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레시피

[매거진 esc] 요리
설 연휴 쟁여놓고 볼만한 음식 영화 6선

치즈가 녹는다. 코를 달구는 향이 퍼진다. 치즈 조각이 혀에 감긴다. 쾌감이 빠른 속도로 뇌에 전달된다. 음식의 유혹은 대단히 원초적이고 강렬해서 그저 눈으로밖에 먹을 수 없다 해도 즐겁다. 그런 이유로 음식영화는 한 장르로 분류될 만큼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과거 그저 영화의 소품이었던 음식은 이제 당당한 주인공이다. 5일간의 설 연휴 동안 ‘먹방지존’들까지 ‘홀릭’할 음식영화 ‘베스트 6’을 골랐다. 영화 보고 달려갈 레스토랑도 함께 소개한다.

인도와 프랑스 음식 풍성
라세 할스트룀 <로맨틱 레시피>
갓 구운 빵이 가진 치유의 힘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로맨틱 레시피>
<로맨틱 레시피> (미국, 2014)

미슐랭가이드 별점 3개를 받는 요리사조차 비명을 지를 만큼 화려한 음식들이 출몰한다. 열정과 재능을 모두 갖춘 한 인도 청년이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스웨덴 출신 감독 라세 할스트룀이 메가폰을 잡고 스티븐 스필버그,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에 참여했다. 소설 <백 걸음의 여행>이 원작이다. 성게를 두 손으로 받들어 모시고 흠뻑 향에 취하는 소년 하산. 강렬한 첫 장면은 영화 내내 펼쳐지는 화려한 식재료 퍼레이드의 서막이다. 프랑스 한 소도시에 정착한 하산의 가족은 미슐랭가이드 별점 레스토랑 ‘솔 플로뢰’의 주인 마담 말로리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낡은 ‘르 코르동 블뢰’ 레시피북을 발견한 하산은 프랑스 요리에 끌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성공담은 진부해 보일 수도 있으나 장면마다 꽉 채운 인도와 프랑스 음식에 혼이 빠진다. 분자요리 도구가 가득한 레스토랑 풍경에 입이 벌어진다. 이런 볼거리에 사랑까지 버무려져 맛있는 한 그릇이 완성됐다.

●등장 음식: 하산표 오믈렛, 송로버섯을 곁들인 비둘기요리. 뵈프 부르기뇽, 철갑상어와 굴로 만든 분자요리에 인도산 향신료를 넣은 요리 등

●추천 레스토랑: 지난해 서울 원서동의 옛 ‘공간’ 사옥 5층에 문을 연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와 최근 3주간 프랑스 파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수를 마치고 와 새 메뉴를 하나둘 내고 있는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남극의 쉐프>
<남극의 쉐프> (일본, 2009)

일본의 남극기지에서 생활하는 연구원 9명의 생활을 유쾌하게 그렸다. 자전적 에세이집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을 펴낸 남극기지의 요리사 니시무라 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유일한 위로는 니시무라 준이 해주는 고향 음식. “식재료는 냉동, 건조, 캔 종류”만 있는 기지에서 니시무라는 마치 조물주처럼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무화과 퓌레를 곁들인 푸아그라 테린 등을 만들어낸다. 라멘이 떨어져 절망하는 대장을 위해 직접 라멘까지 만들어버리는 그는 ‘조리의 신’이다. 온통 담백한 음식이 화면을 메운다. 눈 파서 식수를 만들고 영하 30도가 훌쩍 넘는 눈밭에서 파티와 소프트볼 경기를 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남극의 쉐프
●홋카이도산 연어알을 넣은 오니기리, 무화과 퓌레를 곁들인 푸아그라 테린, 라멘, 닭새우튀김 등

●제주도에 위치한 ‘정성듬뿍’은 갓 튀긴 ‘멜 튀김’과 각재기국 등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아메리칸 셰프>
<아메리칸 셰프> (미국, 2014)

존 패브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음식의 맛보다는 수익에만 몰두하는 고급 레스토랑을 탈출한 요리사의 얘기다. 성질 급한 주인공 칼 캐스퍼는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칼은 음식평론가와 한판 격전을 벌이고 레스토랑 주인과도 마찰을 빚어 레스토랑을 그만둔다. 그가 새로 선택한 맛의 공간은 뜻밖에 푸드 트럭. 푸드 트럭 ‘엘 제페’의 메뉴는 쿠바식 샌드위치. 에스엔에스 마케팅의 귀재인 아들의 수고로 푸드 트럭은 인기를 끌고 한판 제대로 붙었던 음식평론가를 다시 만나 새로운 레스토랑을 여는 훈훈한 이야기. 간간이 화면 가득 채우는, 칼로리 높은 미국 음식을 보는 것도 영화의 재미다.

●쿠바식 샌드위치인 쿠바노, 포보이, 텍사스 오리지널 바비큐, 베녜 등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라이너스 바비큐’는 최근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바비큐 전문점.


<해피 해피 브레드>
<해피 해피 브레드> (일본, 2012)

먹을거리가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선택한 리에와 미즈시마 부부는 카페 마니를 열어 매일 아침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린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젊은 여성, 엄마가 떠난 빈자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소녀와 그의 아버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 등이 찾아와 정성 가득한 이들의 음식을 맛보면서 치유를 경험한다. 부부는 밭에서 바로 딴 토마토와 루콜라를 얹어 피자를 만든다. 주인공이 빚는 캉파뉴(프랑스식 시골 빵)는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김이 모락 피어나는 호박수프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빵은 카페를 찾는 이들을 위로한다. 오는 3월 이 영화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해피 해피 와이너리>가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해피 해피 브레드

●호박수프, 캉파뉴, 토마토빵, 구겔호프, 호밀빵, 크루아상, 사과벌꿀빵 등

●‘제주 슬로비’는 제주도의 아늑한 애월리에 있다. 친환경 재료로 ‘돌빵’을 만들고 고소한 호박수프가 인기다. 제주도 빵집 ‘보엠’에는 주인장이 빚은 소박한 빵들이 많다.


<쉐프>
<쉐프> (프랑스, 2012)

영화 <레옹>의 킬러, 장 르노가 자존심 강한 파리의 전설적인 셰프, 알렉상드르로 변신한다. 미슐랭가이드 별점 획득에 목숨 거는 요리사들의 피 말리는 경쟁과 체계적인 일류 주방의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돈 벌 궁리에만 혈안이 된 레스토랑 주인과 요리사들의 힘 대결이나 경쟁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자존심 건 메뉴 개발 등이 볼만하다. 알렉상드르가 맛에만 집중하는 고지식한 천재 요리사 자키를 만나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여정 등이 재밌다. 주인공들이 경쟁 레스토랑 ‘셰프 시릴’의 분자요리를 활용한 소 췌장 스파게티, 질소 샴페인 등을 몰래 염탐하는 장면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유머감각이 입혀져 웃음을 만든다. 파리의 미식세계를 엿보려면 이만한 영화도 없다는 평.

쉐프

●호두, 호박무스에 로메인샐러드 얹은 아스픽과 토마토 라비올리, 골수타르틴과 오징어먹물 입힌 글레이즈, 췌장스파게티 등

●서울 신사동의 ‘루이쌍끄’. 오너 셰프 이유석씨가 철마다 새로운 메뉴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캐주얼한 형태의 프렌치 레스토랑.


<스시장인: 지로의 꿈>
<스시장인: 지로의 꿈> (미국, 2011)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과 함께 대표적인 음식 다큐멘터리. 70살이 넘은 스시 장인 오노 지로가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넘친다”는 말로 다큐멘터리는 시작한다. 50살이 넘은 아들이 쪼그리고 앉아 여전히 김을 굽는 오노 지로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는 지난해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방문해 화제가 된 곳이다. 미슐랭가이드 별점 3개를 획득한 이곳은 저녁 식사비가 우리 돈으로 30여만원. 30년 넘게 한결같은 숨결로 스시를 빚는 장인의 꼬장꼬장한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 “2차대전 전에는 참치가 흔했다. 기름진 참치의 맛은 단순하고 예측이 가능하지만 기름기가 적은 참치는 미묘하고 세련된 맛이다.” 장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교과서다.

●참치중뱃살스시, 참치붉은살스시 등

●신라호텔 출신의 박경재 셰프가 솜씨를 발휘하는 서울 청담동 ‘코지마’. 사진 촬영을 금지한 독특한 스시전문점으로 저녁 식사비가 30만원이 넘는다.

이 밖에도 <카모메식당>, <줄리 앤 줄리아>, <하와이언 레시피>, <달팽이식당>, <에스토마고>,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 등의 영화가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각 영화 배급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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