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요리
마장축산물시장에 둥지 튼 카페풍 정육점 ‘본앤브레드’와 빈티지 가구 소품 전시장 ‘사보’
‘멀티컬처 아티스트’ 사보(본명 임상봉)
‘멀티컬처 아티스트’ 사보(본명 임상봉)
정상원(33) ‘한우고향’ 대표
정상원(33) ‘한우고향’ 대표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60~70%를 담당하는 ‘마장축산물시장’은 2002년 지붕을 씌우고 전기시설과 하수관을 정비해 현대화했다. 그래도 처음 구경온 이가 선뜻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육점 밖 도로까지 번지는 붉은 조명은 ‘도축’이나 ‘피’ 같은 단어를 연상시킨다. 최근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이들이 나타났다. ‘본앤브레드’(Born & Bred) 주인인 정상원(33) ‘한우고향’ 대표와 ‘사보’를 연 ‘멀티컬처 아티스트’ 사보(본명 임상봉·48)가 그들이다. 지난달 22일과 29일에 정씨를, 28일에 사보를 만났다.

본앤브레드
본앤브레드
본앤브레드
본앤브레드

세련된 카페풍 정육점, 본앤브레드

“안심은 ‘레어’(rare. 고기를 겉은 살짝, 속은 육즙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정도로 굽는 것)로, 채끝살은 ‘미디엄 웰던’(medium well-done. 가운데 부분만 붉은색이 보일 정도로 익힌 것)으로 굽는 게 좋다.” 정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 이들은 지난달 29일 저녁 7시에 본앤브레드를 찾은 30대 부부 3쌍이다. 한달 전에 문 연 이곳은 독특한 ‘한우 오마카세’를 한다는 소문이 퍼져 10월말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고급 스시집에서 셰프의 주관에 따라 메뉴를 주는 방식을 말한다.

정씨는 메뉴를 매일 짠다. 이날은 참숯에 구운 안심, 등심, 특수부위 등과 직접 조리한 육회, 샐러드, 쌀국수를 냈다. 가격은 다소 비싼 1인당 15만원이지만 호기심 강한 식도락가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200㎡(60평) 규모의 본앤브레드는 마장축산물시장의 정육점이다. ‘나고 자랐다’의 뜻의 영문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여느 정육점과는 달리 별난 구석이 있다. 빨간 불빛 찬란한 ○○축산, ○○정육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청담동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나 호텔 식당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세련됐다. 식탁 너머 와인과 위스키, 고급 맥주가 즐비하고 붉은 정육점 조명 대신 은은한 샹들리에를 달았다. 그는 “우리 정육점은 똑같은 조명과 판매대가 있는,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형태다”며 “여행을 하면서 외국의 카페 같은 멋있는 정육점이 왜 우리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고정된 생각을 깨뜨려야 마장동 한우의 우수성을 더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씨는 축산시장 시세에 맞춰 최고 등급의 한우 안심을 100g당 8000원, 등심을 8500원에 판다. 요즘 유행하는 ‘웨트 에이징’(wet-aging. 습식숙성)과 ‘드라이 에이징’(dry-aging. 건식숙성) 한 고기도 판매목록에 있다. 그는 “한우는 그 자체만으로 감칠맛이 좋아 바로 구워 먹는 것이 최상이지만 드라이 에이징 했을 때 맛의 변화도 궁금해 연구한다”며 “등급이 낮은 한우는 드라이 에이징 한 것이 더 맛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자신한다. “20여년 전부터 진공 포장한 한우를 냉장보관 해 팔았다. 고기의 수분이 유지되는 웨트 에이징과 다를 바 없다. 냉장시설이 부족하던 1970년대, 쇠고기가 썩으면 부위를 잘라내고 팔았는데 요즘의 드라이 에이징인 셈이다.”

고기 부위별로 맛보는
‘본앤브레드’의 한우 메뉴
10월 말까지 예약 끝나
한남동서 이사 온 ‘사보’
“생활 속 공간에 자리잡은 작품을
손님들이 경험했으면”

현재 그는 1978년 한우유통업체 한우고향을 설립한 부친의 뒤를 이어 대표를 맡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부친의 직업이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말도 못 꺼냈던 그는 군대를 마치고 “가업을 이어라”는 부친의 강한 어조에 승복해 지난 8년간 출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식재료를 공급하는 이가 실력있는 요리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식 얘기를 해주는 스시집 셰프가 존경스러웠는데 그들 뒤에는 나와 같은 재료를 공급하고 손질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최고의 직업’을 가진 이로 자부심을 가지고 마장동의 밝은 미래를 이끌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사보
사보
사보
사보

와인 파는 빈티지 전시장, 사보

“축산시장 고기로 안주를 만들고 제가 좋아하는 와인을 준비해둘 거예요.” 사보가 생기발랄한 미소와 특유의 가냘픈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손을 잡아끌어, 한달 반 전에 공사를 시작해 이제 마무리 단계인 그의 작업장 겸 전시공간이자 카페인 ‘사보’로 안내한다. ‘마장동 778-13번지’. 걸으면 마장축산물시장까지 5분 거리다.

그가 둥지를 한남동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유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공간에는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을 계승한 빈티지 가구, 붙박이 부엌 찬장, 유명 건축가인 에곤 아이어만의 의자, 1950년대 거울, 라디오 등 200~300여점의 작품이 빼곡하다. 고급스러운 화랑가 인근의 카페가 제격일 정도로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작품들로, 1919년~1970년대 독일 등지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창고에 둔 작품까지 합치면 2000점이 넘는다. “1919년에 바우하우스(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조형학교)가 생겼다. 그때부터 1970년대 말까지를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라고 한다. 옛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발사(1957년),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1969년) 등으로 사람들은 우주에 눈을 뜨고 더 넓은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인류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시대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학에서 유학하던 당시 ‘스페이스 에이지’로 명명되는 시절의 바우하우스 양식에 폭 빠졌다. 독일 전역의 벼룩시장을 뒤져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돈이 떨어지면 자신의 작품을 맞바꿔서라도 손에 넣었다. “그때가 1990년대 중반인데, 빈티지 바람이 불기 한참 전이어서 수집이 수월했다.” 유럽은 2000년대 초반,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빈티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소장품이 미술관계자들에게 소문이 나 전시를 여러 번 했다. “수집가는 전시를 주업으로 하는 이가 아니지만 의미가 있었다”며 “전시를 보고 수집품에 매료되어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수집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등으로 불린다. 그는 이 이력들을 김밥처럼 돌돌 말아 스스로를 ‘멀티컬처 아티스트’로 정의한다.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전시만도 8회 이상 한 예술가가 마장동을 선택한 이유는 뜻밖에 싱겁다.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녔다. 울적한 기분이 들 때마다 찾아오는데 한달 반 전, 텅 빈 이 공간을 발견하고 바로 계약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큰 창문 밖에는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장미꽃이 만발해 있다. “중학생일 때 아침마다 큼큼한 고기 냄새를 맡으면서 등교했다. 시장 앞 공터에는 회충약을 팔러 온 떠돌이 약장수가 우리들의 놀이선생이었다.” 그의 소망은 “미술관을 떠나서 생활 속 공간에 자리잡은 작품을 손님들이 직접 경험하고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6월 3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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