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마트나 문구점에 가면 
예상치 않은 과자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가 있다.
크게 비싸지도 않은데다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아이의 욕구를 무시하는 것 같아 사줘야 하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론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사주면 습관이 되지 않을까, 
혹은 돈을 너무 쉽게 생각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참 난감하다.
이럴 땐 그때 그때 달라지는 부모의 기분이 아니라 
어떤 일관된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이런 장면은 
소비와 용돈 같은 경제 관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읽은 육아나 교육, 훈육 문제를 다룬 책들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게 좋은 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육아나 교육서를 보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건 
그런 방법이나 기술을 다룬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때가 
가장 뭉클했다.
부모로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건 방법이 아니라 태도를 되새기게 될 때였다.
그런 면에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속에 배어나는 태도이다."라는
하임 G.기너트의 말을 좋아한다.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이다.
그런데 사랑의 태도가 좋은 방법, 혹은 기술과 함께 할 때 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인 내게 육아는 아주 낯선 영역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교육과 육아 모두 아이의 성장을 돕는 일이고,
교육학이나 심리학의 많은 부분이 교육과 육아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돈이나 소비와 관련된 경제 교육 문제는 좀 달랐다.
'부자 아빠'와 '재테크'의 시대에 
나는 '재테크'의 관점이 아닌 살림살이의 관점에서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관점과 방법 면에서 부모인 나부터 배울 필요가 있었다.
아이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대하고 싶은데, 용돈이나 소비 문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
그런데 때마침 <돈에 밝은 아이>(제윤경, 한겨레출판)라는 책이 나온 걸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돈에 밝은 아이.JPG
지금 다시 책을 꺼내어 펼쳐 보니 그때가 2010년이었다.
이 책 덕분에 아이가 마트에서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외식으로 V 레스토랑 같은 데를 가자고 떼 쓸 때
일관된 원칙으로 대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돈 밝히는 아이가 아닌 돈에 밝은 아이로 키워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우리 가정에서 적용해온 경제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1. 용돈은 심부름의 대가로 주지 않고, 매주 일정 금액을 준다.
심부름 같은 아이의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용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물질적 보상은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심부름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도와줌으로써 뿌듯함을 느낀다면 
그게 가장 좋은 성취 동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심부름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때부터 뿌듯함의 자리에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자랄 뿐이다.

용돈을 심부름의 대가로 주지 않고 매주 정해진 금액만큼 주는 또 다른 이유는
아이가 저축 습관을 갖게 하고, 자신의 지출을 예측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곱 살인 신영이와 네 살 선율이는 매주 토요일 500원씩 용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어린이 비타민이나 색종이를 사기도 하고,
만 원 정도 하는 스티커 그림책을 사기도 했다.
특히 스티커 그림책을 사기 전에는 만 원으로 그 책 한 권을 살지,
아껴두었다가 색종이를 더 많이 살지 고민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용돈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또 한 번은 가족 여행을 갈 때 돈이 많이 든다고 하자
아이들이 각각 오천 원씩 내겠다고 해서 아이들이 낸 만 원을 여행 경비에 합한 적도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모은 돈으로 가족 여행을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뿌듯해 한다.


2. 장난감이나 문구를 사달라고 하거나 외식하자고 할 때 
아이의 욕구를 무조건 충족시켜주기보다는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는다.
정해진 주기마다 정해진 금액만큼 용돈을 주는 데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갈 일이 있으면 사야 할 물건을 미리 상의해서 적어가는 탓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가끔 그런 일이 생기면 여러 면에서 생각해보도록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준다.

'저게 사고 싶어?
그런데 저 물건은 계획에 없던 거니까 정말 사고 싶으면 신영이, 선율이 용돈으로 사자. 
어떻게 할까?'

'그 레스토랑에 가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들어. 그런데 엄마 아빠는 지금 돈이 충분하지 않아.
그 돈을 벌려면 엄마가 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집에 늦게 오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 식당은 다음에 신영이 생일에 가자.'
(물론 신영이 생일이 되면 반드시 그 레스토랑에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킨다.)

'저 과자가 먹고 싶니?
하지만 저 과자는 지금 집에 비슷한 게 많이 있는데? 집에 있는 걸 다 먹고 나면 그때 사는 게 어때?'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수긍을 하는 편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야 남아 있겠지만, 다음에 하기로 한 약속을 우리 부부가 꼭 지키는 데다
가정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 아이들도 이해를 하고 있어서 잘 받아들인다.


3. 목표를 세워 저축이 즐거운 일이 되게 한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나 친척들로부터 세뱃돈이나 용돈을 받는다.
매주 받는 500원은 저금통에 모아두지만,
명절과 생일에 선물로 받는 돈은 금액이 커서 통장에 저축을 한다.
마침 아이들이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구름빵>에서 은행에 통장을 만들어 저축하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보고 난 뒤 자연스럽게 아이들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 그 돈은 해외 여행 갈 돈으로 쓰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그 뒤론 오천 원 이상 받은 큰 돈은 순순히 엄마나 아빠에게 준다.
자기들 돈을 엄마 아빠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나중에 여행 가기 위한 돈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기 때문이다.



<돈에 밝은 아이>라는 책의 도움을 받아 
우리 아이들의 용돈과 소비에 대한 좋은 방법을 찾은 경험을 떠올리면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속에 배어있는 태도'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 책을 통해 재테크가 아닌 살림살이라는 의미의 경제 교육을 위한 방법들을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그 방법들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합리적이고 행복한 선택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돕기 위해
가정의 재정 문제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결정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고려하면서 용돈 범위 안에서 소비하는 기회를 갖게 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난 부자 아빠는 아니어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아이를 믿음과 사랑의 '태도'로 대하고, 그런 마음과 태도를 잘 표현할 '기술(방법)'을 가진...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628 [책읽는부모]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후기 - 팔자타령 이젠 못하죠^^ [7] 난엄마다 2013-10-10 6199
1627 [자유글] 일본 학교운동회에 울려퍼진 강남스타일! imagefile [4] 윤영희 2013-10-10 9149
1626 [자유글] 유행어..? [6] 분홍구름 2013-10-09 4532
1625 [책읽는부모] 정유정의 소설 <28> 박진감 넘치네 [10] 양선아 2013-10-08 4838
» [책읽는부모] 돈 밝히는 아이 아닌 돈에 밝은 아이로 키우기 imagefile [13] 박상민 2013-10-07 7431
1623 [자유글] 첫 아이 첫 돌을 앞두고 부모님을, 당신들을 떠올립니다. imagefile [8] 안정숙 2013-10-07 4054
1622 [책읽는부모] [어흥어흥 어름치야] 아이 책 후기 imagefile 난엄마다 2013-10-07 4270
1621 [자유글] '넌 특별하단다' 관람 후기 - 첫째와의 특별한 추억만들기 imagefile [2] 난엄마다 2013-10-05 4188
1620 [책읽는부모] [그림책 후기] <와글와글가족!> 루가맘 2013-10-04 4465
1619 [책읽는부모] 그림책<달이네 추석맞이> 후기 입니다.^^ imagefile fjrql 2013-10-03 7870
1618 [책읽는부모] [오늘 만드는 내일의 학교]후기 - 학부모로 살았던 반 년 [5] 난엄마다 2013-10-02 6924
1617 [직장맘] 어느 직장맘의 이중생활 imagefile [8] 해피고럭키 2013-10-01 10398
1616 [자유글] 꼬마 수다쟁이에게 충고란...? [10] 분홍구름 2013-09-30 4470
1615 [가족]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유혹 imagefile [1] 박상민 2013-09-30 12131
1614 [가족] 반전의 묘미~ 여섯 살 아이와의 대화 imagefile [2] 꿈꾸는식물 2013-09-30 6089
1613 [가족] 35년째 지긋지긋하단다…딸아 넌 그렇게 살지 마라 image 베이비트리 2013-09-30 6309
1612 [자유글] 40이 다가오는 연말 [11] 푸르메 2013-09-27 4520
1611 섞으면 예뻐져요 베이비트리 2013-09-26 4184
1610 [자유글] 추석풍경 imagefile [10] 분홍구름 2013-09-25 4861
1609 [가족] 우리집 명절 풍경 imagefile [10] 박상민 2013-09-23 11894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