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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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가족

▶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방치되고 싶은 남편이 여기 있습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멍때리던 결혼 전 일상이 때로 그리운 건 남편이나 아내나 똑같겠지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기도 하면서 왠지 모를 감정이 밀려옵니다. 푸념하면서 이해하면서 가족이 되어갑니다. ‘인터뷰; 가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 지급과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멍때리던 과거가 그리워…나는 방치되고 싶다고요

학교에서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지 12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빠”라 불리게 된 것도 세어 보면 8년 정도 되었다. 학교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의 삶은 집과 학교의 반복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휴가가 아니다. 바로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냥 혼자 ‘방치되고 싶은 시간’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로 둘러싸여 정신이 없을 때가 많다. 여고생들은 교무실을 사랑한다. 교무실은 여러 학생들이 내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뒤섞이면서 특유의 활기참이 넘친다. 집에서는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이제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 딸들은 내가 집에 있는 날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커왔던 시대의 경상도 아버지들은 침묵, 과묵 그 자체였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게 싫어서 주 5일을 학교에 바치고, 주 2일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정적이네, 애들과 잘 놀아주네 하는데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 한구석에는 ‘적어도 몇시간만은 좀 내버려둬 주면 안 될까?’라는 무언의 요청이 깊숙이 숨어 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아내는 항상 나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학교에선 학생들이 와글와글
계속 뭔가를 얘기해야 하고
집에선 애들과 놀아줘야 하고
나 좀 혼자 있게 해주면 안 돼?

아내
그런 말 할 때 참 황당하더라
혼자 있으려면 왜 결혼했어?
좋다, 나도 혼자 좀 있어보자
육아를 분담해야 하지 않아?

아내 당신 이번 연휴 때 학교 언제 언제 가지?

 애들(학생들) 나와서 공부하는데 매일 나가서 제대로 하는지 봐야지.

아내 그래? 다른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그렇게까지 안 하던데. 그럼 난 애들하고 어떡하지? 엄마하고 모두 거제(처가가 경남 거제다)에 내려가신다던데. 그런데 당신 하루 종일 학교에 있지는 않을 거잖아? 점심 먹고 오후에는 올 거니 첫날에는 어디라도 나가보자. 이제 날도 더워지고 하니 서윤이 옷도 좀 봐야 하고.

 여보. 나에게도 좀 연휴인데. 그날 그냥 옆집 엄마들하고 이래저래 좀 가고 이럴 일 없어?

아내 집에 오면 쉬는 거지. 집에서 누가 당신한테 일 시키나? 집에 오면 당신 마음대로 하면서 무슨 못 쉰다고 볼멘소리를 해?

 집에 오면 쉬는 게 되나. 첫째는 그나마 뭐 혼자 숙제라도 하지만 둘째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고. 나 지난 휴일에도 애들 둘 데리고 혼자 동물원 가서 3시간 넘게 놀다가 왔잖아. 이번에는 그냥 집에 있고 싶은데….

아내 내가 매일 애들 보잖아. 그럼 나도 혼자만의 시간 좀 갖자. 육아를 분담해야지. 그리고 뭘 자꾸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그래? 혼자 놔둬도 특별히 할 것도 없으면서.

 왜 할 게 없어? 나도 집에서 소리 크게 켜놓고 야구 게임 좀 실감나게 해보자. 낮잠도 좀 푹 자고. 사놓은 책도 좀 읽고. 그리고 혼자 좀 돌아다니고 싶은 곳도 있어. 내가 왜 혼자서 할 게 없다고 하는 거야.

아내 당신이 그러면 나는 애들하고 어디로 가란 말이야? 혼자 있을 때 그러는 거는 결혼하기 전 솔로일 때나 하는 거지. 그때 실컷 했잖아? 들어보니 컴퓨터 과열될 때까지 게임하고 했다면서? 혼자 있어봤자 게임밖에 더 하나. 옆집 아빠는 캠핑 장비 사서 어제 떠났다더라. 당신도 좀 열심을 내봐!

이런 말이 나오면 나는 적잖이 억울하다. 몇주 전에 첫애가 재량휴업일이라고 초등학교를 안 간 날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체험활동 중이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어디 갈 건지를 물어봤다. 결혼생활 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내가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이미 어디 갈 건지를 정해놓았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전남 광양에 있는 언니네 가게에 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계속했다. 결국 그날 학생들과 부산의 암남공원 해안 산책길을 10여㎞ 걷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차를 몰고 나섰다. 약 200㎞를 달려 처형이 있는 광양에 갔다. 광양에서 저녁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날 말은 안 했지만 정말 피곤했다. 그 여파가 며칠을 갔다.

결혼 전에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많이 하면서 바빴지만 대부분 주말에는 집에 틀어박혀서 문 걸어 잠가 놓고 이것저것 했다. 내성적인 성향 때문이었지만, 뭔가 알 수 없이 힘들 때는 혼자 있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책도 읽고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낮잠도 자고. 무언가 목표를 정해놓고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시간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었다.

 에이. 다른 집에 비해서 우리 애들은 진짜 어디 많이 가는 거 알면서? 좋다. 당신 말대로 첫날은 애들 옷 사러 가고, 둘째 날 오후는 내가 좀 쓰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아내 어디 가려고?

 그냥 (부산) 서면에 좀 가려고. 가서 중고책들도 좀 보고, 게임 매장에서 게임들 시세도 좀 확인하고, 사람 구경도 좀 하고.

아내 별것도 없네. 그럼 둘째 데리고 가. 나는 그날 첫째랑 목욕이나 갈래.

 그 사람 많은 곳에 둘째를 어떻게 데리고 가는데?

아내 이제 잘 걷잖아? 막 안아달라 안 할 거야. 내가 둘 데리고 목욕 못 간다.

 애를 데리고 그 사람 많은 곳을 어떻게 걸어 다니란 말이야. 그냥 유유자적하면서 이것저것 보고 할 건데. 애가 있으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조를 테고.

아내 나도 마찬가지야. 애들 집에 있으면 매번 동영상만 보고,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애들 지겨워해서 안 돼. 애들도 휴일이고 아빠가 필요하잖아. 왜 계속 여기를 벗어나려 하는 건데?

 에휴. 그래, 알았다. 내가 그날 둘째 데리고 갈게. 남자들은 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어. 나 같은 경우는 평소에도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잖아. 학교에도 학생들이 와글와글. 그 속에서 계속 뭔가를 이야기해야 하고. 집에 와도 가족들 속에서 계속 뭔가 해야 하고. 그건 당신이 잘 몰라. 설명할 수도 없고.

아내 그럼 애들 잘 때 하면 되잖아? 내가 당신 뭐 하든 방해 안 하잖아?

 이 공간에 홀로 있고 싶은 거지. 보통 방에서 내가 뭐 할 때 당신 드라마 켜놓으면 그 소리 때문에 나는 매번 소리 다 줄여놓잖아. 게다가 퇴근하고 오면 보통 저녁 9시 넘는데 피곤해서 뭘 해. 잠들기 바쁜데. 이런 연휴 때 그냥 장모님 따라서 거제도에 한 번씩 내려가면 좋잖아. 애들은 자연을 실컷 보고 당신도 처가에서 좀 쉬고. 나중에 내가 데리러 가면서 시외 드라이브도 하고 좋잖아. 나도 좀 쉬자. 가장으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잖아(라고 말하면서 살짝 미소를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 이제 가족들을 쫓아낼 궁리까지 하는 거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우리가 내려가면 엄마는 안 힘드나?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소! 나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황당하더라. 같이 있으려고 결혼했지, 혼자 있으려면 결혼은 왜 한 거야. 참, 나….

 쫓아내긴 왜 쫓아내, 가족들을. 그냥 멍하니 집에 틀어박혀서 이것저것 하던 과거가 그리워서 말해본 거다. 지난해 추석에 내가 일 때문에 하루 일찍 올라왔을 때도 집에서 뭐 별거 안 했다. 그냥 멍하니 마우스 붙잡고 컴퓨터 한 거 말곤 없다.

아내 좀 혼자 있으려면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 노력해봐.

 그렇게 멍한 게 생산적인 거야. 창의성도 좀 회복하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힘도 좀 얻고.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 뭐… 그런 게 있어!

아내 아무튼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첫날은 옷 사러 가고. 둘째 날은 둘째 데리고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해봐. 늦게 와도 안 뭐라 할 테니.

결국 그렇게 나의 스케줄은 조정되었다.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나의 ‘방치’되고 싶은 욕구는 접어둬야 하는 개인적인 바람에 불과하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날 둘째를 데리고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에서 사람 구경을 실컷 했다. 아이의 화장실을 찾느라 아이를 안고 지하상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연휴를 그렇게 가족과 보내고, 모두 다 잠든 밤 11시가 되어서야 아내가 잠들었고 겨우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책을 좀 볼까, 오늘 야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볼까, 아니면 어제 하던 게임을 마저 할까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좀 하려고 움직여봤는데 몸속 깊은 곳에서 나른함이 몰려왔다. 잠들어 있는 가족을 보니 뭔가 흐뭇하면서도, 언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보나 하는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남았다. 그렇게 침대에 몸을 맡긴다.

나중에 애들 크고 나면 애들이 아빠 찾던 지금이 그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다. 나는 지금 가족들 속에서 ‘방치’되고 싶다. 다음 연휴는 언제인가 찾아보니 연휴가 없다. 이번 추석은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끝났을 때라 대입 상담 핑계도 못 대고 꼼짝없이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것 같다. 애들이 모두 크면 그때는 좀 ‘방치’될 수 있을까?

부산에서 황정민

(*위 내용은 2015년 6월 5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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