도 빠듯한데 애까지 어떻게 기르지? 2년 있다 전세금 올려달라고 하면 우리 갈 데도 없는데.

 애가 좀 클 때까지만 버텨보자. 애가 좀 크면 당신도 다시 일할 수 있을 거고 형편이 좀 나아지지 않겠어? 딱 하나만 낳아서 힘들더라도 잘해보자.

아내 그래, 근데 골치 아픈 얘기는 잠깐 접어두고 우리 드라마 보자.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시간이다. 잘생기고 돈 많고 똑똑하고 착한 완벽남이 가난한 이혼녀를 좋아해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성사시키는 뭐 그런 부류의 흔하디흔한 드라마다. 매번 똑같은 플롯에 첫 회만 봐도 다 알겠는데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게 아내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 쓸쓸함이 밀려온다.


축하해, 아빠 되니 좋다
정말 회사 그만둘 거야?
헉, 그렇게 비싼 산후조리원에?
나도 사업하고 싶은 건 아니?

아내
그래도 애만큼은 양보 못해
조리원이 좋아야 좋은 엄마 만나
지금은 당신 회사 그만 못 둬
퇴직금 나오면 그때 하자, 응?

아내가 만삭인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심기가 심상치 않다.

 자기야, 나 왔어~.

아내 어, 씻고 밥 먹어.

 오늘 병원은 잘 다녀왔어?

아내 응, 나 근데 조리원 바꿔야 할까 봐.

 우리 이미 예약 다 마쳤잖아. 무슨 일 있어?

아내 좋은 엄마들이랑 만나려면 좋은 조리원 가야 한대. 육아에 조리원 동기가 중요한데, 우리가 예약한 데는 너무 싼 곳이라 거기 오는 엄마들도 다 별로고.

 …. 어디로 가고 싶어? 얼마나 하는 데야?

아내 근처에 알아봤는데 괜찮은 데는 2주에 400만원 정도.

 2주에 400만원? 하루에 거의 30만원이나 되는 건데.

아내 이건 비싼 것도 아냐. 최소한이야, 최소한! 더 좋은 데는 1000만원 하는 데도 널렸어. 이건 다 우리 애를 위해서라고.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했다. 세금 떼고 거의 두 달치 월급을 2주 만에 쓴다는 것도 놀랍지만 조리원 동기라니 앞으로 얼마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려고 그러나, 걱정부터 앞섰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인데 벌써 육아 걱정이라니.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내 빠르다니! 요즘은 뱃속에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거래. 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애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 못해!

 알았어. 조리원까진 어떻게 해볼게. 하지만 우리 형편에 다른 사람 하는 대로 다 하고 살 순 없단 것만 알아줘.

나는 대충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할 만한 투잡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서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선배 요즘 잘 지내지?

 네, 선배 어쩐 일이세요?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

선배 어쩐 일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그러지. 요즘 직장은 잘 다니지?

 직장이야 정신없죠, 뭐.

선배 너 곧 애 생긴다고 그러지 않았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네, 선배. 안 그래도 투잡 알아보고 있어요. 애 낳는 것부터 돈이 이렇게 들어가는데 낳고 나서는 얼마나 더 들어갈지 걱정이네요.

선배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하는 사업 같이 하자.

선배와 대화를 할수록 대학 시절 꿈꾼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비난하며 촛불집회다 뭐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정의를 외쳤고, 빛나는 미래를 설계하던 시절이었다. 다시 꿈꾸는 이 순간은 당장이라도 사표를 집어던지고 내 사업을 일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선배 그래, 그때 너는 열정적이었지. 그래서 내가 지금 너랑 같이 사업하고 싶은 거야. 어때, 좀 할 마음이 생겨?

선배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내던지고 사업의 길을 선택한 선배가 멋져 보였다. 하지만 선뜻 한다고 하기에는 봉양해야 할 부모님과 부양해야 할 가족 걱정이 앞섰다. 나의 실패는 곧 내 가족들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저도 사업하고 싶죠. 옛날부터 창업에도 관심 많았던 거 알잖아요. 근데 와이프도 직장 그만뒀고, 이제 곧 애도 태어날 텐데. 와이프랑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

선배 이야~. 너도 와이프 눈치 보며 살고 많이 죽었네. 생각해보고 꼭 연락 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말할 수 없는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책임져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자기야, 나 할 말이 있어.

아내 응? 무슨 일이야? 목소리 깔고 분위기 잡으니까 나 무서운데?

 전에 말했던 선배랑 사업해볼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 직장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고. 길게 다녀봐야 20년 더 다닐 텐데 우리 애 대학 졸업시키기 전에 회사 나오면 막막하기도 하고.

아내 뭐? 자기 무슨 말이야! 사업이라니! 그러다 망하면 우리 다 길바닥에 내다 버릴 거야?

아내는 사업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뛰기부터 한다. 사실 장인어른 사업으로 집안이 어려워졌던 기억에 사업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아내 그냥 다니던 직장 다니다가 퇴직하면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 하자. 그리고 앞으로 한참 뒤의 일인데 지금은 직장 오래 다닐 생각만 해. 사업은 절대, 절대 안 돼.

아내 말도 일리가 있다. 창업 후 실패율이 9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는데 10%에 우리 가족 모두를 담보로 둘 수는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에 차라리 그때 공무원시험을 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들었다. 결국은 아무 소득 없이 다시 야근과 주말 출근인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사는 일상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 같다. 힘껏 달리지만 겨우 제자리에 서 있는 게 고작인 나라.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는 두 배로 빨리 달려야 하는 나라.

이곳에서는 나도 대한민국의 보통사람이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 사는 사람

(*위 내용은 2015년 5월 8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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