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육아휴직을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베이비트리에 육아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글을 쓸 시간을 오늘 오전 11시로 계획하고 있었다.
막내 수현이가 낮잠을 자는 11시 무렵은 내 자유 시간이기 때문이다.
글감도 몇 가지를 미리 추려두었다. 
나름 부푼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오전 11시를 기다려왔다.

그런데 웬걸, 
지난 주 온 식구가 감기 걸렸을 때 감기가 가장 덜 심하던 신영이(첫째, 7살)가 아침에 열이 나더니 유치원에 못 갔다.
선율이(둘째, 4살)만 유치원에 보내고, 신영이와 수현이(셋째, 12개월)는 집에 데리고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영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막내가 낮잠 잘 때쯤 같이 재울 생각이었다.
든든하게 먹고 자라고 10시쯤엔 고구마도 쪄서 먹였다. 
막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둘 다 양치까지 끝! 
이제 수현이는 업어 재우고, 신영이는 수현이 재운 뒤에 같이 누워 자자고 하기만 하면 된다.
안방에 이불을 펴두고, 수현이를 포대기로 싸서 업었다.
수현이는 업은 지 2~3분 지나 금방 잠 들었다. '역시 효자 아들!'
잠든 수현이를 이불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알람을 맞추었다. 
그동안 아이 재우고 얼른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할 생각으로 아이와 함께  누웠다가 그대로 잠 들어버리는 낭패를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30분 뒤로 알람을 맞추고 신영이에게 어서 자자고 했다.
"난 안 잘 거야. 그냥 앉아서 놀게."
"안 잘래? 감기 나으려면 잠을 많이 자는 게 좋을텐데."
"아냐, 지금은 열도 안 나고, 괜찮아."
"그래라, 그럼."
열도 나고, 피곤할테니 순순히 누울 줄 알았는데, 안 눕겠다고 한다. '어라,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네?'
'대답은 저렇게 해도 동생이랑 아빠도 자고, 자기도 피곤할텐데 곧 자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눈을 감았다.

30분 뒤. 
알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일어나. 알람 울려."
그 소리에 덩달아 수현이까지 깼다.
신영이가 안 자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보통 두 시간 자는 막내마저 한 시간만에 일어나버렸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의욕이 충만할 때 육아 이야기의 첫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니 무척 아쉬웠다. 
'너무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니지.
내 본업은 육아 이야기가 아니라 육아잖아.'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해보았지만, 아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잠에서 깨자 신영이는 공방에 언제 가는지를 자꾸 묻는다.
매주 월요일에 유치원 끝나고 동네에 있는 도예 공방에 가서 흙놀이를 하고 오는데, 
아직 공방 갈 시간이 안 되었냐고 묻는 거다.
열이 나서 유치원은 안 가도 공방엔 가고 싶어 한다.
"긴 바늘이 4를 지나면 공방갈 시간이 되는 거야. 
공방 가고 싶으면 잠을 좀 자둬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야 열도 내리고, 안 피곤해서 갈 수 있어. 
그런데 넌 낮잠도 안 자고, 갈 수 있겠어?"
"어, 이제 열도 내린 것 같아."
"그건 해열제 먹어서 내린 거고. 좀 있으면 또 오를 수 있어."

점심으로 카레를 해서 주었다.
카레를 다 먹고 나자 공방에 빨리 가고 싶단다. 그때가 2시 40분 쯤이었다.
이제는 공방 갈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 게 아니라, 아직 갈 시간이 안 된 걸 알면서도 당장 가고 싶다고 떼를 쓴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빠, 나 또 열 나는 것 같아." 그런다.
체온계를 귀에 대보니 38.4도다.
"너, 그러니까 아빠가 아까 낮잠 좀 자라고 그랬잖아. 
계속 열 나면 공방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돼. 병원!"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픈데도 쉬거나 자지 않고 계속 놀려고만 하는 게 걱정이 되어 뱉은 말이었다.
물론 그 말엔 원망과 짜증도 담겨 있었다.
'아빠도 아빠 시간 좀 갖자, 이 녀석아, 아까 좀 자주지 그랬어.'

신영이는 해열제를 먹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열이 올라 힘든가보다' 생각하며 막내에게 먹일 분유를 탔다.
거실에서 막내 분유를 먹이면서 안방을 쳐다보니 신영이가 옷장에서 자기 이불을 꺼내어 펼치더니 그 위에 눕는다.
그러고는 1분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녀석, 얼마나 피곤했으면 눕자마자 잠이 드나.'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다. '아까 오전에 좀 그렇게 자주지.'

첫 글을 폼 나게 쓰고 싶었다.
나와 우리 가족 소개도 하고, 육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감도 쓰고, 나에게 육아휴직 기간이 갖는 의미도 쓰고, ... 등등.
하지만 아이가 아프니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아이를 돌보려고 휴직한 거지 이야기를 쓰려고 휴직한 건 아니니까.
결국 폼 나게 쓰려고 생각해둔 글감들은 다음 주 이후로 미뤄야 했다.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첫 번째 글은 어쨌든 신영이가 아팠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닌가?
사실 육아 이야기의 첫 글로 쓸 글감 몇 개를 추려 놓았을 뿐 그 중 어느 것으로 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보면 
신영이가 아팠기 때문에 첫 번째 글을 어떤 이야기로 쓸까 하는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인생은 참 묘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어서 당황스럽고, 좌절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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