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의학]"간이 크다"

조회수 6612 추천수 0 2011.02.15 10:43:36

한때 ‘간 큰 남자’라는 유머가 유행하는 때가 있었다. 부부관계에서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는 겁없는(?) 남자를 ‘간 큰 남자’라고 풍자했다. 집안일을 돕지 않거나 가사분담을 하지 않는 남자 역시 ‘간 큰 남자’라 칭한다. 하지만 원래 ‘간 큰 남자’는 “겁이 없고, 배포가 크다”는 의미로 쓰였다. 예부터 조상들은 용감하고 대범한 경우 오장육부 중에서 간이라는 장기를 이용해 표현해왔다. 부정적 의미인 ‘만용’이나 ‘객기’를 “간이 부었다”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라고 과장해 표현하기도 했다.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간은 장군지관이라고 해서 장군이나 영웅에 비유된다. 즉, 간이 용기와 결단력을 주관한다고 본다. 비슷한 말로 ‘대담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쓰인 ‘담’(쓸개)은 간과 짝이 되는 장부다. ‘담’에서 결단이 나온다고 본 것이다. 사리에 맞지 않고 줏대없이 행동하는 이에게 ‘쓸개 빠진 놈’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결단을 주관하는 담의 특성 때문이다.



간과 담은 오행 중에서 나무의 기운을 가진다. 봄날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활력과 힘을 만들어주는 역할과 추진력을 의미한다. 경락학적으로는 엄지발가락-생식기-간으로 흐르는 족궐음간경이 튼튼한 사람이 용기와 결단력이 있고 시원시원하며 두둑한 배짱을 지녔다. 군가를 부르면서 옆구리에 손을 얹고 부른다던지, 싸우거나 공격적인 태세를 할 때 옆구리에 손을 얹는 것은 이 족궐음간경과 표리관계에 있으며, 옆구리 쪽을 흘러 지나가는 족소양담경의 에너지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하나의 장부를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전신의 기와 조직, 세포는 물론 정신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능동적 활동을 포괄하는 계통적 체계로 본다. 한의학에서 간은 몸의 모든 근육이 운동할 수 있는 에너지인 혈을 만들고 정신활동의 요소인 혼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간기가 부족하면 조그만 일에도 두려워하고 겁내게 되고, 간기가 충만하면 두려움이 없으며, 담기가 좋으면 주눅들지 않고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볼 때 죽은 줄 알았던 살인마가 다시 벌떡 일어나는 순간, 어두운 골목길 구석에서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오면 간담이 서늘함을 느낀다. ‘간이 크다’와는 반대로 이렇게 크게 놀라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흔히 ‘간이 콩알 만해졌다’, ‘간 떨어질 뻔했다’는 표현을 쓴다. 황제내경에서는 간에 혼(魂)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는데 간이 떨어질 뻔했다는 것은 혼이 나가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많이 놀랬다는 말이다. 또한 놀라거나 무서움을 당하면 담이 상한다고 보는데, 얼굴이 퍼렇고 희게 되는 것은 담이 무서움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을 내서 기가 거슬러 올라가 내려오지 않으면 간을 손상시킨다고 했다. 꽁하고 쩨쩨한 마음, 분노의 감정은 간을 상하게 한다. 새해에는 장군과 같은 결단력으로 일을 추진하는 동시에 느긋하게 생각하는 여유를 갖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라본다.



이창열/인의한의원(부평점) 원장·청년한의사회 학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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