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캐다.

자유글 조회수 3768 추천수 0 2014.07.23 06:17:13
감자를 캔다. 귀농하고보니 집성촌인데 젊기는 제일 젊고 항렬은 다락같이 높아 환갑 어른에게 '할배' 소리 듣는 '동네할배' 상호네 감자밭. 열두마지기 품앗이 날 흐려 일하기는 좋구나 선선할 때 일하자고 6시에 갔더니 벌써 감자포대가 즐비하네. 씨알 굵고 양도 많은 것이 농사 잘 지었구나. 같은 2년차 농사꾼이면 우경이 자네 감자도 이만하겠네. 에이, 아무려면 '할배'가 짓는 감자만 하겠니껴.

장마라는데 비는 없고 올랑말랑 내릴동말동 물풍선 같은 비구름만 하마 며칠째. 가물고 가물어 비님이야 고맙고 반갑지만 하필 오늘이면 고약하지. 작년 씨감자값도 못건진 벌충을 올해는 할까나. 경운기 지난 자리마다 투둑투둑 감자가 쏟아진다. 감자를 포대에 담기도 바쁜데 자꾸 막걸리를 건네는 어르신. 아이고 어른요, 아침참 전에 '삐리'하면 오늘 일 못하니더. 품을 앗으로 왔는가 갚으러 왔는가. 앗으러 왔는데요. 앗으러 와서 '삐리'하면 상호할배가 품 갚으러 안가도 되겠구만.
품은 앗으러 왔으되 막걸리는 자꾸 들어가서 트림만 끅끅 나는데 감자 한포대 21kg 오늘 나올 감자는 1500포대. 저 많은 감자를 누가 트럭에 실어올리나. 아무렴요. 젊은 제가 해야지요. 비 30분 오시더니 점심 먹고 해가 쨍. 땡볕 아래 감자포대를 5톤 트럭에 싣자니 땀이 대웅전 낙숫물처럼 쏟아지누나. 어이쿠 어지러워라, 상차하다 기절하겠네 그늘에 앉아 숨 좀 돌리자. 서울사람들은 좋을시더. 뭐가? 이 고생하면서 농사지은 걸 종이쪼가리 몇 장 주고 바꿔 먹잖니껴. 그 종이쪼가리 구하자고 새벽별 보는 건 서울사람이 더 심할 걸.

그렇지. 감자는 원래 새벽별 보는 사람들의 것. 어머니는 지금도 감자를 안드시지. 니 빼태기라고 아나. 놋숟가락이 초승달모양으로 닳았는데 이게 감자 껍데기 긁느라 그래 됐거든. 매일 저녁 한 양푼씩 긁어서 8남매가 밥 대신 삶아 먹는거야. 감자꽃도 보기 싫어. 하지만 감자는 태생이 구황작물. 빼태기가 필러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감자는 가난한 내 이웃의 한끼. 삶은 햇감자의 파근파근한 맛을 떠올리니 그나마 감자포대가 덜 무거운데 일하기는 괴롭고 농한기 생각만 굴뚝같은 이유는 여기가 지난 겨울 비료포대 썰매장인 때문.

- 농부 통신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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