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적은 논에도 있다. 소금물 속에도 미역이 자라는데 멀쩡한 민물에 풀이 없겠나. 올챙이고랭이, 물달개비, 올방개, 알방동사니 등의 논잡초는 낯설겠지만 피 정도는 들어봤겠지. 올망졸망 귀요미송 가사 같은 이름이라고 가볍게 여겼다가는 가을에 씨나락도 못 거두는 사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제초작업은 필수. 그런데 제초제는 치기 싫고 써래질은 체력이 안되고 작년처럼 농활 학생들을 기다리자니 물달개비 이 녀석이 논을 덮게 생겼으니 SOS. 도와줘요 우렁각시.

아쉽게도 나는 유부남이라서 우렁각시를 안방 아닌 논에 모셨다. 우렁각시는 빨래와 밥을 해주는 대신 잡초들을 먹어치울 것이다. 나는 논의 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은 농약 걱정 안해도 되고 우렁이는 우렁우렁 잘도 커서 어느 가을 저녁 술안주가 될 테니 일석삼조.

우렁이를 넣으며 논두렁에 앉아 물 속을 보고 있자니 얕은 물표면에 공기방울처럼 떠오르는 소리들. 올챙이는 올챙올챙, 장구애비는 덕쿵덕쿵, 소금쟁이는 깨갱깽깽, 개구리는 개골개골, 물방개는 방올방올. 우렁이가 느리고 낮은 베이스를 담당하는데 그 모든 소리들을 천천히 조율하며 유영하는 거머리. 작고 낮고 느린 것들이 모여 부르는 필사의 아카펠라. Let it be. Let it be.

하지만 해가 갈수록 논을 그냥 두지 못하는 괴물의 횡포는 커지고 있다. 괴물의 이름은 '인삼'. "논 300평 한 마지기 농사지어야 50만원인데 삼밭 도지주고 30만원 받는게 낫지, 이젠 농사지을 기력이 없어" 어르신들의 논은 그렇게 야금야금 삼밭으로 바뀌는 중. 문제는 인삼이 자라는 6년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농약을 퍼붓는데 그러고나면 도라지 아니고는 어떤 작물도 자라지 못하는 땅이 된다는 점이다. 예비휴지기 1년, 인삼 6년, 도라지 3년. 도합 10년 동안 땅은 농약을 뒤집어 쓴 채 박제된다. 그 동안 지력을 빼앗긴 땅은 껍질만 남은 황무지가 되고.

더 마뜩찮은 건 그렇게 생산된 인삼의 대부분은 홍삼으로 가공되는데 그 홍삼을 가난한 내 이웃들이 먹지는 않는다는 점. 6년 동안 돈이 땅에 묶이는 인삼농사는 결국 자본의 농사이고 땅을 죽이며 얻은 생산물의 소비자도 결국은 '가진' 사람들. 새삼스러울거야 없지만 농촌은 이미 '資本天下之大本'이 된지 오래다. '大本'을 요새 누가 알아줘. '資本'이 최고지.

가난한데다 삐딱하기까지해서 삼밭만 보면 심사가 사나워지는데 어쩌나, 이 논 주인이 내년에 삼밭 도지 준다는 얘기가 있던데. 부디 뜬소문이길. Let it be. Please. Let it be.

- 농부 통신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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