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에 치뤄야 할 수많은 일들.

어느 정도 끝내놓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적응도 생각보다 빨라 다행스럽구요.

늘 해오던 일인데도 올해는 새삼스레,

엄마라는 이름에는 무거운 짐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도 크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조심조심 잘 이어가야하는 부부관계와 가족친지관계, 교사와 아이친구, 그리고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

올 봄에 새롭게 관계를 맺은 엄마들과 함께 학교 임원일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참 어렵고 무섭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난엄마다님의 밴드탈퇴 글을 읽으면서,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어도

아이를 사이에 두고 겪는 엄마들과의 관계가 한번씩 안좋게 얽히다 보면

아무리 쿨하게 대처하려해도 한동안은 밤잠을 설치게 되더군요.


큰아이가 2학년때쯤 세아이와 세엄마가 얽혀 큰 사건이 한번 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적이 있어요. 꼭 필요한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내고

문제가 일어날 것 같은 사람들과는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저의 어정쩡한 엄마로서의 정체성 탓인지

한동안 한국 엄마들도 일본 엄마들도 가까이하기 두렵더라구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주변을 가만 돌아보면,

처음엔 굉장히 살갑게 잘 지내다가도 마지막에 안 좋아지는 엄마들의 관계를 많이 보았지요.

어떤 엄마는 "거봐, 그러니까 엄마들 많이 사귈 필요없다니까" 하고, 또 어떤 엄마는 "그래도 많이 알아둬야 도움되지 않을까" 하며 늘 점심약속에 참석하느라 바빠 보였죠. 


그런 시절에, 알게 된 베이비트리.

이곳도 다양하고 많은 엄마들 모임 중에 하나인데, 자주 글을 쓰는 분, 가끔 글을 쓰는 분, 예전엔 자주 왔는데 이젠 통 만날 수 없는 분(예전에 생생육아쓰시던 분들이 어느 순간 잠잠해지셔서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새롭게 글을 쓰기 시작하신 분 ... 그리고 글로 만날 순 없지만, 이곳을 찾으시는 많은 분들.

글을 쓰고 읽으며, 소통이 즐겁고 속이 시원해질 때도 있지만

개인 블로그가 아니다보니 대상을 의식하지않을 수 없어, 이건 써도 될까 안될까 머뭇거리며 주춤거릴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솔직하고 속 시원하게 한번 써보고 싶다.. 하다가도 되돌아올 반응이 두렵기도 하고 .. 뭐 그렇지요.


많은 이가 공감하는 좋은 글을 쓰든, 모두가 외면하는 비호감의 글을 쓰든,

그 모두가 내 삶의 이야기이지만, 언제나 내 진심과 의도대로 글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몇 줄의 글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내 삶과 육아에 대한 이미지를 규정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멈칫..하게 됩니다.

그러다 내 일상이 많이 바빠지고 아이들도 어느정도 커서 육아에 대한 고민을 좀 덜 하게 될 때,

이곳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얼굴 마주하며 부딪힐 일은 없겠지만, 내 삶이 너무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 때는 조용히 접고 구경만 하며

홀가분한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유혹을 가끔 느끼기도 합니다.




얼마전 여행할 때 있었던 일.
좁은 산길을 꽤 오래 달리는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 겁이 났는데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고 깊은 산 속에서 두 아이를 뒤에 태우고 있던 참이라 엄청 긴장되더라구요.



꽤 오래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달리다 어느 순간, 앞서 달리는 차 한 대가 어지러운 안개 속에서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찌나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던지..

한동안 안심하며 앞차 뒤만 졸졸 따라 달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베이비트리에서 내가 얻은 건, 지금 이 순간과도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는.

아이를 키우며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이곳을 찾으며 느낀 안도감이랄까.

순화님이 세 아이를 낳고 아파트를 떠나고 밭을 갈고 가축을 키우는 이야기가 저에겐

'안개 속을 달리던 앞차'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글에 다 공감할 수 없다해도 그런 '앞차'들의 존재는 우리 삶에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육아의 기쁨, 어려움, 절망을 진솔하게 보여주시고 계시니

든든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바쁘고 피곤하고 여유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대할 때도 신경이 곤두서듯이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집중하기 어렵지요.

부족하고 어색하고 다른 가치관에서 나오는, 좀 공감하기 어려운 육아이야기라 해도,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 사실 쑥떡쑥덕 게시판 너무 반갑긴 한데 글쓰다 보면 알만한 사람들은 누군지 금방 알 것 같아서, 그리고 난엄마다님이 '글이 무서운거야'하신 것처럼 나만 느끼는 게 아닐거야..하면서 이곳에 써 봅니다.

한번 관계를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미라.. 그래서 베이비트리에 들어오길 그토록 머뭇거렸건만..^^ 그래도 연애할 때 해볼 건 다 해봐야 끝나도 후회가 없듯이, 여기서도 그럴거라 믿으며.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뭐 별 거 있나요?

아이들 없을 때, 따끈한 차 한잔에 달콤한 거 하나 곁들여

수다떨며 만나 노는 거지요. 이런 엄마노릇도 나이들면 못하는 건데 즐기기나 하지요 뭐.

잠깐 마음이 힘드셨던 순화님과도, 난엄마다님과도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마음고생중인 엄마들과도

잠시나마 휴식하며 커피 한잔 나누고 싶은 봄입니다.

40대 엄마에겐 너무 잔인할만큼 올 봄은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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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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