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서있는 김훈의 문체는
깊고 넓었지만
늘 한 켠에 무거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하여 즐겨찾지 않았고
애써 외면한 적도 있었다.
최근 다시 김훈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흑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를 믿은 죄로 흑산으로 유배 당한 정약전(정약용의 둘째형)과
조카사위 황사영의 이야기다.
그 가운데 순교자와 배교자, 그리고 백성들의 삶이 촘촘하게 펼쳐져 있다.
짧고 명쾌한 문장은 여전하다.
짧아서 읽혀지지 않을 것 같지만 되려 더 깊게 파고든다.
사실만을 날카롭게 전달한다.
날카로워서 아프지만, 아파서 덜 감정적이다.
아래는 <흑산>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정약현은 책을 읽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고,
붓을 들어서 글을 쓰는 일을 되도록 삼갔다.
정약현은 말을 많이 해서 남을 가르치지 않았고,
스스로 알게 되는 자득의 길을 인도했고,
인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후학들은 거두지 않았다."
"죽음은 바다 위에 널려 있어서 삶이 무상한 만큼 죽음은 유상했고,
그 반대로 말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자들끼리 살아있는 동안 붙어서 살고 번식하는 일은,
그것이 다시 무상하고 또 가혹한 죽음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지라도,
늘 그러한 일이어서 피할 수 없었다.
흑산의 사람들은 붙어서 사는 삶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두 말없이 긍정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