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요리
서울에서 스웨덴 식당 ‘헴라갓’ 운영하며 제2의 인생 사는 다니엘 윅스트란드-오수진 부부
서울 회현동 레스토랑 ‘헴라갓’(HEMLAGAT·‘집에서 만든’이란 뜻)의 문을 열자 선반에 놓인 빨간색 목각인형이 눈에 띈다. 어딘가 낯이 익다. 한동안 트렌드로 몰아쳤던 북유럽풍 소품이다. 한때 그릇, 가구,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까지 스웨덴식이 유행했다.

다니엘 윅스트란드(왼쪽)와 아내 오수진씨. 사진 박미향 기자
다니엘 윅스트란드(왼쪽)와 아내 오수진씨. 사진 박미향 기자

남산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는 레스토랑 헴라갓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스웨덴 음식을 파는 곳이다. 한국 사회가 ‘우리도 스웨덴처럼!’을 외칠 때 스웨덴 사람 다니엘 윅스트란드(44)와 그의 부인 오수진(44)씨는 서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공기도 좋고, 교통도 편하고, 사람들이 활달하고 재밌어요.” 서울에 대한 다니엘의 인상은 칭찬 일색이다. 이들 부부는 중국 청두에서 5년간 스웨덴식 카페 ‘카페스투간’(KAFFESTUGAN·커피오두막이라는 뜻)을 운영하다가 2014년 6월 한국으로 건너와 헴라갓을 열었다. 다니엘은 중국보다 서울의 기후를 마음에 들어 했다. 다니엘이 주방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소란스럽게 요리를 하는 동안 수진씨는 커피를 드립 기계에서 내린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먹거리가 삶의 전부가 될 줄은 미처 몰랐던 이들이 서울에 둥지를 튼 이유는 뭘까?

“‘좋아하는 일을 하자. 같이 지내는 날이 많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중국에서 카페를 열었고,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한국 정착을 결심한 이유는 부모님 연세가 많으셔서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 때문이죠.” 수진씨가 향긋한 스웨덴 왕실 인증 커피 뢰베리스(Lofbergs)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의 대답은 언뜻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 뒤로 우여곡절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이들 부부는 본래 중국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비즈니스맨이었다. 스웨덴 남쪽 지방인 스코네에서 태어난 다니엘은 중국에 진출한 스웨덴 기업에서 근무했다.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수진씨는 한국의 아이티(IT)업계에서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한 기업에서 제품 마케팅 업무를 했다. 1년간 중국 오지여행도 다닌 다니엘은 전형적인 스웨덴 사람이다. 그는 경쟁보다는 조화, 패스트푸드 같은 삶보다는 진지한 성찰이 동반되는 인생을 추구해왔다. 그런 그가 아내 수진씨를 변화시켰다.

“다니엘을 만나고 ‘가족’, ‘현재 삶의 소중함’ 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수진씨는 “두 사람만 사는 듯한, 섬 같은 우리의 조용한 일상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수진씨는 한국의 경쟁 시스템에 익숙한 이였다. 승진도 빨랐다.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빠져나올 필요를 못 느꼈던 경쟁의 수레바퀴에서 그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다. 엉킨 미로를 빠져나온 사람만이 아는 여유와 관조가 그의 얼굴에 흘렀다. 다니엘은 비즈니스보다 여행을, 여행보다는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남편은, 2003년 처음 만나 그저 친구 사이였던 내게 생일 선물로 오븐을 달라고 할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수진씨는 말했다.

2008년 결혼한 뒤 바쁜 일상에 쫓겨 얼굴도 거의 못 보는 생활이 지속되고, 세계 경제를 강타한 리먼 사태와 당시 중국의 강화된 노동법으로 인해 오히려 기업들이 편법으로 해고를 자행하는 것을 본 이들 부부는 ‘돈 못 벌어도 즐거워지는 일을 하자’고 결심하고 사표를 던졌다. 수진씨는 “이제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붙어 있는데, 정말 좋다”고 했다. 올해로 결혼 9년차를 맞은 이들 부부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단다.

우리네 갈비찜과 닮은 스웨덴 요리 칼롭스. 사진 박미향 기자
우리네 갈비찜과 닮은 스웨덴 요리 칼롭스. 사진 박미향 기자

수진씨 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부지런히 주방에서 땀 흘린 다니엘이 두 가지 요리를 들고 나온다. ‘칼롭스’(Kalops)와 ‘실탈리크’(Silltalrik)이다. 칼롭스는 스웨덴식 쇠고기찜으로 언뜻 보면 우리네 갈비찜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니엘은 “섭씨 100도에서 2시간에서 2시간30분 정도 푹 끓여 만든다. 처음 한국 와서 갈비찜 보고 칼롭스와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리법으로 만들었다는 그는 “어머니의 손길과 추억이 담긴 맛”이라고 자랑했다.

북유럽 전통술 스납스. 사진 박미향 기자
북유럽 전통술 스납스. 사진 박미향 기자

칼롭스는 맛과 모양이 순박했다. 세련된 북유럽풍 디자인의 요소는 없었다. 헴라갓은 칼롭스처럼 소박하고 순박한 스웨덴 가정식을 추구한다. 가정식이라지만 북유럽의 전통술 ‘스납스’(Snaps)도 있다. 봄이 오면 스웨덴식 타파스(간단한 안줏거리)와 함께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는 음주운전과 관련해 재미난 것이 있다. 술을 마시고도 운전이 가능한 술이 있다. 스웨덴은 알코올 도수에 따라 맥주를 4가지로 나눈다. 그중 가장 도수가 낮은 1.8%의 맥주에 한해 음주운전이 가능하다.

새콤한 청어절임 등이 한 접시에 나오는 요리 실탈리크. 사진 박미향 기자
새콤한 청어절임 등이 한 접시에 나오는 요리 실탈리크. 사진 박미향 기자

실탈리크는 작은 도마에 청어절임과 삶은 달걀을 같이 내오는 메뉴다. 새콤한 청어절임은 달걀과 같이 먹어야 맛있다. 직접 구운 헴라갓의 귀리빵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감이 간다. 화려하고 감탄사를 절로 터뜨리게 만드는 맛을 이곳에서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저 봄바람 부는 강변에서 가족과 나눠 먹는 꾸밈없고 순한 밥상이다. 조금 입에 안 맞아도 문제가 안 된다. 가족의 밥상은 그런 것이다.

덴마크의 유명한 레스토랑 ‘노마’(Noma)를 중심으로 각광받는 ‘노르딕 퀴진’(북유럽식 조리법을 활용한 건강요리)을 지향하느냐는 질문에 다니엘은 단호하게 “노!”를 외쳤다. 수진씨는 “노마는 실험적인 음식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우리는 소박하고 편안한 스웨덴 전통식을 사랑하고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선보였다면 3월부터는 더 전통식에 가까운 맛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외국에선 일상처럼 된 ‘푸디컬처’(식도락가들이 형성한 음식문화)가 한국에서도 점차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맛을 탐험하는 게 특징인 푸디컬처에 헴라갓은 닿아 있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스웨덴을 여행할 한국인들을 위해 한 가지를 조언했다. “스웨덴식 미트볼과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매시트포테이토를 꼭 경험하시길!”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스웨덴 음식의 역사 및 간단음식 조리법

남북으로 길게 뻗은 스웨덴은 20세기 이전까지 가난을 면치 못한 나라였다. 척박한 땅에선 신선한 식재료는 고사하고 끼니를 때울 먹거리도 부족했다. 그런 환경 때문에 스웨덴은 청어절임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과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다 쓸 수 있는 요리가 발달했다. 감자, 고기, 빵이 주식이었다고는 하나 지역별로 조금씩 달랐다. 북부는 순록 등의 고기를, 서해안 지방은 풍부한 해산물을 즐겼다. 요즘은 스웨덴에서 누구나 먹는 빵 ‘림파’(Limpa)도 20세기 전에는 남부지방에서만 먹었다. 중부에선 밀을 빻기에 충분한 물을 봄과 가을에만 얻을 수 있어서 제대로 된 빵을 1년 내내 즐길 수 없었다. 북부는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었다. 추운 날씨로 효모가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성장한 지금의 스웨덴은 건강하면서도 풍요로운 먹거리를 자랑한다.


 헴라갓 주인 부부가 알려준 간편한 스웨덴 요리, 비프 알 라 린드스트롬(2인분)

스웨덴 스타일의 햄버그스테이크 요리로, 삶은 감자나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기호에 따라 허브를 섞은 버터를 얹어 먹기도 한다.

재료: 양파 1개 다진 것, 잘게 다진 케이퍼 30㎖, 잘게 다진 비트 피클 30㎖, 잘게 다진 대파 30㎖, 다진 쇠고기 500g, 달걀노른자 4개, 우스터소스 15㎖, 소금 5㎖, 후춧가루 10㎖

만들기: 1. 양파, 케이퍼, 비트, 대파를 섞는다. 2. 1에 달걀노른자와 쇠고기를 섞은 뒤 우스터소스와 소금, 후추를 섞는다. 쇠고기는 체에 놓고 약 30분간 상온에 놔두는 것이 좋으나 시간이 없으면 그냥 사용한다. 3. 잘 섞은 뒤 손으로 버거 패티를 만든다.(150g 정도 크기) 4. 예열한 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약불에서 익힌다. 기름을 버터로 대체해도 되나 이 경우 예열도 저온에서 한다. 5. 삶은 감자나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피클이 없으면 비트루트를 삶은 뒤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 식초 설탕에 약 30분간 절인 뒤 다져 사용한다.

정리 박미향 기자

(*위 내용은 2016년 3월2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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