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c4413da8cf0276472a6263766d4f5f.



평범한 샐러리맨 트루먼 버뱅크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전국에 생중계되는 상황을 다룬 영화 <트루먼 쇼>를 얼마 전 다시 봤다. 10여년 전 개봉 당시 기발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참 재밌게 봤더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트루먼의 가짜 가족과 친구들, 주변 환경, 전세계인의 놀잇감이 된 트루먼의 일상을 보고 있자니 씁쓸했다. 트루먼의 선택과 상관없이 ‘운명처럼 그렇게 정해진’ 현실. 이러한 기막힌 현실조차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고, 최소한의 인격조차도 존중받을 수 없었던 트루먼의 굴곡진 삶이 안쓰러웠다고 할까!

10여년 전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건 현실에서 ‘트루먼 쇼’가 재연될 리 만무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음이 불편한 건 그것이 ‘착각’임을 알고 난 뒤라서다. ‘트루먼’은 실제 존재한다. 이 땅의 보육교사와 아이들이 바로 ‘트루먼’이다. 서울시가 1년여 전부터 서울형 어린이집 아이피티브이(IPTV) 생중계 시스템을 도입중인데, 교사와 아이들은 ‘트루먼’과 다를 게 없다. 어린이집이 실시간으로 학부모에게 공개되는 탓에 보육교사와 아이들은 수시로 학부모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현재 서울형 어린이집 가운데 25%인 500여곳에 아이피티브이가 설치됐고, 점차 증가 추세다.



이 시스템 속에서 교사와 아이들의 인권, ‘자아’로서의 선택권은 없다. 약자인 탓에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엄마들은 또다른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2시간 남짓이라고 하나, 생중계 도중 자녀의 얼굴과 이름, 신체적 특징, 독특한 말과 행동, 가정환경과 장애 유무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여과 없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장애 또는 특정 질환이 있거나,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산만하거나 공격성향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생중계가 전혀 반갑지 않다. 자녀가 ‘왕따’, ‘입소 거부’ 등의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 애가 몇 달째 대기중이었던 서울형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됐어. 그런데 보육실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포기했어. 다른 엄마들이 또래보다 지적 수준이 낮은 내 아들하고 놀지 말라고 해서 애가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 되더라고.” 한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고민은 이런 현실을 방증한다.



서울시는 이 사업 도입 취지로 ‘안심보육’을 내세웠다. 그런데 어린이집 생중계 영상만 보고 엄마들이 과연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보내게 될까? 되레 아이와 교사를 감시하는 체계가 덜 교육적인 것은 아닌지, 교사들이 받는 생중계 스트레스가 교사의 열정과 보육의 질을 하락시키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어린이집 아이피티브이 생중계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



엄마들이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국공립 등 국가기관에서 인증한 곳이냐, 보육비가 저렴하냐, 보육시간과 시설환경이 어떠냐 같은 것들이다. ‘안심보육’은 인터넷 생중계가 아니더라도 국공립 어린이집과 교사의 확충,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 강화, 교사-학부모간 소통과 신뢰 구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한민국, 아니 적어도 서울은 자아도 채 형성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감시하는 ‘빅브러더’ 사회로 전락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자신을 돌보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반목’,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통제’와 ‘간섭’의 정당성을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참 슬프다.



김미영 스페셜콘텐츠부 기자 kimmy@hani.co.kr



덧말. 어떤 분이 이런 지적을 하셨다. “어린이집 생중계는 안심보육이라는 미명 하에 학부모들에게 어린이집 관리책임까지 떠넘기는 전시, 탁상행정의 일환이 아닐까요? 단순히 모니터를 보는 존재로 학부모들의 역할을 수동적으로 축소시키는 것 또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요?” 그렇다. 이분의 지적도 역시 맞다. 인권침해나 개인정보의 공개 문제뿐 아니라 부모의 역할을 제한 또는 규정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4 딸한테 ‘빼빼로데이’가 뭔지 아냐고 물었더니…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1-11-10 17301
13 [자유글] "우리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imagefile wonibros 2011-10-25 11245
12 [자유글] 유치원비 5년 동안 36%나 올라…학부모 ‘허리 휜다’ imagefile babytree 2011-07-19 16739
11 [나들이] 17일 공동육아·대안교육 잔치 열린다 imagefile babytree 2010-10-12 16197
10 [직장맘] 어린이집 수족구에 비상! 우리집도... imagefile yahori 2010-07-14 27221
9 [직장맘] 모처럼 일찍 온 신랑, 적응 되요? imagefile js503 2010-07-13 12876
» [자유글] [한겨레프리즘] 아이의 은밀한 사생활 생중계 imagefile 김미영 2010-06-23 11510
7 [직장맘] 육아 짜증 처방은 아이 imagefile yahori 2010-06-17 13012
6 [자유글] 어린이집 ‘IPTV 생중계’ 찬성하세요? imagefile 김미영 2010-06-15 13001
5 [자유글] [한겨레프리즘] 엄마라서 불행해요? imagefile 김미영 2010-05-26 12625
4 [자유글] 교재없는 어린이집…‘자연과 자유’가 교재 [한겨레_5월5일자] imagefile babytree 2010-05-10 16228
3 [자유글] “아이와 함께 출퇴근” 기업 어린이집 늘어 [한겨레 3월31일자] imagefile babytree 2010-04-26 12833
2 [자유글] 국격 높아진다는데 복지수준 ‘바닥’ [한겨레 3월15일자] imagefile babytree 2010-04-26 15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