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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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 가족
20대 남매의 심야 통화
▶ 낯간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누나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습니다. 안부만 대충 묻던 그동안의 대화와는 달랐습니다.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누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알던 동생이 아니었습니다. 철이 너무 들어 있었던 겁니다. 누나는 좋기만 했을까요? 서로서로 인터뷰하는 새로운 가족의 초상,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투고는 gajok@hani.co.kr

전화보다도 카톡이 편한 사이가 있다. 세 살 터울인 나와 내 동생 사이가 그렇다. 2009년 3월, 동생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2010년 3월, 나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떠났다. 2013년 12월, 동생은 대학교에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육군에 입대했고, 2015년 3월,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2015년 9월, 동생은 제대하자마자 복학생이 됐다. 내가 군인을 부르는 호칭이 군인 아저씨에서 군인 오빠, 군인 친구, 군인 동생으로 변해가는 동안 동생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다 합쳐도 30일은 될까. 나는 서울, 동생은 강원도 삼척. 282.65㎞의 거리만큼 우리는 소원했다.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겹치는 일상이 적은 만큼 나눌 이야기도 적었다. 동생이 군대에 가 있을 때 주고받은 손편지 서너 통과 계절이 바뀔 때쯤 챙겨 부치던 핸드크림, 립밤, 방한 내복 따위와 함께 보낸 포스트잇 메모가 그나마 드문드문 나눈 대화였을까.

예년보다 찬 공기가 이르게 찾아왔다. 느닷없이 찾아온 추위에 더위보다 추위가 더 빨리 찾아오는 곳에 있는 동생이 생각났다. 갓 제대한 복학생의 대학생활이 궁금했다. 전화하기 전에 카톡을 보냈다. [지금 전화 괜찮냐] [왜, 지금은 좀 바쁜데] [그냥 오랜만에 전화 좀 할까 해서] 시험 기간인 동생은 지금은 바쁘니 밤 12시 넘어서 통화하자고 했다. 밤 12시20분, 전화를 걸었다.

동생
“난 돈을 많이 벌 거야
자식 낳아서 다 물려줄 거야
주먹보다 무서운 게 돈이래
빌딩 사서 세 받아서 살고파”

누나
“그저 순간순간을 즐기던
예전의 네 모습과 너무 달라
편하게 사는 게 다는 아니잖아
근데 원래 네 꿈이 뭐였지?”

 졸리지? 근데 늦게까지 안 자네? 설마 공부해?

동생 (으쓱하며)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공부 좀 하고 있었어.

 갓 제대한 복학생답네. 오랜만에 학교 가니까 어때?

동생 군대 있을 땐 빨리 복학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별로. 과목이 맘에 안 들어.

 네가 선택한 거 아니야?

동생 내가 고른 거긴 한데 전공 선택은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한 거기도 하지. 그리고 우리 과(소방방재학과)는 학기마다 들어야 하는 과목이랑 시간표가 정해져 있어서 학교에서 짜준 대로 들어야 해.

 아이고. 거기도 춥지? 오늘 아침에 학교 가는데 너무 춥더라. 그 동네는 훨씬 추울 거 같은데.

동생 여기 엄청나게 춥지. 오늘 겨울옷 꺼냈어.

 근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축 처져 있어. 무슨 일 있어?

동생 나 문과 나왔잖아. 일찌감치 내가 놓았던 것들이 요즘 날 괴롭혀. 화학식이나 고1 화학 시간에 잠깐 배웠던 ‘칼카나마알아철(K, Ca, Na, Mg, Al, Zn, Fe)…’ 이온화 경향 그런 거. 고1 때 선생님한테 회초리 따다다다 맞으면서 배웠던 거라서 좀 생각이 나는 거 같으면서도 손 놓고 있던 걸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 수업 들어가도 잘 모르겠고.(한숨)

 진짜 듣기만 해도 벅차다. 문과에 국문과 나온 나는 네 말도 뭔지 잘 모르겠어. 요즘 재밌는 건 없어? 오랜만에 학교 가서 설레고 신나고 뭐 그런 거.

동생 딱히 신나고 그런 거보다 아는 사람이 엄청나게 줄었어. 학교에 아는 얼굴들이 별로 없어.

 너 축구 동아리도 하지 않았어?

동생 열심히 했지. 근데 동아리 주축이었던 형, 누나들이 다 졸업해서 가긴 가는데 자주는 안 가.

 친구들은? 그럼 혼자 다녀?

동생 아니, 학교에 있는 애들끼리 어울려서 다녀. 아, 내일은 고시국어 수업도 들어.

 고시? 옛날 시? 고전 시 배우는 거야?

동생 아니 국가고시 할 때 그 고시. 학교에서 토익이랑 고시국어 이런 수업을 많이 열었더라고.

 너도 그럼 국가고시 보는 거야?

동생 아니, 나는 설비기사·소방방재기사 자격증 따서 리조트 같은 데 시설팀에서 일하고 싶어. 누나, 영화 <타워>봤어? 거기서 스프링클러 같은 거 설치하고 그러잖아. 그거처럼 건물 안전시설 같은 걸 관리하는 거.

 근데 너 지금 무슨 공부 하는 중이었어?

동생 고시국어. 수업 때마다 쪽지시험 보거든. 공부를 해야겠어서 하긴 하는데, 안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요즘 좀 싱숭생숭해.

 전공을 바꾸고 싶은 거야?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있어?

동생 아니, 전공을 바꾸고 싶은 건 아닌데, 사실 하고 싶은 게 딱히 있지도 않아서 그냥 이왕 시작한 거 잘 마무리하고 싶어. 휴학도 웬만하면 안 하고 빨리 사회에 나가서 돈 벌게. 뭐라도 해서 돈 벌게. 밑바닥부터라도 차근차근 시작할래.

 뭔가 예전 네 모습이랑 너무 달라. 너 예전엔 밤 12시 다 돼서 기차 타고 홍대 가서 친구들이랑 밤새 놀다 새벽에 들어와서 아빠한테 혼나기도 하고, ‘학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엄마한테 대들기도 했잖아. 용돈도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쓰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가 네 모토였던 거 같은데. 군대 다녀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건가?

동생 아무래도 현실에 부딪쳐. 예전처럼 놀고먹어서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너한테 그런 소릴 들으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해.

동생 이 각박한 세상 돈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 움직이는 것도 다 돈이야.

 아… 너무 현실적이라 할 말이 없네.

동생 그래서 난 돈을 많이 벌 거야.

 어떻게? 돈 벌어서 뭘 제일 하고 싶은데?

동생 자식 낳아서 다 물려줄 거야. 좀 편하게 살라고. 내가 조금 먹고 살더라도 자식에게 7할은 줄 거야. 딴 건 없고 이 세상은 돈이면 다 되는 거 같아. 부대에서 친해진 선임 형이 만날 그랬거든. 주먹보다 무서운 게 돈이라고.

 (당황) 헉, 그 형은 원래 뭐 하는 사람이었어?

동생 집이 되게 잘사는 형이었어. 그 형이 그랬어. “세상은 돈 있으면 부릴 수 있는 게 참 많다.”

 너는 그 형 말이 맞는 거 같아? 난 좀 아닌 거 같은데. 갑자기 영화 <베테랑>이 생각나네. 너 <베테랑>봤어? 거기서 ‘조태오’가 돈이 많아서 많은 걸 부리잖아. 네가 만약 ‘조태오’라면 어떨 거 같아?

동생 솔직히 좋을 거 같긴 해. 돈 있으면 다 되잖아.

 넌 돈을 어떻게 쓰고 싶은데?

동생 빌딩을 사. 세를 줘. 세 받아서 먹고살아. 또 빌딩을 지어. 세를 줘. 그걸로 또 먹고살아. 계속 그렇게 하는 거지.

 임대업을 하시겠다? 재벌 3세치고는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

동생 그래도 그렇게 살면 편하지 않을까?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전부는 아닐 거 같은데. 다른 거 뭐 하고 싶은 건 없어? 아, 근데 원래 네 꿈이 뭐였지?

동생 내 꿈? 그러고 보니 나 꿈이 뭐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뭐지? 아,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싶다. 어려워. 모르겠어 다. 공부하기도 어렵고 지치네.

 전화하다 보니까 왠지 더 우울해진 거 같아. 우리 정말, 어떻게 살지?

동생 그러게. 우리 어떻게 사냐.

1시간1분37초, 동생과 이렇게 길게 통화한 적은 처음이다. 통화하면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난 달라졌다’는 분위기를 내뿜는 동생이 낯설었다. 지금 이 순간 즐거운 게 중요하다고 말하던 동생이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문득 내가 동생보다 훨씬 더 철이 덜 든(?) 것 같았다. 난 좋은 책도 꾸준히 읽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고, 내 생각을 내 언어로 말하고 싶은데.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2년 전, 군대 가는 동생에게 인사치레로 ‘군대 가서 철 좀 들어 오라’고 말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군대가 사람을 철들게 하는 집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군대의 본질 중 하나가 개인성을 억압해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모두를 평균화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막상 친구들이랑 돌아다니며 노는 것 좋아하고 쾌활하던 동생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제 그만 놀고 앞으로 어떻게 돈 벌어서 먹고살까 생각해야지” 말하는 순간 마음이 짠했다.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을 테니 하고픈 걸 하며 즐겁게 살자고 말하는 누나보다 어떻게 먹고살지를 고민하는, 일찍 철들어버린 동생이 안쓰러웠다고 하면 늦은 밤 새벽 감성이 지나친 걸까.

‘철들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2년 전, 군대 가는 동생에게 철들어 오라고 말했던 걸 굳이 다시 따져보자면 ‘말을 좀 곱게 했으면, 부모님 고마운 줄도 좀 알고.’ 이런 걸 뭉뚱그려 당부한 거였다.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각할 줄 알았으면 하는 거였다. 그런데 군대에 다녀와 ‘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어. 더 ‘노(오)력’ 해야겠어’ 말하는 동생을 마주하니 이번엔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철든다는 게 현실에 잘 적응해서 잘 먹고 잘사는 것만 궁리하는 거라면, 우리 철들지 말자.”

동생보다 덜 철든 제천의 누나


(*위 글은 2015년 11월20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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