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신중화요리 시대
왕육성·이연복·오용근 셰프가 재현한 60~70년대 인기 중화요리들
1960~70년대 당신이 총무부 직원이었다면? 맛깔스러운 야유회 도시락을 준비하는 중책을 맡았다면? 난감하다. 아마도 그 시절에 살았다면 당신은 바로 규모가 큰 중식당에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당시 600석이 넘는 큰 중식당에는 뒷마당에 닭장이 있었다. 중식당들은 야유회용 통닭튀김 주문을 받아 튀겼다. 막내 요리사는 200마리를 밤새 털을 뽑고 튀겼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최소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이제 맛보기가 어렵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바삭한 튀김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취향, 시간당 더 많은 요리로 돈을 벌고자 했던 주인들의 속내가 삼박자가 맞아 서서히 사라졌다. 보물섬을 찾는 심정으로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맛을 ‘진진’의 왕육성, ‘목란’의 이연복, ‘동보성’의 오용근 등 중식 대가들에게 부탁해 재현했다.

무말랭이짜장면
무말랭이짜장면

무말랭이짜장면

짜장면이야말로 한국인의 디엔에이(DNA)가 박힌 음식이다. 잘게 썬 양파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짜장면에 입술이 검게 변해도 아랑곳 않는다. 그런데 60년대는 양파가 짜장면의 주재료가 아니었다. 58살인 오용근 셰프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면서 말하는 짜장면의 주재료는 무말랭이다. “늙은 호박이나 각종 제철 재료를 쓰기도 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무말랭이”라고 한다. 50~60년대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보관이 편리하고 가격이 쌌던 무말랭이는 짜장면의 맛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조리 과정은 간단하다. 무말랭이를 물에 불렸다가 삶고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볶는다. 물에 불릴 때 특유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식소다를 탄다고 한다. 양파나 파는 아주 소량만 볶아 넣어 향만 배게 했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주재료로 변신했다. 잘 익은 무말랭이는 소스와 버무려져 마치 고기를 씹는 듯한 식감을 준다.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던 아서원에서 부친과 함께 일하면서 실력을 닦은 오 셰프는 짬뽕에 관한 얘기도 덧붙인다. “옛날 짬뽕은 지금처럼 국물이 많지 않고 맵지도 않았다. 파스타처럼 국물이 별로 없고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루이자위
루이자위

루이자위(蘆衣加魚)

지금도 고가인 아스파라거스가 도미를 만나 벨벳 천 같은 부드러운 식감을 선사하는 건강식이다. 왕육성 셰프는 “예전에는 예약이 필수였다. 손님이 코스를 주문하면 요리사가 재량껏 요리 종류를 준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몇 시간이 걸리는 이 음식은 요리사의 필살기였다. ‘도미에 아스파라거스를 입혔다’는 뜻인 루이자위는 한번 찐 도미 머리 안을 벌려서 볶은 새우, 버섯, 죽순과 갖은 해산물을 채워 넣고 또 찐 뒤 아스파라거스를 썰어 볶은 소스를 붓는 섬세한 요리다. “그 당시에는 아스파라거스 통조림을 썼다”면서 고급 중식당에서도 흔하지 않은 음식이었다고 왕 셰프는 말한다. 60~70년대 호화로운 중식당들은 생선을 주로 찌고 삶아 조리했다.

닭장 있던 중식당의 통닭튀김
튀기고 찌고 또 찌는
루이자위·궈사오지· 몐바오샤…
‘빨리빨리’ 문화에 밀려 사라져

쓰시완쯔
쓰시완쯔

쓰시완쯔(四喜丸子)

잘 다진 돼지고기, 달걀, 전분, 새우살, 해삼, 전복 등을 동그랗게 빚어 기름에 튀긴 요리다. ‘완쯔’를 빚는 왕육성 셰프의 손길이 빠르다. 그는 “회갑연이나 잔칫날 빠지지 않는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4가지 기쁨’이라는 뜻의 이 음식은 유래가 있다고 말을 이어간다. 당나라 때 장원급제한 한 수재가 황제의 딸과 혼인까지 하게 됐는데 마침 고향에서 큰 홍수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모님 걱정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결혼식 당일 무사한 부모를 만나자 매우 기뻐서 주방장에게 일러 경사스러운 음식을 만들라고 했다. 장원급제, 어여쁜 아내와의 결혼, 왕의 사위가 된 것, 부모를 만난 일, 이 4가지의 기쁨을 담은 음식이라고 한다. 차근차근 음식에 밴 의미를 설명해주는 왕 셰프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다. 그는 “장례식 때 식탁에 내면 난리가 나는 음식”이라면서 장난스럽게 웃는다.

궈사오지(鍋燒鷄)

가난했던 60년대에 닭요리는 귀한 음식이었다. 궈사오지는 차가운 닭고기 냉채에 온기를 불어넣은 음식이다. 왕육성 셰프는 “60년대는 손님이 오면 닭고기 냉채를 따스하게 쪄서 내갔다”며 “중국음식은 본래 뜨끈하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말한다. 조리법도, 들어가는 양념들도 복잡하고 섬세하다. 생강, 소금 등을 발라 향과 간이 배게 한다. 끓여 갈색으로 변한 설탕물을 바르고 튀긴다. 닭 뱃속에는 파, 생강, 팔각 등이 들어간다. 왕 셰프가 완성된 궈사오지를 가져오면서 “예전에는 닭 머리도 접시에 올렸다”고 말한다. 그가 잘 볶은 닭 내장과 닭과 돼지를 끓여 만든 걸쭉한 육수 소스를 뿌린다.

몐바오샤
몐바오샤

몐바오샤(面包)

다진 새우살을 손가락 두마디만한 식빵 사이에 넣고 튀기는 요리다. 언뜻 보면 매우 간단해 보이는 이 요리는 요리사가 불의 신이 된 양 열기를 잘 조절해야만 제맛이 난다. 새우살과 빵은 튀김 온도가 다르다. 이 둘을 동시에 익히는 일은 묘기에 가깝다. 이연복 셰프는 웍(중식 프라이팬)에 딱 붙어서 여러번 떠오르는 몐바오샤를 뒤집으면서 “도톰할수록 맛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중국인들이 주식처럼 먹는 빵이 재료였다. 주방의 일꾼들이 끼니를 해결하고자 남은 빵과 새우를 튀겨 먹다가 생겨난 음식이라고 한다. 일식집 직원들이 남은 재료로 만들어 먹어 탄생한 꽁치김밥처럼 일하는 이들의 음식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9월9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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