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야 고마워.

자유글 조회수 3758 추천수 0 2014.07.09 22:03:16

비 온다. 농번기는 끝났다지만 씨를 뿌린 뒤의 작물은 "탕!" 한 뒤의 운동회 주자 같이 일제히 결실을 향해 달리는 고로, 먼저 달리는 놈, 넘어져 무릎 깨진 놈, 벗겨진 신발을 들고 엄마 찾아 우는 놈 할 것 없이 작물마다 뒤따라가며 토닥거려주고 엉덩이 두드려줘야 추수를 기대할 수 있다. 애정부족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건 사람이나 작물이나 마찬가지. 아들래미 필통 형광펜 속에 펜심 대신 담배가 들었는지 살피는 일이나 고추잎 뒷면 먼지같은 응애벌레를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 일이나 매일반. '비뚤어질 테다!'의 위력을 셀프로 겪어 아는 처지여서 7월 땡볕도 싫다 못하는데.

 

비가 오신다. 어머니는 늘 '비님'이라시지. 장마라는데 비도 없고 기껏 오는 비라야 소나기 삼형제. 맏이가 급하게 성질 부리고 가면 둘째와 셋째는 '형아! 같이가' 허겁지겁 따라가느라 실속없이 분주하기만 하지. 비다운 비 안온 지 벌써 두달. 고추는 가물어 꽃이 떨어지고 오이도 껍질이 두꺼운데 그 와중에 마른 땅 좋아하는 참깨만 기세등등. 참깨 좋자고 서른 몇가지 작물들 오갈 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고마우셔라, 너구리님. 비록 태풍 바람에 쓰러질까 새벽 4시부터 고추 지주대에 줄을 매고 줄기를 모아주느라 체력은 진작 고갈되었지만. 감사하여라, 바람은 고만고만하고 차분차분 비가 온다. 수수를 솎다 돌아와 마루에 앉았노라니 창고 지붕 빗소리는 아들래미 치는 실로폰 소리 같은데 흐음, 비가 와서 일은 '땡' 쳤으니 감자를 캐다 삶아볼까나 당귀잎를 뜯어 안주를 할까나 밤나무는 느긋하게 흔들리고 토란잎은 먼지를 씻어 저리 맑은 얼굴이구나. 반갑게 오시는 비 날 저물 때까지만 그치지 말아다오 하는데 어맛, 뜨거라 아닌 밤 중에 비 피해 날아든 박쥐 한 마리.

 

-농부 통신 30

 

농부통신 30-1.jpg

 

농부통신 30-2.jpg

 

농부통신 30-3.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2088 [직장맘] 아래 직장맘(어른아이 님) 속풀이 글에 대한 RE? 입니다 ^^ [40] 케이티 2014-07-10 4695
2087 [책읽는부모]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와우--부러워라!! (후기) 겸뎅쓰마미 2014-07-09 3924
» [자유글] 너구리야 고마워. imagefile [1] 농부우경 2014-07-09 3758
2085 [가족] 우리 아들만의 예뻐해주는 방법 [2] 숲을거닐다 2014-07-09 4179
2084 [요리] [숨쉬는 제철밥상] 감자를 가장 맛있게 삶는 법 imagefile [1] 베이비트리 2014-07-09 6113
2083 [자유글] [궁금증 톡] 400달러 ‘면세점 쇼핑’ 면세한도 아시나요 베이비트리 2014-07-09 4001
2082 [자유글] 둘째 분만, 조리원 짐을 꾸리며 imagefile [8] 안정숙 2014-07-09 4202
2081 [책읽는부모] [후기]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imagefile blue13g 2014-07-09 3886
2080 [책읽는부모]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후기 winnie119 2014-07-08 3570
2079 [자유글] [궁금증 톡] 전송받은 모바일 교환권은 누구 소유일까?! 베이비트리 2014-07-08 3492
2078 [책읽는부모]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hacyklhj 2014-07-07 3579
2077 [책읽는부모] 제주가 아니어도~~~ crack79 2014-07-07 3364
2076 [요리] [궁금증 톡] 육우는 한우보다 맛이 떨어진다?!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07 4032
2075 [가족] [토토로네 미국집]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아이들에게는 이별공부 imagefile [6] pororo0308 2014-07-06 9833
2074 [자유글] 당신께 [4] 농부우경 2014-07-05 3492
2073 [요리] 장마철 저녁, 뜨근한 콩나물국밥 어떠세요~ imagefile [1] 안정숙 2014-07-04 4077
2072 [자유글] 14년차 연인의 살짝 닭살스런 이야기- 내 발톱을 남에게 맡겨본 적이 있으신가요? imagefile [6] 안정숙 2014-07-04 5450
2071 [자유글] 인사 [2] kimja3 2014-07-04 4810
2070 [직장맘] [주말엄마]4. 여보 일찍 좀 들어와봐~! [2] kcm1087 2014-07-03 4453
2069 [요리] 눈물 쏙 콧물 쑥 머리엔 김이 나도 군침 꿀꺽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03 4035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