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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스물한 살, 그가 스무살 때부터 만났다.

연애한 지 만 7년 째 되던 해 봄 결혼을 했고,

새해가 되었으니 올해로 결혼한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그 세월 동안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기복이 심한 굴곡선을 그려왔다.

 

맨 처음, 나는 내 스스로가 유치찬란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에게 집착했다.

하긴,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하루 종일 그의 생각에 정신이 없었고,

어떻하면 그가 나에게 더 안달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보고싶다고, 그립다고, 더 사랑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도도하게, 센 척 하며 기선제압을 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울고 불고 매달리고 질척거리며

그렇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결혼을 한 뒤, 그가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한 뒤 상대방이 변했다고 화를 내는데,

내가 화가 나는 건 바로, 그의 한결같음이었다.

 

여전히 틈만 나면 오락을 했고,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운다거나,

남편으로서 의무 같은 것을 고민해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결혼한 여자'로서 나에게 부과된 모든 일들, 예를 들어

퇴근한 뒤 몇 시간씩 집안 일을 하고,

시댁의 경조사를 챙기는 일들이 무의미해졌다.

나만 희생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다행인 건, 우리가 여행중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텅 빈 황무지가 대부분인 거대한 대륙, 호주를.

몇날 며칠 똑같은 풍경을 보며 계속 달리는 캠핑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드디어 '대화'를 나누었다.

도대체 연애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진짜 우리, 각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는 나의 불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그릇들을 부딪혀가며 큰 소리를 냈던 것이

그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 이유는 또 얼마나 허망한지!

바로, 내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헤어질 뻔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대화'의 힘이었다.

해법치곤 너무 간단해서 허망하기까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많은 요인은

이 대화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 더욱 그렇다.

여자는 남자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남자는 여자가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형경 작가의 <남자를 위하여>, 부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는

남자, 여자 모두가 숙지해두면 좋을 '남자'들의 속성 내지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남자에게 최초의 여자는 엄마라던가,

그래서 헌신적으로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는,

이상화된 엄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던가,

남자에게 남자는 (심지어 아버지조차) 경쟁자라던가,

섹스는 남자들이 모든 감정과 욕구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창구라던가,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는 것 등.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명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오이디푸스 신화가 등장하고,

해외의 심리 상담 사례들을 인용하는 것도

기존의 심리학 책들의 패턴과 비슷하다.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가정, 특히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한사람이 생을 두고 사용하는 생존법과 생의 목표는

대체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성격이란 유아기부터 부모에게 잘 의존하기 위해 만들어 갖는 생존법이다.

정체성의 절반은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생의 목표는 대부분 부모의 꿈이거나 부모가 채워지지 못한 것들을

보상받고자 하는 노력이다"

 

- 남자의 관계 맺기, 86쪽.

"남자들이 그토록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유아기에 받은 애정의 양과 관련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은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고,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며,

심지어 부모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자기가 집안에 필요한 존재인지, 부모에게 유익한 자식인지 거듭 되묻고 확인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부모를 돕는다."

-남자의 관계 맺기, 87쪽.

 

결국 제대로 된 남자, 아니 인간을 길러내는 일은

(대부분) 부모에게 달린 셈이다.

문제라면 아이를 좋은 어른으로 길러내야 할 주체인 부모가

애초부터 '너무도 다른' 남자와 여자의 조합이라는 것.

 

저자가 지적한 대로,

 

"...남녀는 원래 관계 맺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유아기부터 쌓아온 애착, 결핍, 분노, 환상 등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다.

남녀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그 사이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끼어든다.

페니스나, 반대 성의 부모나, 지하 칠층보다 더 깊은 무의식까지.

성적 관계, 그런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열정은

집요하고 격정적으로 반대 성을 추구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

-남자의 열정 사용법, 137쪽.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만난 지 14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싸우고,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 서로 안에 내제된 결핍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것,

그리하여 열심히 대화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

애초에 극과 극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일 테니 말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건,

그가, 우리의 결혼생활이 완벽하리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결핍, 더불어 나의 부족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나는 좀 더 그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안에 내제되어 있던 상처를 보듬어주고

새 살이 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다.

 

"남녀가 사이 좋게 지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각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생존법, 성격의 왜곡된 측면을 알아차려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불편이 해소되고 관계가 개선된다.

자기 마음이나 행동은 볼 줄은 모르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더 태도가

바로 문제의 핵시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더 큰 사회든 똑같은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삶과 변화, 326쪽.

 

그렇다.

우리는 제일 먼저 자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므로.

우리 삶은 결국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므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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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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