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통신 13
농민사관학교 사과반 첫 현장 실습. 가지치기 혹은 전정. 통칭 전지. 64기가 D램 공정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사과농사의 핵심기술. 사과의 품질은 기본이고 사과농사에 필요한 생산비와 노동력도 전정에 상당부분 좌우된다. 다나까 선생 방식, 나리따 선생 방식 등 일종의 학파가 형성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기술이건만.
늙은 학생들은 교육 받고 돌아서는 즉시 뭘 배웠더라 잊어버리고, 자른 가지에 붙은 꽃눈만 안타깝고, 이 앙상한 가지에 그 커다란 사과가 열릴까 의심스럽고, 이른 봄볕만 좋아라 갓 입학한 병아리들 같은데.
정작 교실에서의 첫 수업은 늙은 병아리들이 버틸까 싶은 화생방 교육. 딴소리말고 여기 적힌 그대로, 제 날짜에 이 약들을 치세요. 방제력이라며 나눠주는 인쇄물에는 언제 어떤 농약을 치라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구체적인 농약이름까지 적힌 방제력이라니 너무 심한 걸 싶은데 가혹한 교관의 한마디.
- 거기 2년차 올빼미. 무농약 사과에 대한 꿈 따위는 썩은 사과 도려내듯 도려내란 말이야. 나이 마흔이 넘도록 현실과 이상을 구분 못하나. 약을 치지 않고 되는 사과는 없어. 복창! 약 없이는 사과 없다.
- 넵! 약 없이는 사과 없다! (어디 10년쯤 뒤에 두고 보자.)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그 다음 시간에는 천적을 이용한 해충방제 방법을 강의한다. 듣노라니 심장이 두근두근. 아, 이런 방법이. 고추밭 옆에 옥수수를 왜 심나 했더니. 사과원의 잡초는 그냥 두라던 이유가 이거였는데. 마흔 중반에도 배움으로 가슴이 벅차다니. 아아.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이웃들의 뒷담화 환청.
- 고추밭에 옥수수? 옥수수 진딧물이 고추밭 다 망칠낀데.
- 사과밭에 풀 난 꼬라지 좀 보라니까. 저래 놓고 농사 짓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