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씻지도 먹지도 배우지도… 악취·파리떼 날리는 집에서 보듬어줄 품도 없이 또 하루 4살 아들 ‘성장장애’ 진단에 치료커녕 단체 도움도 거부 “때리지도 않는데 웬 학대냐” 올해 4살인 승철(가명)이는 아직도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버바, 어바이…으앙~”이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과 울음으로 간신히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키는 60~70㎝ 남짓에, 몸무게도 10㎏이 채 안 되고, 아직 용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언뜻 보기엔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일 뿐이다. 어디서 다쳤는지 이마가 깨지고 앞니가 부러진 승철이는 콧물이 뒤범벅된 채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다 낯선 사람을 보자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보챘다. 승미와 승철이 남매는 전북의 한 농촌 마을에 산다. 30여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어린아이는 승미와 승철이밖에 없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지난 21일 남매의 집을 찾았을 때,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더러운 흙집에는 때아닌 파리가 들끓었다. 반찬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냉장고에는 아이 키우는 집에 흔한 우유 한 병조차 없었다. 남매의 아버지 이병석(46·가명)씨는 “정신지체가 있는 아내가 승철이를 낳고 가출한 뒤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느라 힘들다”고 했다. 이씨는 “근처에 사는 친척이 아이들을 돌봐준다”고 했지만, 남매는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된 듯 보였다. 몇 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친데다 팔마저 불편하다는 이씨는 “아이들 앞으로 다달이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라며 “가끔 이웃의 논·밭일을 거들어주고 쌀을 얻어다 먹는다”고 했다. “승철이가 벌써 4살인데, 왜 말을 못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아이가 늦돼서 그러지 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러나 승철이는 지난해 10월 이미 ‘성장장애’(사립체 질환)라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이씨는 “애들이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아동보호전문기관 굿네이버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승철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지만, 이씨는 “고구마 캐는 이웃을 돕기로 했다”는 따위 핑계를 대며 4번씩이나 승철이의 진료예약을 펑크내버렸다. “아이들을 좀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보호시설에 맡길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아버지가 있는데, 왜 아이들을 떼어놓느냐”며 “사정이 좀 어려워 그렇지, 아이들을 굶기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1년 반 전쯤 이웃 주민의 제보로 승미·승철이 남매의 방임 사실을 파악했다는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아이들이 전형적인 ‘방임학대’를 당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도 아닌데 웬 학대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임학대를 인정하지 못하니 개선책을 내놔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선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결국 또다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승미는 “나도 예쁜 언니 따라서 서울 가면 안 돼?”라고 속삭이듯 물었다. “동생은 어쩌고?” 기자가 되묻자 승미는 “동생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며 “서울에 가면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먹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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